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꽃다운 나이를 자살로 마감한 고 김주현씨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지난 14일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엄마·아빠가 정말 미안하다. 주현아! 너는 죽었지만 살아있는 엄마·아빠가 반드시 네가 말하고 싶었던 진실을 밝힐 것이다. 그리고 또 너 같은 젊은이들의 억울한 죽음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
삼성LCD 천안공장에서 일하던 김주현씨(26)가 지난 11일 새벽 6시47분 아산시 탕정면 기숙사 13층에서 투신해 목숨을 잃었다.
고 김주현씨는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후 13개월이 본인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런 날들이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삼성에 근무하며 겪었던 그의 고통스러웠던 나날들은 그의 유족과 친구들로부터 하나 둘 증언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가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던 이생의 삶을 마감하기 전날 밤 10시47분부터 다음날 새벽 2시54분까지 친구와 자정을 넘기며 4시간 여 동안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에서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묻어나고 있다.
고 김주현씨가 아버지, 어머니, 누나 핸드폰에 마지막 남긴 인사말.
“엄마·아빠·누나 힘내시고 죄송합니다”
고 김주현씨 핸드폰에는 그가 투신자살하기 직전 친구와 나누었던 메시지 내용이 남았다. 메시지 내용은 다음날 출근하기를 힘들어하는 주현씨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주현씨 친구는 “힘내라, 새롭게 출발한다고 생각해라”라고 주현씨를 격려했다. 그리고 그는 몇 차례 문자메시지를 더 넣다가 한 시간쯤 후에 “(삼성에서 일을) 하다가 *같으면 인천에 돌아와 고구마 장사나 같이하자”며 주현씨와 각별한 우정을 보였다.
그러다 자정을 넘기고 다음날 새벽 2시54분까지 20통의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고 김주현씨는 “~출근해야 되냐 말아야 되냐 토 나오네~” “이건희 회장 뺨 한 대 날릴까” “어디 좋은 직장 좀 알아보고 현 스카웃해라”라고 줄기차게 친구에게 자신의 심리상태를 전했다.
그리고 새벽 5시59분 아버지, 어머니, 누나에게 “엄마, 아빠, 누나 힘내시고 죄송합니다”라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가족들과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친구증언, “돈을 벌어도 쓸 시간이 없다”
고 김주현씨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주현씨는 여리고 착산 성격으로 친구들의 장난을 다 받아주는 넉넉한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지난해 중순 만난 주현씨는 체중이 많이 빠져 보였다고 한다.
이때 주현씨는 친구들에게 ‘지금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회사에 다른 부서로 옮겨달라고 계속 요청하고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돈을 많이 벌어도 쓸 시간이 없고 무의미하다. 상급자들이 밥도 안먹고 일해서 밥을 먹을 수가 없다. 기숙사에 가도 식당이 없어서 과자로 때우고, 오전 9시부터 밤 10시·11시까지 일한다. 근무시간이 불규칙하다. 잠을 못잔다. 피부가 많이 나빠졌다. 회사생활이 힘들어서 부서이동하고 싶다.
부서이동하고 트러블이 생겨서 도저히 못 다니겠다. 일을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고 시킨다. 다른 사람한테는 그렇게 대하지 않으면서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는가. 복직 앞두고 회사가기 싫다. 너희들은 내 맘 모른다며 마지막까지도 많이 힘들어 했다고 한다.
유족, “경찰의 엄정한 재수사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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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씨 아버지 김명복씨 |
어머니 송치화씨. |
고 김주현씨는 2010년 1월 삼성전자 LCD사업부에 입사해 근무하면서 피부발진에 대해 가족들에게 고통을 호소해 왔다고 한다. 또 작업장내 소단위 조직에 부과된 성과를 달성해야 한다는 심한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다 다른 부서로 전환배치됐다. 이후 심적 부담이 가중돼 우울증 증세를 보이다 11월 우울증 진단으로 휴직계를 냈다가 올해 1월 다시 복귀했다.
그런데 업무 복귀후 근무부서가 최초의 LCD라인으로 배치됐는데,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휴직전의 근무부서로 발령나지 않고 최초 라인으로 발령났다.
