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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 탕정면 명암리 이주민 정착촌 '블루클리스탈 빌리지'가 이국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마무리 공정 작업이 한창이다. |
충남 아산시 탕정면 명암리 사람들 삶이 팍팍하고 고되다. 이들은 품앗이로 농사짓고, 때로는 품삯 좀 받고 이웃 과수원일 해주며, 계절별로 수확하는 농작물을 내다팔아 생활비를 마련해 왔다. 자녀들 모두 출가시킨 노년에는 낡은 집에 텃밭이라도 하나 있으면 넉넉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농사지으며 먹고살 걱정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그냥 두지 않았다. 충남도와 아산시가 이 마을에 세계 최대의 첨단산업단지를 유치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LCD, 삼성코닝정밀소재,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를 비롯한 계열사들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460만㎡에 이르는 ‘삼성디스플레이시티’가 형성된 것이다. 또 근로자들이 생활할 거대한 아파트 단지 수천 가구가 들어서고 있다.
그 결과 평화롭고 조용하던 마을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하던 포도밭이 하루아침에 거대한 공장으로 바뀌고, 경운기 한 대 겨우 지나던 농로는 왕복 6차선 산업도로로 바뀌었다. 마을공동체 붕괴와 함께 삶터를 잃은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첨단산업단지 유치에 앞서 한 차례 투기자본이 시골마을 휩쓸고 지나갔다. 자본가들의 유혹에 땅을 넘긴 주민들은 일찌감치 마을을 떠났다. 몇몇 농민들은 넉넉한 보상금으로 팔자를 고쳤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러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노인들과 근근이 살아가던 임차농민, 그리고 수많은 영세농민들은 대대로 지켜왔던 삶터와 공동체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며 땅을 치고 통곡해야 했다.
절망 딛고 지켜낸 66가구의 정착촌
도시개발이 이뤄지는 전국 어느 곳을 가 봐도 원주민의 재정착률은 10%를 넘기 힘들다고 한다. 그 이유는 원주민들에게 주어지는 이주단지나 분양 우선권이 대부분 자본가의 손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상당수 원주민들은 토지나 주택을 수용당하며 보상받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토지나 주택의 보상가는 개발 이전보다 높게 책정된다 하더라도 인근 지역의 부동산 시세는 그보다 훨씬 더 올라 마을을 떠나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 이들은 개발에 따른 이주자 택지를 제공 받더라도 건축물을 지을 여력이 없어 결국 자본가들에게 어느 정도 웃돈을 받고 내주기 일쑤다.
명암리 주민들도 몇 푼의 보상금에 삶터를 내줘야 했고, 이웃과 헤어져 떠돌이 신세가 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명암리 주민 66명은 무너지는 마을공동체를 바라보며 새로운 꿈을 설계했다. 누구도 마을을 떠나지 않아도 되도록, 새로운 마을을 공동으로 건축한다는 공동목표를 세웠다.
이주민 마을 공동체의 꿈 70% 완성상태에서 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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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을 원룸이 아닌 상가를 요구하고 있는 주민들은 70% 공정에서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
공동목표를 세우고 꿈을 설계했지만 문제는 마을을 만들 돈이 절대 부족했다.
이주민 66가구 중 1억 미만의 보상금을 받은 주민이 40%로 절반에 가깝다. 이들은 건축비를 비롯한 모든 비용을 대출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되면 이들은 이주자택지, 보상금 등 모든 것을 잃는다. 이 사업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자 5억원 이상의 보상을 받은 이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건축비를 먼저 내며, 보상금을 적게 받은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렇게 이주민들이 함께 꾼 꿈은 지난해 9월22일 기공식과 함께 첫 삽을 뜨게 됐고, 5월 현재 7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탕정산업단지 이주자조합 김환일 총무이사는 “자본과 정치권력, 산업화로 마을공동체를 붕괴시켰지만 이웃과 함께 살겠다는 주민들의 열의만큼은 꺾지 못했다”며 “그동안 수 없는 난관과 싸우며 지켜낸 새 보금자리가 우리의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철기 시의원은 “2005년 삼성에 땅을 내준 이후 지난 8년간 고통을 감내하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해 준 주민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앞으로 어떤 형태의 개발이든 사업에 앞서 원주민들의 주거와 생계대책을 먼저 해결하고 난 다음에 진행하는 선례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삼성에게 농사짓던 땅을 내줬다. 이후 충남도, 아산시, 삼성과 수없는 갈등과 대립을 겪으며 협의를 통해 원주민들이 앞으로 경제적으로 자립해 살아갈 수 있도록 협조를 이끌어 냈다.
