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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LCD공장에서 근무했던 노동자 윤슬기씨가 6월2일(토) 사망했다. 반올림에 기록된 56번째 노동자의 죽음이다.(사진은 2010년 7월 삼성탕정사업장 집회장면) |
삼성에서 일하던 또 한 명의 노동자 윤슬기씨가 6월2일(토) 사망했다.
고 윤슬기씨는 56번째 삼성 직업병 피해노동자로 기록됐다. 올해만 벌써 삼성전자의 젊은 여성노동자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3명은 온양공장과 천안공장에서 일했다.
지난 1월, 삼성전자 온양사업장에서 일했던 이은주씨가 25세의 나이에 ‘난소암’을 얻어 12년간 투병하다 3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월에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김도은씨가 30대 초반에 ‘유방암’을 진단받고 6년을 투병하다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5월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사업장에서 이윤정씨가 서른 두 살의 나이에 ‘악성 뇌종양’을 진단받고 2년간 투병 끝에 사망했다.
고 윤슬기씨의 사연도 열악한 작업환경 때문에 병을 얻어 고통 속에 죽어간 다른 노동자들의 사연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윤슬기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99년 6월 삼성 LCD 천안공장에 입사했다. 그녀의 업무는 화학물질을 바른 LCD 패널을 자르는 일이었다. 입사 전 그녀의 몸은 누구보다 건강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지 5~6개월 만에 중증 재생불량성빈혈을 진단받고 13년간 수혈에 의지하며 고통속에 살아왔다.
그러나 결국 지난 6월2일 장출혈과 패출혈이라는 끔찍한 고통을 겪으며 숨을 거뒀다. 삼성백혈병충남대책위원회와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등에 따르면 삼성에서 일하다 질병을 얻어 사망한 56번째 노동자다.
“일개 노동자가 무슨 수로 산재를 입증하나?”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병에 걸린 이유를 노동자가 입증하지 못해 산재보험청구에 불승인을 당한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들이 20여 명이나 된다. 이는 매우 억울한 일이다. 십년도 더 지난 과거의 작업환경에 대해 이미 숨진 노동자가, 무엇 때문에 이병에 걸렸는지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삼성은 기업의 영업기밀을 주장하며 화학물질 리스트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노동자의 신속한 치료, 아픈 노동자와 유족의 생존권을 위해 존재하는 공적보험인 산재보험제도의 취지에 부합하기 위해 업무와 질병간의 개연성이 드러나면 폭넓게 산재를 인정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 2월 반도체 생산과정에서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 혈액암을 일으키는 물질들이 공정과정에서 부산물로 생성돼 노출될 수 있다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를 고용노동부가 발표했다. 이에 지난 4월에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재생불량성 빈혈에 걸린 김지숙씨의 산재신청이 승인된 바 있다.
따라서 반도체 생산과정과 매우 흡사한 엘시디 생산과정에서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중증재생불량성 빈혈에 걸린 고 윤슬기씨도 산재보험청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0여 년 전의 작업환경이 왜 영업비밀인가?”
반올림 등은 “10여 년 전의 작업환경이 왜 영업비밀인가? 그동안 삼성은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화학물질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작업환경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감춘 채 ‘작업환경은 완벽했다’ ‘직업병은 없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했다”고 비판했다.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직업병 제보자 중 윤슬기씨는 벌써 56번째다. 삼성은 더 이상 무책임과 기만을 중단하고 고인과 유족에게 최소한의 조의와 사과를 표해야 한다. 반올림 등을 통해 확인된 56명은 알려지지 않은 희생자들에 비하면 극히 일부일 수도 있다. 삼성은 중한 질환에 걸려 퇴사한 노동자들이 얼마나 되는지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은 정부의 철저한 진상조사, 대기업이나 반도체 업종 뿐 아니라 모든 전자산업의 직영과 하청업체를 아우르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몇 년 동안 몇 개 반도체 회사들에게 ‘자율관리’에 내맡겨 왔다.
반올림에 제보한 반도체 전자산업노동자들이 삼성에서만 56명이 죽고, 하이닉스, 매그나칩 반도체, 하청 전자업체의 노동자 죽음까지 포함하면 최소 63명의 죽음이 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재발방지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는 반도체 사업장에서 벤젠 등 발암물질 발생이 확인된 만큼 발암물질이 발생하지 않는 안전한 물질로의 대체해 노동자 건강보호대책 마련 등의 시정조치를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반올림은 “정부는 어떠한 시정조치 명령을 반도체 사업주에게 구체적으로 전달하거나 확인하지 않고 있다”며 “시급히 반도체와 엘시디 생산공장 노동자들의 직업병 재발방지를 위해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사회적 연대로 삼성괴담 진실 밝혀내야”
삼성백혈병충남대책위, 반올림,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은 윤슬기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6월5일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정부와 삼성, 삼성노동자·시민 등에게 다음과 같은 4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정부는 고인의 질병을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 둘째, 삼성은 유족들 앞에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과거 작업환경과 질병 피해자들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셋째, 정부는 고인과 같은 죽음이 재발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을 제시하라. 마지막으로 삼성전자 노동자와 시민들은 보다 적극적인 연대와 참여를 바란다.
이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현재는 노동자와 시민의 적극적인 제보와 참여가 또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밝혔다. 이어 “실제 작업환경에 대한 제보를 통해 기업과 정부의 은폐로 발생한 억울한 죽음의 진실이 드러나도록 사회적인 연대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