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이동통제 초소가 운영되고 있는 아산시 음봉면 A농장 진입도로.
외국인 노동자 쑨양씨의 하루 일과는 돼지 2000여 마리가 북적대던 텅 빈 돈사를 소독하고 청소하는 것이 전부다.
“그 날도 평소처럼 돈사에 들어가 소독약을 살포했다. 분무기에서 소독약품이 뿌려질 때 돼지들은 이리저리 몸을 피하며 활발하게 움직인다. 그런데 유독 한 녀석이 아주 귀찮다는 듯이 꿈쩍도 않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돼지가 몇 마리 더 있었다. 황급히 돼지의 상태를 살폈다. 코 끝에 작은 수포가 형성되고, 발굽에서 핏기가 보였다. 순간 다리에 힘이 쫙 풀리며 돈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최악의 사태가 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하늘이 온통 노랗게 보였다.”
구제역이 국내 전역으로 확산되던 지난 1월27일 아산시 음봉면 A씨 농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A씨는 이날 2000여 마리의 돼지가 자라고 있는 자신의 돈사에서 의심축 41마리를 발견해 신고했다. 그리고 이틀 후인 1월29일 정밀조사결과 구제역 양성으로 판명났다.
이날 2093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양의 돼지를 모두 살처분해 농장인근에 매장했다. 살처분과 매장은 포크레인 굉음과 함께 밤새 계속됐다. 그리고 돼지 매몰지에는 작은 둔덕을 쌓고 비닐을 덮었다. 그리고 가스가 분출될 수 있는 배기통이 설치됐다.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 속에서 작업이 진행됐다. 그리고 다시 3주가 흘렀다. 한낮에는 봄기운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풀렸다. 그동안 단 한 차례도 외부인들과 접촉하지 않던 A씨가 기자와의 만남을 수락했다. 한동안 실의에 잠겨있던 그는 자신의 막막한 심경을 토로하며, 자신의 축사를 공개했다.
불과 20여 일 전까지 토실토실 살 오른 돼지들이 먹이를 받아먹던 돈사는 텅 비었다. 함께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 쑨양씨(33·중국)가 텅 빈 돈사를 소독하고 있었다. 쑨양씨는 1년6개월 동안 이곳에서 일해 왔다고 한다.
쑨양씨는 “돼지들이 가득 차 있을 때 일은 힘들었지만, 돼지들 커가는 것을 보면서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기르던 돼지들이 하루아침에 죽어가는 모습을 모두 지켜봤다. 지금은 일이 없어 몸은 편한데, 마음이 너무 우울하다. 이제 일도 없으니 집(중국)에 다녀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A씨와 쑨양씨는 농장 밖으로 단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 자신들로 인해 외부에 구제역이 옮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이들 둘은 요즘 축사를 청소하고, 소독하는 일이 유일한 하루 일과다.
쌓인 분뇨 악취 진동…출하 못 해 상품성만 떨어져
이동제한에 묶인 모든 농장에서 한 달 넘게 축산분뇨가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A씨 농장은 구제역이 급속도로 확산되던 1월부터 이동제한에 걸려 분뇨를 제때 치우지 못하고 있다.
A씨 농장은 살처분 직전까지 돼지 분뇨가 쌓여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돼지가 모두 살처분 되며 더 이상 분뇨는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정화조는 이미 차고 넘치는 상황이다.
다른 축산농가는 더욱 심각하다. 1개월 넘게 이동제한에 걸려 출하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돼지는 최적의 상품가치를 인정받는 110~120㎏이면 출하해야 하지만 적정수준을 넘어 더욱 비대해지고 있다. 그러면서 사료만 축내며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는 실정이다.
A씨는 출하시점을 넘긴 800여 두의 돼지와, 비육돈 1200여 마리를 함께 떠안고 고민하고 있었다. 현재 돼지를 사육하는 모든 농가에서 최악의 분뇨대란과 출하정체를 떠안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다.
구제역에 대처하는 매뉴얼이 바뀌면서 부분 살처분한 사육농가 B씨는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이 상태로는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하루빨리 특단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분뇨통은 차고 넘치는데 치우지도 못하고, 적정한 시기에 출하를 놓친 돼지는 비대해져 사육장이 미어터질 지경이다”라고 하소연했다.
억류된 가축 먹이, 사료 값 ‘눈덩이’…자금회전 ‘뚝’
출입이 통제된 마을 입구에 놓인 바구니에 우편물이 쌓이고 있다.
가축이동제한으로 축산농가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출하시기를 놓친 가축에게도 사료를 먹이며, 근근이 버티고 있다.
특히 몇몇 지역은 마을 출입을 차단시킨 채 사료 공급 기지를 임시로 마련해 이용하고 있다. 평소에는 축사 사료창고까지 배달되던 것을 일일이 농민들이 받아다 운반하기 노동강도도 두 배로 가중됐다.
그러면서 사료 값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적정시점에 출하해 자금회전이 있어야 대출이자와 일정금액의 원금상환이 가능한데 자금회전이 뚝 끊긴 상황이다.
