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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로 접어든 요즘 모든 들녘에서 추수를 마쳤지만 오직 한 곳 이상안씨(59)의 논만은 방치돼 있다. |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농사지어 본 적이 없다. 올해처럼 가을가뭄이 심한 상황에서도 두 달이나 양수기로 물을 뿜어냈다.”
아산시 최대의 곡창지대 중 한 곳인 영인면 와우리 들녘에서도 가을걷이가 끝났다. 이곳은 평야가 지평선을 이룰 정도로 뜰이 드넓게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11월로 접어든 요즘 모든 논에서 추수를 마쳤지만 유독 한 곳 이상안씨(59)의 논만은 방치돼 있다.
그의 논 앞에서 콤바인과 트럭이 뒤엉켜 있고, 몇 명의 농민들이 모여서 긴 한숨과 함께 연신 희뿌연 담배 연기를 뿜어대고 있다. 몇몇 농민들은 농어촌공사를 향해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매년 반복되는 연례행사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이 씨의 논이 배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가 조금만 와도 이씨의 논 주변은 물바다가 된다. 물이 유입은 되지만 배출이 안 되기 때문에 이씨의 논은 언제나 물이 고여있다.
이씨는 수확을 앞두고 최근 2개월간 매일 양수기로 물을 뿜어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씨의 논에 고인 물이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 씨가 논에 고인 물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인근 농가에서는 모두 추수를 마쳤다. 수확 때를 넘긴 이 씨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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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간 양수기로 물을 뿜어 냈는데도 불구하고 이씨의 논은 마르지 않아 콤바인이 들어갔다가 진흙에 갇혀 있다가 간힌히 빠져 나왔다. |
“다른 집들은 논에 물을 못 대서 난리라던데, 나는 일 년 내내 논에서 물을 빼느라 이 짓을 하고 있으니 답답하고 기가 막히다. 해마다 수로정비를 요구했지만 농어촌공사는 그때마다 땜질식 처방만 반복할뿐 근본적인 해결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더 이상 분통터져서 농사도 못 지어 먹겠다.”
그 다음날도 콤바인은 이 씨의 논에 들어갔다가 진흙에 빠져 일을 하지 못했다. 이곳 농민들은 1986년 경지정리를 하면서 농업용수로의 물이 원활하게 흐르도록 처리하지 못한 것이 해가 거듭되면서 고질적인 상습침수지역으로 남게 됐다고 말한다.
이제 이씨 논뿐만 아니라 인접한 논과 축사 등으로 침수 피해지역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 곳 수로를 관리하는 농어촌공사 아산지사 관계자는 “그동안 예산이 없어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찾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내년에는 반드시 예산을 확보해 더 이상 농사짓는데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상안씨는 내년에도 마음 편히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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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가 끝난 들녘에서 이상안씨가 마르지 않은 자신의 논을 들여다 보며 한숨짓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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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추수가 끝난 와우리 들녘에는 새로운 싹이 돋아나고 있다. 이상안씨 논 앞에서는 여전히 농기계가 진입을 하지 못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