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22일, 토지보상이 시작된 아산신도시 주택전시관 앞은 보상을 받으려는 토지주들로 넘쳐났다. |
|
아산신도시 2단계 1차지구 토지주들이 보상금신청 접수처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
“내 땅 보상받으면서도 이렇게 구걸하듯 받아야 하는가.”
22일(월) 새벽, LH(한국토지주택공사) 아산신도시 직할사업단 앞에서 밤을 꼬박 샜다는 한 토지주가 분통을 터뜨렸다.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녘에 두꺼운 겨울 외투를 몇 겹씩 걸친 것은 기본이고, 담요까지 몸에 둘둘 말고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은 난민촌을 연상시킬 만큼 간절해 보였다.
아산신도시 2단계 탕정지구 1차 토지보상을 ‘선착순’으로 하겠다는 LH의 발표에, 행여 후순위로 밀려나 토지보상을 받지 못할까 우려한 토지주들이 무작정 줄서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밤샘 줄서기는 이날 하루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17일(수)부터 온 가족이 교대로 밤샘 줄서기를 5일동안 계속했다는 한 주민은 LH의 편의적이고, 무책임한 보상금 지급방식 때문에 자녀들이 생업까지 포기하고 추위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토지주들이 줄서기하고 있는 동안, 곳곳에서 크고 작은 마찰도 발생했다. 지역주민 뿐만 아니라 아산신도시 2단계 1차 지구에 토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오다 보니, 교대로 줄서기에 나선 사람들과 승강이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아산신도시 2단계 1차지구인 배방읍 세교·휴대·장재지구와 탕정면 매곡지구에 LH가 보상해야 할 총 금액은 6500억원~7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2000억원을 11월22일 오전8시30분부터 선착순 보상하겠다는 LH의 발표가 이 모든 분쟁의 화근이었다.
게다가 보상금으로 지급될 채권 유치경쟁에 뛰어든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고객에게 정보제공하기’ 차원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줄서기 경쟁을 부추겼다.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지한 LH는 긴급 사태수습에 나섰다. 19일(금) 저녁 LH 이지송 사장이 아산신도시 직할사업단을 직접 다녀갔고, 국토해양부에서도 수차례 아산시와 LH를 통해 현지 상황파악에 나섰다.
이어 20일(토) 오후10시30분, 당초 공고했던 ‘11월22일 오전8시30분 선착순보상’ 공고는 ‘전체보상’ 공고로 바뀌었다. 선착순 2000억원 한정보상이 아닌 모든 토지주에게 전액보상을 실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LH에 신뢰를 잃을 토지주들은 ‘그들의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냐’며 자리를 지켰다. 결국 갈팡질팡 일관성 없는 LH의 보상방침에 애꿎은 토지주들만 2중3중의 고충을 겪어야 했다.
‘선착순 보상’은 LH의 얄팍한 ‘꼼수(?)’
보상금 이의제기는 ‘쏘옥’…돈 시급한 토지주끼리 갈등 ‘부추겨’
|
아산신도시 2단계 1차지구 토지주들은 아산신도시의 ‘선착순’ 보상방침에 따라 몇 일 밤·낮을 노상에서 기다려야 했다. |
당초 ‘선착순 보상’이라는 방침은 LH의 얄팍한 장삿속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120조원에 이르는 LH의 빚더미와 경영부실이 만천하에 공개되고, 아산신도시 2단계 사업차질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갈 때 까지 간 막장 꼼수(?)’ 였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LH에 불안감을 느낀 토지주들이 보상가와 양도세부담 등에 대한 이의제기조차 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분석이다.
배방읍 세교리의 한 토지주는 “실제로 보상받아야 할 금액은 7500억원인데 2000억원만 던져주며, 먼저 오는 순서대로 나눠주겠다는 것은 토지주들끼리 순위싸움을 하라는 말밖에 더 되겠는가”라며 “빚진 놈이 오히려 배짱부리는 더러운 꼼수”라고 비난했다.
실제로 10월22일부터 내년 7월21일까지는 ‘손실보상 협의기간’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이번에 보상을 받지 못하면, 언제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묻지마 줄서기’와 ‘난장판’으로 토지주들을 불러냈다.
아산시의 한 관계자는 “선착순보상은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방법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현재 밤샘 줄서기 사태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며 “결과적으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며 위기감을 느낀 LH는 뒤늦게 모든 토지에 대해 보상하겠다고 나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처음부터 전체 보상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LH 아산신도시 직할사업단 관계자는 “예산은 정해져 있고, 시급한 보상을 원하는 토지주가 많아 궁여지책으로 ‘선착순보상’을 선택한 것이지 절대 계산된 행동은 아니었다”며 “뒤늦게라도 모든 토지에 대해 보상할 수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LH는 건물이나 과수 등 지장물과 양도세 등은 전액 현금으로 보상하고, 토지에 대해서는 전액 채권으로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일당제 줄서기’와 ‘번호표 암거래’ 까지 등장
|
‘일당제 줄서기’와 ‘번호표 암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LH에서 부착한 경고문. |
LH에서 졸속으로 추진한 ‘선착순 토지보상’ 방침은 토지주들끼리 갈등을 부추기는 것도 모자라 ‘일당제 줄서기 아르바이트’와 ‘번호표 암거래’까지 등장시키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뒤늦게 ‘줄서기’ 소식을 접한 원거리에 사는 몇몇 토지주는 용역회사를 통해 줄을 대신 서주는 대가로 하루에 30~40만원까지 부담했다고 한다. 또 ‘줄서기’에 브로커까지 등장해 미리 확보한 번호표를 팔고 사는 ‘암거래’까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LH직할사업단은 ‘불법 순번 매매가 적발될 경우 양 당사자를 형사고발 처리하고, 순번대장에 명기된 소유자 확인절차를 거쳐 접수하므로 절대 매매행위는 불가능하다’는 경고문까지 부착했다.
<이정구 기자>
|
당초 ‘선착순분양’ 방침을 ‘전체보상’으로 바꾸며 공고문을 철회하는 장면. |
|
1차 ‘밤샘줄서기’ 관문을 통과한 토지주들은 두 번째 관문인 ‘대기모드’로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
|
토지주들이 보상절차에 대한 법률·세무 상담을 하고 있다. |
|
한 토지주가 토지보상을 받기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들을 꼼꼼하게 챙기고 있다. |
|
밤샘 줄서기에 합류했던 토지주들이 자신의 대기번호를 확인하고 있다. |
|
접수장소에 입장하지 못한 토지주가 접수창구 안을 들여다 보고 있다. |
|
보상접수창구로 들어서는 토지주들이 자신의 번호표를 확인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