“우리는 투기꾼이 아니라 정부정책에 희생당한 원주민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삶터를 내줘야 했다. 우리는 투기꾼도 아니고, 지역이기주의자도 아니고, 하루 아침에 삶터를 잃은 억울한 원주민이다. 우리는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특수성을 인정 해 살길을 찾아 달라는 것이다.”
당초 정착촌을 설계할 당시는 1층 상가, 2층 원룸, 3층 주택으로 계획했다. 그 이유는 아산신도시 탕정지구 2단계가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충분한 원룸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0년 3월31일 국토해양부와 LH는 탕정지구 2단계 사업의 71%에 해당하는 1247만3000㎡의 도시개발 사업에 대한 전면 백지화를 선언했다.
그러자 원룸수요가 사라진 상황에서 명암리 이주민들은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원룸수요가 사라지자 근린비율의 확충이 절실해 진 것이다. 주민들은 현재 건축물의 완성단계에서 2층에 대한 작업을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삼성기업도시와 아산신도시가 건설되며 충남과 아산시의 인구가 늘고, 세수도 증가했지만 몇몇 주민을 제외하면 당초 살고 있던 원주민 대부분 최대 피해자였다. 게다가 오락가락 중심 없이 흔들린 국가정책에 의해 또 다시 파산위기를 맞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을 아산시, 충남도, 대한민국 정부가 만든 것이니 만큼 그 책임도 함께 지라는 것이 주민들의 요구다.
2층 원룸을 상가로 전환시켜 달라는 요구는 원주민만의 요구가 아니다. 삼성근로자는 물론 탕정산업단지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협력업체와 그 가족들 5만 명의 요구이기도 하다. 이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원룸이 아니라 병원, 학원, 이·미용실, 식당 등 편의시설이다. 이곳 주민들은 이러한 편의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인근도시인 천안으로 가야만 한다.
대한민국 최초, 세계 제일의 명품마을 정착촌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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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리 정착촌 ‘블루크리스탈빌리지’ 조감도. 이곳은 원주민 스스로 도시계획을 수립해 자신들의 마을을 완성시킨 전국 최초의 이주민 정착마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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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정착촌은 현재 70% 공정률을 보이며 조감도 형태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원주민들 스스로 도시계획을 수립해 자신들의 마을을 완성시킨 사례가 없다.
그러나 명암마을주민 66명은 오로지 함께 살겠다는 공동목표 달성을 위해 조합을 결성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품 마을을 함께 만들자는데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게 될 마을의 미래 모습을 함께 그렸다. 이렇게 탄생한 정착촌의 마을이름은 ‘블루크리스탈 빌리지’다.
정착촌은 주민 개개인이 짓는 건축물이 아니다. 마을 전체를 설계하고, 집 한 채 한 채를 마을 전체 풍경과 어울리도록 개성을 살려 건축되고 있다. 66개의 퍼즐조각을 맞춘 ‘블루크리스탈 빌리지’가 탄생되는 것이다.
주민들은 66개 퍼즐조각이 완성되면 충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제일의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또 동화 같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류 스타들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 뮤직비디오가 만들어져 세계로 수출된다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부각될 것이라며 기대가 크다.
