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폭발 참사가 일어났던 호서대학교 아산캠퍼스 정문에는 오규형 교수를 추모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교수님께서 그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시다니….”
“교수님은 늘 형님처럼, 친구처럼 격의 없이 대해 주셨고, 때로는 아버지처럼 저희들을 따뜻하게 감싸 주셨던 분입니다. 교수님의 그 따뜻했던 손길과 음성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호서대학교 아산캠퍼스의 한 실험실에서 폭발사고로 숨진 고 오규형(55·소방방재학과) 교수의 애제자 이승현(26· 대학원생)씨가 흐느끼며 말을 잊지 못했다.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오 교수의 연구를 돕기 위해 제자이면서 후배인 이성은(36·산업안전기술연구센터 연구원) 박사를 비롯해 이승현씨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또 소방방재학과 선·후배 사이인 최 열(22), 추소진(20), 김미화(20)씨도 사고 당일 연구실에서 오 교수의 연구를 함께 돕다가 6명이 동시에 사고를 당했다.
실험실과 인접한 사무실의 한 교직원은 “평소에도 연구실에서는 항상 폭발음이 들렸었다. 이날은 평상시보다 폭발음이 더 크게 들렸지만 사고일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이승현씨에 따르면 실험실 안에서는 고막을 찢을 듯한 폭음과 함께 실험용기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유리가 깨지고, 각종 기자재들이 나뒹굴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모두 정신을 잃어 외부와 단절된 상황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이승현씨가 119에 전화를 걸어 사고소식을 외부에 알렸다.
이번 사고로 오규형 교수는 현장에서 숨졌다. 이성은 박사는 용기파편으로 인한 안구부상과 화상을 심하게 입어 서울 아산병원에 후송돼 치료중이다.
이날 함께 실험에 참여했던 이승현·최열·추소진·김미화씨는 순천향대 천안병원에서 입원치료 중이다. 학생들은 사고 당일은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청각장애가 심했지만, 사고 이틀째부터 서서히 회복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고로 인한 또 다른 후유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고,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 커 병원측에서는 치료를 하면서 좀 더 지켜보자는 소견을 보였다.
시내버스 폭발사고 원인규명 하려다 ‘참사’
오규형 교수가 21일 마지막 실험을 했던 호서대 아산캠퍼스 방폭시험장.
폭발압력과 파편에 의해 유리창이 산산이 부서졌다.
21일(화) 오후 2시30분, 호서대 아산캠퍼스 방폭시험장에서는 6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끔찍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는 오규형 교수가 최근 서울에서 발생한 천연가스(CNG) 시내버스 폭발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실험을 하던 도중 일어난 참사였다.
이승현씨에 따르면 이날 오전에는 실험을 위한 각종 기자재를 함께 점검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후 1시10분 무렵 본격적인 실험에 착수했다. 사고발생 직전까지는 오 교수를 비롯한 모든 구성원들이 이번 연구에 거는 기대가 컸다. 대학 당국에서도 오 교수가 제안한 이번 실험연구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과제는 시내버스에 장착한 가스용기가 압력에 견디는 힘과 폭발한다면 그 압력과 파괴력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등을 예측하고, 방지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오 교수는 실험을 위해 직접 지름 방폭 가스통과 가스통을 감싸는 알루미늄 박스까지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목격자인 이승현씨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폭발실험을 위해 교수님이 LP가스와 산소를 혼합해 가스통에 충전시키는 과정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지만 LP가스와 산소가 혼합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수님 께서는 국내의 모든 버스승객의 안전을 위한 연구를 하다 참변을 당한 것이다. 교수님을 가까이서 모시고, 연구에 함께 참여할 수 있어서 영광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실험은 학과의 수업과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소방방재학과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건축물을 비롯한 각종 시설물로부터 화재나 각종 재난을 입지 않도록 관리하는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곳이다. 이번 사고로 학과 지원을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소방방재학과 지원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도 한마디 했다.
환경부, “천연가스버스 연료용기 안전성과는 무관”
환경부는 22일 “이번 사고는 천연가스버스 연료(CNG)와 현재 보급되어 있는 CNG용기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22일, ‘호서대 실험실에서 천연가스버스 폭발방지장치 개발을 위한 실험장비에 LP가스와 산소를 주입하던 중 가스폭발사고가 발생’한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교통환경과 국현수 사무관은 “21일 호서대에서 발생한 가스폭발 사고는 국민들이 천연가스버스 연료용기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며 “이번 사고는 호서대에서 자체 제작한 용기에 LP가스와 산소를 주입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사고로 천연가스버스 연료(CNG)와 보급되어 있는 CNG용기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고압가스용기 폭발 완충장치에 대한 실험과정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이며 천연가스버스 연료용기 안전성 연구내용과는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사고 직후 부검을 마친 경찰은 폭발사고에 의한 사망으로 보고, LP가스와 산소를 혼합해 용기에 충전하는 과정에서 정전기에 의한 스파크 발생이 폭발원인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아산·천안 캠퍼스에 분향소 마련
호서대 아산캠퍼스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한 교직원이 오 교수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호서대는 이번사고와 관련해 긴급하게 사고조사위원회(위원장 이광원 교수)를 구성해 사고원인조사와 함게 향후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천안 하늘공원장례식장에 고인의 빈소가 마련됐고, 오 교수가 강의했던 아산캠퍼스와 천안캠퍼스에도 분향소를 마련해 추모하는 기간을 가졌다.
방학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오 교수의 사망소식을 접한 교직원과 학생들이 추모행렬에 동참했다. 또 직접 장례식장을 찾지 못한 학생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오 교수의 넋을 위로했다.
<이정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