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백혈병 충남대책위원회 선춘자 위원장이 천안역 광장에서 고 김주현씨의 사망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자신의 일터가 끔찍하게 싫었다던,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던 한 젊은이가 자신의 몸을 던지며 온몸으로 저항한 것이다. 그 일터의 책임자는 당연히 그 가족을 위로하고, 진상을 파악한 뒤 재발방지를 위한 책임감 있는 약속을 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고, 인간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지난 20일 천안역 광장에서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매섭고 혹한 바람을 맞으며 서있는 삼성백혈병충남대책위원회 선춘자(42) 위원장의 얼굴이 빨갛고, 파랗게 상기됐다. 10명 남짓 그와 함께한 그녀의 동지들은 종종걸음으로 오가는 사람들에게 스물여섯 살 청년 고 김주현씨의 죽음을 알리고 삼성의 사죄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인쇄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이들은 혹한 추위로 손발이 얼고, 입과 코와 귀까지 얼굴 전체가 꽁꽁 얼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꼭 전하고 싶은 말은 젊은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과 그의 일터였던 삼성에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 달라는 것이다.
“혹한 겨울 새벽, 13층에서 추락한 스물여섯 살 청년의 몸은 열흘이 넘도록 싸늘한 냉동고에서 더 추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에 대한 증언만으로도 고통을 짐작할만 한데, 죽은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유족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지금 이 사회가 이들을 외면한다면 고 김주현씨의 모습은 또 다른 형태로 반복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언젠가는 우리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선춘자 위원장은 경찰과 노동부, 언론에 대한 원망과 불신도 함께 내비쳤다.
“죽는 순간까지 고통에 몸부림쳤을 고 김주현씨는 죽어서 조차 안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경찰서를 방문해 삼성의 책임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같은 날 노동부도 방문해 삼성의 노동환경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다. 이들은 누군가 요구하기에 앞서 당연히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선춘자 위원장은 김주현씨가 투신한 1월11일 새벽으로 시계를 되돌렸다.
“기숙사에서 투신하려던 그를 방치하지 않았더라면, 14시간씩 과로하지 않았더라면, 밥도 못 먹을 만큼 쫓기며 일하지 않았더라면, 삼성의 직장문화가 인간적이었더라면…”
제2의 김주현은 막아야 겠다는 생각에 헛된 줄 알면서도 공허한 상상은 계속 이어졌다.
<이정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