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총선 새누리당 김길년 예비후보
“저는 중학교3년 고등학교3년 동안 우등상은 받지 못했지만, 6년간 근면상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늘 근면하고 성실되게 살았습니다. 4월11일 아산시민들께서 저에게 근면상을 주시면 아산을 위해 큰 봉사를 하겠습니다.”
기존정치의 틀을 바꿔 보겠다며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며 했던 새누리당 예비후보 김길년(43)씨의 말이다. 선거캠프를 열 때 부모님(아버지 김구현(76), 어머니 임복순(68))과 포옹하던 모습도 생생하다.
김길년씨는 작년 12월15일 일찌감치 예비후보에 등록해 아산시 구석구석 돌며 새벽부터 밤늦도록 얼굴 알리기에 나섰다.
평소 마을 이장 일을 맡고 있던 그는 누구보다 지역주민들의 소소한 불편을 잘 안다. 그리고 누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함께 주저앉아 막걸리잔 나누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라와 정치에 대한 욕도 하며 서로 위로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그렇게 그는 지난 3개월간 아산시 구석구석을 돌고 또 돌았다.
선거사무실은 전통시장 입구에 마련했다. 선거사무실로 돌아올 때마다 언제나 시장 상인들을 만나고 들어갔다. 매일 만다다시피 한 시장상인들에게 김길년은 어느새 국회의원으로 자리잡아 있었다.
시장상인들은 처음에 서먹서먹했던 인사말도 친근하게 받아줬고, 여기저기서 장사 안된다는 푸념도 쉽게 늘어놓았다. 그러더니 어느새 국회의원 되면 이것저것 잘 살펴야 한다며 압력까지 넣기 시작했다.
김길년도 이들의 어려운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자주 찾았고, 이들도 김길년에게 푹 빠졌다.
김길년은 “정치는 꼭 큰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그늘진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생활 속에서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위해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정말 좋은 정치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새누리당)만은 아니다’라며 만류했다는 지인들에게 김길년은 “서울대, 판사, 검사, 변호사, 대학교수 등 잘난 사람들만 모인 정치판에 나 같은 가장 평범한 마을이장이 오히려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또 그들 안에서 나 같은 존재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1970년 경북에서 태어난 김길년은 아산고를 졸업한 후 도자기공장 하청업체 근로자를 비롯해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주경야독해 굴삭기면허와 공인중개사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일자리의 질을 높여 나갔다. 또 사이버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지금은 법인회사를 설립해 최고 경영자가 됐다.
김길년은 “지금 나의 모든 것은 스스로 꿈꾸며 지난 20여 년간 어렵게 일군 것이다. 세상에 좌절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갖고 꿈을 실현시켜 나가는 방법을 알려 주려고 했다. 또 그들이 꿈꾸는 세상을 위해 디딤돌 역할을 하고 싶었다. 이제 힘없이 주저앉은 나를 위로하며 따뜻하게 안아주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꿈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3개월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길년씨는 지난 14일(수) 자신과 공천경쟁을 벌였던 상대후보의 선거캠프 맨 뒷줄에 서서 상대후보의 총선 출정식을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