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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정산업단지 이주자조합 ㈜탕정산업 김환일(49) 이사는 2004년 탕정제2산업단지 지구지정 고시 이후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낸 적이 없다. 본인은 물론 마을주민들과 함께 억울한 희생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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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금만 적당히 받고 마을을 훌쩍 떠나버렸다면 차라리 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을 앞장서서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알몸으로 개울에서 멱 감으며 놀았던 친구가 있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 늘 함께 해 온 친구다. 그 친구와 떨어져 산다는 것은 상상해 본 적도 없다. 앞으로 남은 인생도 그 친구와 함께 하며 살고 싶었다. 그 친구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수 십 년간 함께 살았던 우리 이웃들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뿔뿔이 흩어져 이방인으로 떠돌아야 한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그것이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다.”
탕정산업단지 이주자조합 ㈜탕정산업 김환일(49) 이사의 말이다. 김환일 이사는 2004년 탕정제2산업단지 지구지정이 고시된 이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낸 적이 없다. 김 이사 본인은 물론 마을주민들과 함께 억울한 희생자들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산업단지 개발, 원주민 삶터 빼앗아
“마을이 산업단지로 개발되면서 대부분 주민들은 생계대책이 막막해 졌다. 땅도 없고 집도 없이 임차농업을 하던 주민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영업자가 빚만 잔뜩 떠안은 채 파산선고를 받은 상황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농촌에서 실업수당이나 다른 생계대책을 찾을 길도 없지 않은가. 이들이 농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마을에 정착해 토지를 임대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농업기술을 배워야 한다. 탕정에서 수십년간 포도농사만 짓던 사람들이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당시 아산시와 기업은 개발계획을 발표하며 마을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면서도 마치 마을에 큰 혜택이라도 주는 것 같은 태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산업단지개발계획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개인의 욕심으로 지역발전을 저해하려는 부도덕한 사람들로 매도되기도 했다. 또 마을을 구성하는 핵심 축이었던 임차농민들은 보상협상을 비롯한 논의구조에서 조차 소외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와중에 보상 규모에 따른 ‘반목’과 ‘시기’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며 내부갈등이 야기 되기도 됐다.
전국 최초 원주민 자력형 마을 완성 ‘눈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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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명의 마을 주민들은 흩어지지 않고 함께 살겠다는 목표로 모였다. 작년 9월에 시작한 건축이 어느새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국에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이주자 정착촌이다. |
“개발은 지역주민의 의사도 아니고 지역주민을 위한 사업도 아니다. 지역주민은 그저 개발에 걸림돌이 되는 하찮고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정부나 기업은 그동안 농사지으며 잘 살고 있는 주민들을 강제로 내쫓으며 뭐가 그리 당당한지 어이가 없었다. 특히 지역주민을 보호해야 할 아산시도 원주민들의 고통은 애써 외면했다. 오직 기업유치로 늘게 될 인구와 세수입만이 관심사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곳 주민들이 제기하는 민원이 얼마나 귀찮게 들렸겠는가.
물론 몇몇 주민들은 넉넉한 보상을 받아 개발 덕을 톡톡히 본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1억원 미만의 보상을 받은 주민들이 40%를 넘었다. 도시에서 변변한 전세 한 채 얻기 힘든 액수다. 생활비나 자녀 학비는 어디서 마련할 수 있을까. 이들이 도시로 간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고, 다른 농촌으로 간다면 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마을주민 66명의 고민이 모아져 설립된 것이 원주민 이주자조합인 탕정산업이다. 이들 66명은 마을 주민들이 흩어지지 않고 함께 살겠다는 목표로 모였다. 이들 중 보상금이 많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건축비를 먼저 내며 사업을 차질 없이 진행시켰다. 작년 9월에 시작한 건축이 어느새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국 그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완벽한 이주자 정착촌이다.
특히 정착마을은 주민 개개인이 짓는 건축물이 아니다. 마을 전체를 설계하고, 집 한 채 한 채를 마을 전체 풍경과 어울리도록 개성을 살려 건축했다. 퍼즐조각 맞추듯 66채의 집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건축물이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강제로 이주당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흩어지지 않고 새 터전에서 성공적인 정착과 생계까지 해결할 수 있는 자력형 마을을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행정기관은 인구와 세수만을 계산하며 주판알만 튕기지 말고 이제 원주민들의 삶도 한 번쯤은 돌봐주기를 간절히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