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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온양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이윤정씨가 5월7일 저녁 8시30분 길고긴 암투병 끝에 사망했다. 이윤정씨는 62번째 반도체 근무환경의 희생자로 기록됐다. |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삼성자본에 의한 사회적 죽음입니다. 한 노동자의 죽음이 아니라, 반도체전자산업 노동자의 산재사망입니다. 갑작스런 죽음이 아니라, ‘때 이르고 억울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는 죽음입니다. 무노조 경영, 자본 탐욕의 희생입니다. 계속되는 죽음이 아니라,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죽음입니다.”
-반도체근로자 고 이윤정씨 추모사 중-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이윤정(32)씨가 지난 5월7일(월) 62번째 사망자로 기록됐다.
1980년 1월10일 충남 서산의 한 어촌마을에서 출생한 이윤정씨는 1997년 5월 충남 서천여상 3학년 재학 중에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했다. 대부분 삼성 노동자들이 그랬듯이 입사당시 이윤정씨는 매우 건강했다고 한다.
이후 6년간 반도체칩을 고온으로 테스트하는 MBT Burn-In공정에서 줄곧 근무했다. 이윤정씨가 맡은 일은 수없이 많은 반도체칩에 일일이 전기소켓을 꽂아 전류가 통하게 한 후 고온에서도 제품이 정상 작동하는지 테스트하고 이때 칩이 타버리거나 눌러 붙은 불량칩을 걸러내는 역할이었다.
작업공간에서는 극저주파 전자파(비전리방사선)가 방출되는 수십 대의 고온테스트 설비 가동됐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하루 12시간 주야교대근무를 했다. 증언에 따르면 챔버 뚜껑을 열 때마다 항상 역겨운 냄새가 났고, 미세한 검은 분진을 제거하기 위해 항상 에어컨을 가동시켰다. 그러나 보호장갑과 마스크는 착용하지 않았고, 불량품 검사라는 작업특성상 높은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고 전한다.
칩을 접촉한 후에는 눈의 자극증상, 피부질환 등이 발생했다. 이를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이 ‘디바이스독’이라고 부른다.
그러다 2003년 5월 이윤정씨는 더 견디지 못하고 퇴사했다.
그런데 퇴직 후 7년만인 2010년 5월5일 악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았다. 종양은 두 군데서 발견돼 항암치료와 뇌종양 제거수술을 받았으나 다 제거하지 못한채 시한부 선고를 받고 투병생활을 했다. 이후 그녀는 2010년 7월23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험 요양신청을 했지만 근로복지공단측은 인정하지 않았다.
단국대 김현주 산업의학전문의, “반도체 업무환경 관련성 있다”
단국대 김현주 산업의학 전문의는 소견서를 통해 이윤정씨의 질병은 뇌종양이 주로 발생되는 연령보다 약25년 정도 젊은 만30세에 진단받은 점에 주목했다.
또 각종 문헌의 연구결과를 들어 반도체 산업 종사자 대상의 역학연구에서 뇌종양의 발생위험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피해자가 노출된 PHAs(다핵방향족탄화수소 유기물질이 고온에서 불완전 연소시 발생하는 발암물질. 검은분진.) 및 납 등의 다양한 화학물질과 비전리 방사선에 의해, 또는 그 복합 노출에 의해 교모세포종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여러 역학연구와 실험연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대근무는 국제암연구소가 그룹 2A로 분류한 발암 요인이며, 이 보고서에서 뇌종양 관련 연구는 없었으나, 종양 억제 유전자인 p53이 써카디안 시계에 의해 조절된다는 점으로부터 뇌종양 발생에 기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과로와 직무스트레스는 그동안 면역력 저하를 통해 암발생에 기여할 가능성이 제기되다가 최근 일부 암 발생의 위험요인이라고 보고되고 있으며, 암 발생기전의 유사성(analogy)으로 볼 때 뇌종양 발생에도 기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 산재 불인정, 소송 중 사망
근로복지공단은 뇌종양이 명백히 업무나 작업환경에 의해 유발되었음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근거가 확인되지 않으며, 의학적으로도 뇌종양의 경우 일반적인 발병기전상 대부분 원인불명으로 알려져 있다는 이유로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내렸다.
이에 이윤정씨는 4월7일 산재관련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2000년~2001년 이윤정싸와 같은 회사에서 같은 업무를 하다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려 투병중인 유명화씨가 가세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에 들어갔다. 이후 2011년 8월9일 1차 공판이 열려 이윤정씨가 참석했다. 그러나 이후 현재까지 공판기일이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나 작년 1차공판 이후 증상이 악화된 이윤정씨는 중태에 빠졌고, 끝내 삼성이나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인정을 받지 못한 채 지난 5월7일 저녁 8시40분 사망했다.
반올림, “이윤정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 기업에 의한 살인이다”
반올림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5월10일 영결식장에서 “이윤정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며, 기업에 의한 살인”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반도체 전자산업이 이미 성행했던 미국과 영국에서는 한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1980년대에 이미 경험했다”며 “영국과 미국에서 직업성 피해와 환경성 피해를 일으킨 반도체 전자산업은 아시아 지역으로 이전하거나 생산설비를 판매하고 모든 생산라인을 하청화 하고 있고, 그 영향으로 대만, 태국, 한국 등에서 ‘삼성 백혈병’과 같은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삼성반도체는 1983년, 다른 나라에서 수년이 걸린 ‘먼지 하나 없는 공장’을 짓는데 불과 6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당시 삼성 연구원 및 엔지니어들은 제품의 품질과 관련한 부분은 어떨지 몰라도, 노동자들의 건강 영향에는 매우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실한 공사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이윤정의 죽음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기업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않아서 발생한 기업에 의한 살인행위이며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국제기구 공동성명, “삼성과 한국정부 직업병 책임져야”
“삼성과 한국 정부는 직업병으로 인한 55번째 죽음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
‘공정한 정보통신 산업과 선한 전자산업을 위한 회의’(makeITfair and GoodElectronics Round Table meeting)참가자들이 한국의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뇌종양에 걸려 사망한 고 이윤정씨의 추모제에 참여해 한국 정부와 삼성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5월10일 실시된 추모제에 참여해 애도문과 함께 5가지 요구사항을 밝히며 삼성과 한국 정부에 서한을 전했다.
▷정부와 삼성은 엄숙하고 평화로운 영결식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삼성을 포함한 전자산업의 모든 직업병 희생자들에게 보상해야만 한다. ▷삼성은 직업병 발병과 화학물질 노출을 방지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이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공개적인 방안을 발표해야 한다. ▷한국정부와 삼성은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권이 근본적인 인권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해야 한다. ▷삼성과 한국정부는 고 이윤정님의 죽음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