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유오성에게는 그동안 최고의 몸값을 제시하며 ‘러브콜’을 보내오는 곳이 많았지만 그가 선택한 유일한 차기작은 ‘챔피언’이었다. 수많은 시나리오를 젖혀두고 그가 아직 시나리오도 나오지 않은 상태의 ‘챔피언’을 선택한 것은 ‘친구’ 작업으로 더 다져진 20여년간의 곽 감독에 대한 개인적인 신뢰와 연기에 대한 농축된 에너지 때문이었다.
‘챔피언’은 곽경택 감독이 20여년간 염원해 왔던 야심찬 프로젝트. 곽 감독은 자료조사와 시나리오 작업을 하러 시골로 들어가는 동시에 유오성은 김득구가 되기 위해 몸 만들기에 들어갔고 준비작업 1년여 만에 ‘챔피언’(진인사 필름 제작)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곽 감독은 시사회 당일 아침 6시에야 CG 작업을 마무리했다는 설명과 함께 “시작시간 30분 전에 필름이 도착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래도 허점이 많이 보인다.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지난주로 예정돼 있 던 시사회가 갑작스레 취소된 것도 영화에 대한 곽 감독의 끊임없는 욕심 때문이었다. 정해진 일정보다도 마음에 차는,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려는 감독의 노력이기도 하겠지만 곽 감독에게는 그런 정도를 넘어서서 영화에 대한 뭔가 끈끈한 정이 느껴진다.
요절한 비운의 복서 김득구 선수 역할을 소화해낸 유오성은 “제가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 뽑아낸 작품이에요. 개인적으로도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했습니다”라는 말로 이번 작품에 쏟은 자신의 연기 열정을 슬쩍 내비쳤다. 또한 유오성은 “나는 김득구가 아니다. 단지 순박하면서도 순수한 청년 김득구를 연기하고 싶었고,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고 자신 있게 소감을 밝혔다.
그런 자신감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긴 머리에 핼쑥해진 얼굴로 나타난 유오성은 김득구 선수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지난해 7월 초부터 개인 트레이너를 두고 넉달간 집중 훈련을 받은 그에 대해 정두홍 무술감독은 ‘링 위에서 경기할 때는 정말 김득구처럼 보인다’고 추켜세웠다.
눈두덩이가 성한 날이 없을 정도로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쳤고, ‘친구’에서 능청스럽게 경상도 사투리를 썼던 그는 이번엔 완벽한 강원도 사나이로 변신했다. 곽 감독은 유오성에 대해 “징그럽다”는 한 단어로 표현했다. 해내기 힘든 것이 뻔한, 아무리 힘든 요구를 해도 부탁을 하면 말한 그대로 연기해내는 배우라는 설명이다.
유오성은 “권투경기 장면을 촬영하면서 많이 맞고 다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단 영화를 하기로 결정했고 그러기로 한 이상 자연히 따라오는 문제다. 힘들다고 생각했으면 처음부터 선택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선택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하며 철저한 프로정신을 보여줬다.
영화 안에는 김득구 선수가 이뤄낸 많은 권투경기가 있지만 특히 김 선수가 목숨까지 잃어가며 미국 라스베이거스 특설링 위에서 펼쳐진 마지막 맨시니와의 사투 장면에서는 멀리 이역 땅에서 홀로 싸웠던 김득구 선수의 지독한 외로움과 인간적인 고뇌가 그대로 묻어나는 듯했다.
그렇지만 수돗물로 굶주린 배를 채우고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가난한 바닷가 청년 김득구는 ‘챔피언’에서 ‘비운의 복서’만은 아니었다. 투철한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했지만 사랑 앞에서 수줍어 할 줄 알고 순박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은 재밌는 청년으로 그려지고 있다.
유오성은 영화에서 80년대 히트곡이었던 조용필의 ‘정’을 ‘권투란 무엇인가’로 개사해 직접 불렀다. 권투에 대한 강한 집념과 열정을 노래하며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는 장면과 동양 챔피언을 따낸 김득구가 샤워를 하며 노래를 부르다 험난한 지난날에 생각이 미치자 눈물을 흘리고 마는 유오성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친구’의 신화를 이룬 주역인 그는 자신감과 함께 그때의 신화를 다시 한번 재현해 보고 싶다는 욕심도 내비쳤다.
“지난해 ‘친구’의 성공을 마치 우연히 얻은 행운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정말 최선을 다해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전국 관객 8백20만명이라는 ‘흥행신화’가 ‘챔피언’에서도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