이들에게 사료를 공급하는 축협이나 일반 사료공급 업체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농민의 사정을 뻔히 아는 상황에서 사료값 결재를 강요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몰린 살처분 위탁농민
전국농민회총연맹 아산농민회는 이번 구제역 사태는 초기방역에 실패한 정부의 탓이라며, 농민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위탁농민인 A씨는 이번 구제역으로 2000여 두의 돼지를 살처분 하며,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A씨는 축주인 갑과 위탁사육 계약을 체결했다. 갑은 돼지 1마리당 사육하는데 드는 비용과 농장유지비 등을 합쳐 1달에 2000~2500만원을 A씨에게 지급하기로 한 것.
A씨는 돼지를 위탁사육하기 위해 그동안 자부담과 융자 포함해 수억원을 시설비로 투자했다. 그리고 외국인노동자 쑨양을 고용해 월 170~180만원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지난 1월 구제역 확진판정과 함께 돼지를 모두 살처분해 당장 실업자가 된 것이다. A씨는 월 평균 2000만원 이상의 매출이 보장돼야 원금이자를 갚고, 각종 시설을 유지하며 버틸 수있다.
그러나 정부는 살처분 보상비 전액을 축주인 갑에게 지급하게 된다. 반면 A씨는 (현 지급기준대로 보상한다면) 정부의 보상은 단 한 푼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갑과의 계약관계도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당장 자금압박을 받게 된다.
또 이 구제역 상황이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말 그대로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은 A씨 뿐만이 아니다. A씨에 따르면 대부분 축산농가가 자신의 처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미숙한 대처로 구제역 대재앙이 닥쳤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구제역 사태를 지자체와 농민들에게 책임을 떠밀며 발뺌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농민들을 더욱 분노케 하고 있다.
A씨는 “이번 구제역 사태는 농가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정부의 방역시스템에 허점이 드러났기 때문이지, 농민들이 나타해서 그런 것이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또 농민들은 정부가 정한 매뉴얼대로 행동하고 대응했을 뿐이다. 살처분정책 또한 정부의 정책에 충실히 따랐을 뿐이다. 이 모든 책임을 정부가 통감하고, 살처분 보상은 물론 위탁농민의 피해도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산·천안 21개 매몰지 문제점 발견
충남도 긴급점검결과 가축 매몰지 28곳 관리허술
충남도 구제역 매몰지 긴급점검결과 아산시 8곳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은 아산시의 한 매몰지로 날씨가 풀리자 비닐로 덮은 둔덕이 푹 꺼져들어 가고 있다
구제역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아산·천안시를 비롯한 충남도내 가축 매몰지에 대한 1차 점검결과 28곳에서 문제점이 발견됐다.
충남도는 지난 12∼13일 매몰지 256곳 가운데 189곳의 관리 실태를 긴급 점검한 결과 28곳(14.8%)곳에서 문제점이 발견돼 1차 정비대상으로 분류됐다고 지난 15일 밝혔다. 지적된 곳은 천안시가 13곳으로 가장 많고 아산시 8곳, 당진군 4곳, 보령시 2곳, 예산군 1곳 등의 순이다.
충남도의 점검 결과 이번에 지적된 해당 매몰지는 하천과 30미터 이상 떨어지도록 한 지침과는 달리 10미터 이내에 위치해 있거나 경사부에 위치해 집중 호우시 무너지거나 침출수가 하천으로 흘러들어갈 우려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또 대부분 매몰지에 예산부족을 이유로 ‘침출수 관측정’을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아산시를 비롯한 일부 시·군은 ‘매몰지 관리카드’를 작성하지 않았고, ‘매몰지 관리자’도 지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아산지역은 매몰지와 인접한 곳에서 지하수를 식수로 이용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사후관리가 더욱 절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매몰지 인근지역은 날씨가 풀리며 매립한 돼지가 부패하며 악취가 발생하고 있다.
매몰지 인근의 한 주민은 “벌써부터 악취가 진동하기 시작하는데, 기온이 올라가면 더욱 심해 질 수밖에 없다”며 “가스와 침출수로 인한 대기와 토양오염에 대한 철저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충남도는 2월21일~3월4일까지 도내 가축 매몰지 전체에 대한 검증과정을 거쳐 다음 달 말까지 정비대상을 확정해 정비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한편 충남도는 행안부 지침에 따라 내년 말까지 한시조직으로 시·군 10명, 도 7명 등 17명 규모의 ‘구제역 사후관리 TF팀’을 구성해 매몰지 환경오염 등 사후관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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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세·면허세 등 징수유예
아산시는 구제역·AI로 재산상의 막대한 손해를 입은 축산농가의 세금부담을 덜기 위해 부과세액에 대한 징수유예 등 세제지원방안을 추진한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구제역·AI로 우제류 및 조류의 살처분 등 피해를 입은 축산농가에 대한 자동차세, 취득세 및 지방소득세 등 지방세 부과액 및 체납액에 대해서는 세목에 따라 3개월 이상 최대 1년까지 징수유예 조치하고 2011년도재산세(지방교육세 포함)는 상위법이 개정되고 시의회의 의결을 거쳐 신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감면신청은 읍면동장이 발급한 피해사실 확인서제출로 가능하지만 지역내 축산농민들의 피해사실이 확인되면 담당자의 확인을 통해 신속히 직권처리하는 등 최대한 납세편의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아산시 세무과 서장원씨는 “어려운 경제상황과 가축 살처분 등 정신적·물질적 고통을 겪고 있는 축산농가지원을 위해 ‘지방세관련법’에 근거한 최대한 범위 내에서 지원해 고통를 분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의 ☎540-2296
<이정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