근무시작 당일인 11일 새벽3시 미안하다는 내용의 문자를 가족들에게 보낸 후, 11일 새벽 5시경 자살을 시도하다 회사 안전관리요원에게 발각돼 사무실로 동행한 후 잠시 보호 받다가 다시 거주하는 기숙사 방으로 인도됐으며, 오전 7시28분경 기숙사 13층에서 뛰어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가족들은 사망 이후 1시간이 지나서야 주현씨가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구급차로 이송됐다는 연락을 받았으며, 가족들이 병원도착시 이미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날인 12일 경찰서로부터 단순자살이라는 사망경위와 함께 별다른 수사 없이 사건을 종결한다는 취지의 사건보고서를 접수받았다.
유가족들은 이런 일련의 사정을 볼 때, 고 김주현씨의 사망이 단순자살이라는 경찰의 사건보고서를 인정할 수 없으며, 경찰의 엄정한 재수사가 착수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고 김주현씨가 근무당시 방진작업복을 착용하고, 약품취급에 따른 피부발진 등 부작용을 호소했는데 회사는 어떤 조치를 했는가.
▶삼성전자 담당의사는 어떤 기준으로 근무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판정을 내렸는가.
▶고 김주현씨가 병가휴직 후 업무복귀시 어떤 사유로 휴직전 부서로 발령이 나지 않고, 최초부서로 발령이 났는가.
▶고 김주현씨가 1차 자살을 시도하던 과정을 목격하고 이를 제지한 안전관리요원들은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 이미 자살시도를 했는데도 가족에게 연락조차 취하지 않고 방치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 김주현씨의 유족들을 근처 모텔로 데려가 빠른 장례절차진행과 금전보상을 제시하며, 장례가 지연되면 보상이 없다는 회유와 협박을 한 것에 대한 해명.
▶경찰은 자살과 관련한 동기가 따로 있는지 여부에 대한 엄정한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전했다.
삼성 근로자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자살’
고 김주현씨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삼성의 사과와 책임 있는 대책을 촉구하는 글들이 장례식장 곳곳에 걸려 있다.
삼성백혈병충남대책위원회와 반올림에 따르면 삼성에서 일하다 암과 희귀질환에 걸린 노동자의 제보다 110명을 넘었고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삼성에서 암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자살’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삼성LCD 탕정공장에서 일하다 2009년 종격동암으로 사망한 고 연제욱씨와 함께 근무하던 동료도 기숙사에서 투신자살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노동자 자살사건만 6건이 넘는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1월3일 삼성전자 LCD탕정공장에서 일하던 스물세살 어린 여성노동자도 기숙사에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여성노동자의 죽음에 이어 11일 또다시 같은 기숙사에서 김주현씨가 투신 자살했다.
고 김주현씨가 일한 LCD칼라필터 공정은 감광제를 포함해 독성 화학물질들이 많이 사용되는 유험한 작업장이었다고 한다. 특히 설비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 위험노출이 증가했고, 입사 수개월 만에 아토피와 피부염이 생겨 온몸이 가렵고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하루 14~15시간씩 주야로 고된 노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김주현씨는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까지 내몰렸다. 무엇보다 김주현씨가 살아있던 마지막 새벽 오랜 망설임의 시간동안 자살기도의 재발을 막기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없이 방치한 책임은 삼성에 있다”고 말했다.
삼성백혈병충남대책위와 반올림은 ▶경찰은 엄정한 재수사로 고 김주현씨를 자살로 내몬 책임이 삼성에 있음을 철저히 규명하고 삼성은 즉각 유족에게 공개 사과하라. ▶노동부와 경찰은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자살한 노동자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와 자살 사인은 어떻게 처리돼 왔는지 규명하라 ▶노동부는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장기간 노동과 유해위험 작업실태에 대해 특별 근로감독 실시하라. ▶삼성은 노동자들을 극심한 과로, 스트레스로 내모는 비인간적이고 반인권적 노동환경을 즉각 개선하라고 삼성과 정부에 요구했다.
삼성, “유족들과 원만한 해결 하겠다”
삼성전자 LCD사업부 관계자는 “고 김주현씨를 발견하고 회사 소방응급장비센터, 가족, 경찰등 에게 모두 연락한 후 필요한 조처를 취한 것으로 안다. 가정환경도 넉넉하지 않고, 나이도 어린데, 안타깝게 생각한다. 유족들과 대화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씨가 장시간 근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3교대 근무가 원칙이지만 부서마다 근무 차이가 있다”며 “개인적인 편차는 있겠지만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는 어느 직장, 어느 부서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정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