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11일 취임한 천안의료원 허종일 원장은 대학시절부터 '따뜻한 공공의료'를 꿈꿔왔다. |
“의료행위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 환자가 죽어 가는데 환자 주머니의 돈부터 확인한다면 사람 목숨으로 장사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또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산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지난 4월11일 천안의료원에 허종일(42) 원장이 취임했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 스스로 ‘따뜻한 공공의료’를 주장하며, 몸소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그는 의료기관이나 의료행위를 하는 의사는 경제논리에 지배를 받으면 안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술을 배우는 순간부터 의사는 이미 개인이 아닌 공인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태안군 떠나지 말라” 눈물로 만류
허 원장이 천안의료원 원장직을 맡기 전까지 그는 태안보건의료원장으로 활동해 왔다. 허 원장은 태안군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가 태안군을 떠난다고 했을 때 원장실을 찾아와 가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주민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가 태안의료원장을 맡기 전까지만 해도 태안의료원은 병원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주민들에게 외면받고 공무원들에게 조차도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진료시설은 열악하고 입원실도 지저분해 진료의 질을 떨어뜨려 의료서비스를 기대하기 힘든 곳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의료원을 찾는 계층들은 대부분 노인, 다문화가족, 저소득층 등 사회취약계층 이었다.
당시 35살의 젊은 의사는 대학병원을 비롯한 근무여건이 월등한 곳에서 높은 보수와 안정적인 자리로 유혹했지만 과감하게 태안군에 남았다.
태안의료원을 맡은 그는 우선 수술실을 개선해 지역 최초로 복강경 수술법까지 도입했다. 또 내시경·초음파 장비도 교체하며 의료의 질적 향상을 도모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전국 최초로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장례식장을 신축하고, 요양병동과 보호자 없는 병실, 호스피스병동, 열악한 시설 증·개축 등 끊임없는 노력으로 지금은 주민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의료기관으로 변화시켰다.
|
허종일 원장은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건의 시작부터 초기대응, 방제활동에 따른 주민영향, 기름의 성분과 독성, 건강영향조사 등을 총망라한 사례를 엮어 ‘재앙을 이기는 사람들’이라는 환경보건 백서를 완성시켰다. |
지난 2007년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 당시는 피해지역 주민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현장으로 달려가 임시 진료실을 운영했다. 당시 그는 사고 직후 피해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급성건강영향 조사와 유해화학물질 조사를 시작하면서 2008년 태안군보건의료원 산하에 태안환경보건센터를 국내 최초로 설립했다.
또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건의 시작부터 초기대응, 방제활동에 따른 주민영향, 기름의 성분과 독성, 건강영향조사 등을 총망라한 사례를 엮어 ‘재앙을 이기는 사람들’이라는 환경보건 백서를 완성시켰다.
그렇게 그는 2001년 공중보건의 시절부터 지난 10여 년간 태안군민으로 살면서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농·어촌지역의 환자들을 돌봐왔다. 태안지역 주민들은 그가 태안을 건강하게 만든 일등공신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허 원장은 충남도지사, 환경부장관,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그렇게 어려움을 딛고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은 태안의료원에서 지난 4월 스스로 물러났다. 그것도 100억원대의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열악한 천안의료원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의료복지는 국가의 책임이자 사회적 희망”
“의료혜택은 힘 있고 돈 많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된다. 오히려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일수록 의료혜택은 더욱 절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의료는 국가와 자치단체 그리고 이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
그는 또다시 험난한 길을 택했다. 충남 제일의 도시인 천안시는 농·어촌 이상의 도시빈민층이 많다. 대학병원을 비롯해 각 분야의 전문적인 의료기관들이 많지만 이러한 의료혜택 역시 모두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 도시에서 소외받고 갈 곳없는 환자들을 돌보는 것이 허종일 원장의 목표다. 그가 생각하는 공공의료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의료복지 혜택’이다. 천안시민이 아플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천안의료원’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 당장 할 일이 너무도 많다.
그런데 취임하자마자 천안의료원의 빚 더미를 떠안고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는 그의 말은 더욱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이정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