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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복 전 아산시장은 민선3·4기 8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 2년 여 만에 재임시절 부정과 뇌물수수혐의가 드러나 검찰에 구속기소 됐다. 사진은 2010년 6월25일 1000여 명의 공직자와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인과 함께한 이임식 장면. |
저축은행비리 합동수사단(단장 최운식 부장검사)은 8월13일(월) 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해 금품을 수수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으로 강희복(70) 전 아산시장을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강 전 시장은 지난 2009년 7월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던 미래저축은행 김찬경(56·구속기소) 회장으로부터 ‘아산시청에서 아름다운CC골프장과 관련된 인·허가를 신속히 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취지의 부탁과 함께 현금 1억2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강 전 시장은 또 2005년5월~2008년1월까지 김 회장으로부터 6명의 차명으로 147억9000만원의 불법 대출을 받아 아산시에 있는 부동산 17필지를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자를 제 때 내지 못하자 김 회장의 골프장 청탁을 빌미 삼아 충분한 담보도 없이 42억 원을 추가로 대출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강 전 시장은 2002년 한나라당 후보로 지방선거에 출마해 아산시장에 당선됐고, 이후 재선에 성공해 2002년7월~2010년6월까지 재직했다.
강 전 시장은 민선4기 말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돌연 불출마를 선언한 후 공직을 떠났다. 당시 강 전시장이 언론을 통해 공식적으로 밝힌 불출마 사유는 ‘부인(김경희씨)의 건강문제’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부정이 연루된 검찰내사설을 언급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민선 3·4기 강희복 재임시절 아산 도시규모 급팽창
강희복 전 아산시장이 재직했던 민선3·4기 8년을 돌아보면 아산시는 인구를 비롯한 각종개발사업 등으로 도시규모가 급팽창한 시기였다.
아산신도시개발, 용화지구, 배방지구 등 10여 곳이 넘는 택지개발사업으로 아산시 전 지역이 토목공사장을 방불케 했다. 또 둔포·도고·서부산든 등이 잇따라 추진되며 일가에서는 무리한 도시개발과 확장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경찰교육원 이전, 경찰대학유치, 충남외국어고설립, 쓰레기소각장, 공설운동장, 군부대 이전, 강당골 정비, 주5일장 이전 등이 해결되고 아산의 각종 지표가 크게 향상됐다.
또 삼성LCD, 현대자동차 등 첨단산업 중심의 기업체 입지로 무역수지 흑자규모가 전국 1위를 차지하는 등 경제 중심지로도 도약했다.
특히 강 시장이 재임했던 8년간 인구가 8만여 명이 증가한 것은 물론 경부고속철도와 수도권 전철 개통, 국도 21호 확장 등 시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도시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각종 개발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는 계층이 생긴 반면 삶의 터전을 내주는 원주민들도 속출했다. 이 과정에서 계층간 갈등과 대립 양극화 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민선 3·4기 평가 아산시민에게 해달라더니…”
강희복 전 아산시장은 2010년 6월23일 출입기자들과 가진 마지막 간담회에서 “제3의 인생을 살 수 있는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하는 생각과 함께 인생을 반추해 보는 기회를 갖겠다”고 말했다.
이틀 후인 6월25일 시청광장에서 열린 이임식장에서는 “지난 8년을 돌아보며 ‘아산발전’ 이라는 일념 하나로 앞만 보고 숨가쁘게 달려왔다”며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아산발전이라는 대명제 앞에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 평가는 시민 여러분과 역사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특히 강 전 시장은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목민심서에서 공직자가 갖추어야 할 마지막 덕목에 유애(遺愛)라는 말을 했다. 훌륭한 수령은 떠난 후에도 사랑이 남는다는 뜻으로 저도 사랑을 남기고 오늘 여러분 곁을 떠난다”고 말해 현재 본인이 처한 상황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강 전 시장은 스스로 밝혔던 재임기간 8년의 성과와 자부심과는 달리 현재 초라한 모습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평소 강 전시장과 가깝게 왕래하던 한 인사는 “최근 언론을 통해 강 시장의 부정혐의를 알았다”며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 전 시장은 시장 퇴임 이후 아산시의 대표적인 관광단지면서 재임시절 본인이 가장 큰 공을 들여 개발한 득산동 신정호 인근에 단독주택을 짓고 부인과 함께 장모를 모시고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