그동안 도시나 농촌이나 개발지역 원주민들은 늘 살던 곳에서 쫓겨나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법은 원주민 보다 자본가와 개발업자의 논리대로 움직여 그들의 이익만을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개발지역 원주민들의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고 상생할 수 있는 좋은 선례가 될 명암마을 이주민 정착촌은 완공을 눈앞에 두고 위기에 직면했다. 국가와 LH에서 10여 년간 추진하던 수백만㎡에 이르는 도시개발계획을 하루아침에 백지화 시킨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정착촌 원주민의 평균연령은 65세가 넘는다. 40명은 이미 70세를 넘겼다. 이들은 삶의 터전인 농토를 모두 잃고 지금은 이 정착촌에 남은 인생을 올인한 상태다.
삼성기업도시도 아산신도시도 이들의 의견과 무관하게 진행됐다. 그러다 또다시 이들의 의견과 무관하게 아산신도시 개발계획이 취소됐다. 그러면서도 정작 최대 위기에 직면한 명암마을 원주민들의 요구는 외면하고 있다.
“결정권자의 의지만 있으면 정착촌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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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리 정착촌 주민들은 법과 행정이 지난 10년간 자신들을 괴롭혀 왔다며, ‘특혜’가 아닌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원주민들의 요구는 수요가 전혀 없는 원룸을 상가로 이용할 수 있도록 변경해 달라는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은 아산신도시를 백지화시킨 정부의 책임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요구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요구가 현행법과 제도로 가능한 일일까.
지난 5월15일(화) 이주자택지 원주민을 비롯한 도시계획전문가, 이광열 충남도의원, 조철기 아산시의원 등이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공유가치를생각하는도시계획가들의모임(공생계) 구만수 도시계획기술사는 “땅은 물론 집과 생활터전을 모두 빼앗긴 원주민들은 삼성기업도시와 아산신도시의 가장 큰 피해자다. 인·허가권을 가진 충남도는 어렵게 정착하려는 주민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부도덕한 범법자로 몰고 있다. 특별계획구역지정을 비롯해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얼마든지 있다. 결국 법적인 문제가 아니고 결정권자 의지의 문제인 것이다. 공직자들의 의식전환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주민들은 아산시와 충남도가 적극 나서서 해결해 줘야 할 민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행정기관의 방해로 눈물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행정기관은 주민들의 요구가 정 부담스럽다면 관련 심의위원회에 본 사안을 상정해 전문적인 심의를 받을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삼성디스플레이, 코닝, 모바일 등에 종사하는 직원과 가족 등 배후인구는 5만명이 족히 넘을 것이다. 그러나 인근에 마땅한 병원도 식당도, 학원도, 아무런 편의시설도 없다. 아산신도시에서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킬 것으로 기대했지만 모든 계획이 백지화됐다. 그 역할을 이주민 정착촌에서 하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삼성 근로자와 트라팰리스 아파트 입주민들은 충남도에 보낼 탄원서와 입주민 서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산시의회 조철기 의원은 “지금 원주민 정착촌은 원룸이 아닌 상가시설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은 주민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정부와 LH가 아산신도시 2단계사업을 포기하면서 발생한 문제다. 아산신도시가 계획대로 추진됐다면 이러한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충남도의회 이광열 의원은 “충남도 관련부서를 찾아가 주민의 요구가 관철지지 않는 이유를 확인하겠다. 또 안희정 도지사가 직접 주민들의 요구사안을 들을 수 있도록 간담회 자리를 주선하겠다”고 말했다.
이주민조합 탕정산업 김환일 이사는 “우리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가. 이 지역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난 10년간 삼성과 아산시와 충남도와 정부와 LH와 싸워야 했다. 지금 우리는 너무 힘들고 지쳐있다. 돈도 없고, 힘도 없고, 더 이상 뭔가를 새롭게 해 볼 여력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법과 행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충남도 관계자는 "삼성과 이주자택지 원주민들로부터 용도변경 신청서가 들어왔지만 불허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택지개발업무 처리지침에 따르면 이주자 택지는 근린생활시설 한도를 40%로 제한하고 있다"며 "도시는 처음부터 계획했던 용도대로 큰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것은 행정의 일관성과 형평성 문제다, 만일 이 원칙이 무너지면 그동안 진행 됐던 이주자 택지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 혼란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