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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0년 역사 간직한 ‘溫州(온주)’ 돌려줘라"

역사수레바퀴 가로막은 ‘아산시의회’…‘온주동’ 명칭 환원요구 거세

등록일 2010년10월30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충남유형문화제 16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관청인 온주아문과 동헌. ‘따뜻한 마을’ 이라는 뜻의 ‘溫州’의 유래는 14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산시의회는 지역명칭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차단해 버렸다.

1340년의 길고 긴 역사를 간직한 충남 아산시 ‘온주고을’.(충남 아산시 온양6동)

溫州(온주), 글자 그대로 ‘따뜻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온주향토지에서는 이 지명이 처음 사용된 것은 신라 문무왕 3년(서기 663년) 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마을의 중심에는 충남유형문화재 16호로 지정된 ‘溫州衙門(온주아문)’ 이라는 현판이 새겨진 목조건축물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 건물로 이용됐으며, 낮은 남향의 야산을 배경으로 문루와 동헌이 서있다. 한 때는 이곳이 온양과 아산의 중심이었다는 명백한 증거이기도 하다. 

이 곳 주민들은 1340년간 불렸을 ‘온주’라는 마을 이름을 2003년 8월16일 영문도 모른 채 빼앗겼다. 당시 제4대 아산시의회(의장 김상남)에서 기존에 불리던 동 이름을 모두 ‘온양’이라는 이름으로 획일화시킨 뒤 1~6동으로 번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때 ‘온주동’은 ‘온양6동’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시민공청회나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명칭 변경이 진행됐고, 입법예고조차 없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사전에 알 리가 없었다. 말 그대로 시의원 몇 명이 하루아침에 ‘동 이름’을 뚝딱 바꿔치기 한 것이다.

그리고 7년 여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동 명칭 변경에 대한 혼선과 지역이름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온 주민들은 마을 이름을 빼앗아간 ‘아산시’와 ‘아산시의회’를 원망하며,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농업인구가 대부분인 마을 주민들은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2월 주민대표 37명의 연대서명이 담긴 ‘동명환원 탄원서’를 아산시와 아산시의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마을의 문화와 역사를 수집해 엮은 온주향토지를 편찬하며, ‘온주’라는 지명의 역사적 가치와 소중함을 재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와 의회에서 보내 온 회신내용은 “2003년 당시 동 명칭 개칭은 관련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시의회 의결로 결정된 사항인 만큼, 온양6동만의 문제가 아닌 전체 동지역 주민과 관련된 사항”이라며 “행정명칭 변동은 주민편익을 저해하고 행·재정적 문제를 야기시키며 행정의 효율성을 해칠 우려가 있어 시민들의 충분한 의견청취와 시의회의 협력하에 세밀한 검토를 거쳐 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시와 의회의 이 같은 반응에 대해 오히려 황당한 것은 옛 온주동 주민들이다.

온주향토지편찬위원회 권태혁 위원장은 “모든 것이 거짓이다. 시와 의회에서는 당시 온주동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적이 없다. 또 행정명칭 변경이 주민편익을 저해하고, 행·재정적 문제를 야기해 효율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말은 ‘온주동’을 ‘온양6동’으로 변경하기 전에 이미 검토했어야 할 사안이다.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주민이 아닌 시와 의회에 있다”라고 반발했다.

온양1~6동 지명 왜 바꿨나?

 

한 때 아산의 중심지였던 구온양 거리가 급속도로 낙후돼 스산한 느낌마저 준다.(사진 위) 같은 시각 아산시내 거리는 복잡한 건물과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사진 아래) 경제·정치논리에 떠밀려 13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지역 이름조차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2003년 7월1일, ‘아산시행정동·리의명칭·관할구역동·리장정수에관한조례중개정조례안’이 이복돌 의원 외 13인의 발의로 상정됐다. 당시 4대 의회까지는 총 17개 읍면동에서 17명의 시의원을 선출하던 시기다.

본 안건에 대해서는 당시 총무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이기원 의원의 발언에서 이미 동지역 의원간에 1차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온양온천1동 이기원, 온양온천2동 김상남, 권곡동 김응규, 신정동 정거묵, 용화동 김일상, 온주동 이복돌 의원 중 신정동의 정거묵 의원만이 반대했다.

동명칭 변경을 대표 발의한 이복돌 의원은 제안설명을 통해 “그 동안 지명도와 역사성을 가지고 온양이란 지명이 ‘1995년 시·군 통합으로 사라짐에 따라 온양을 찾는 외래 관광객들로 하여금 혼선을 초래하는 등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 온양이란 옛 지명을 살리자는 여론이 대두됐다. 온양온천1동을 온양1동으로, 온양온천2동을 온양2동으로, 권곡동을 온양3동으로, 신정동을 온양4동으로, 용화동을 온양5동으로, 온주동을 온양6동으로 개정해 지명도가 높은 온양이란 지명을 사용함으로서 아산의 명칭에 익숙지 못 한 외래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함은 물론 주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역사성을 되찾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또 “그 동안 지역의 경기불황을 타파하고 역사성을 되찾고자 하는 사항”이라며 동료의원들에게 원안가결을 당부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과 반대의견을 가진 측에서는 모든 동지역을 ‘온양1~6동’으로 획일화시켜 고유지명을 없애는 것이야 말로 자긍심을 실추시키고, 역사를 훼손시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2003년 회의록 다시 보니, “지명 결정에 주민이 왜 끼어드나?” 막말도

2003년 7월1일 동명칭 변경을 논의한 아산시의회 총무위원회 회의록을 찾아보니 의회의 고유권한만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시민의 의견을 먼저 듣자는 반대의견을 수의 대결에서 일방적으로 눌러 버렸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가장 먼저 김현병(음봉면) 의원이 “진행이 너무 빠르다. 행정적인 혼란도 한 두 가지가 아닐 것 같다. 주민동의를 받은 다음에 본건을 처리하자”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대해 이기원 총무위원회 위원장은 “동사무소 이름 짓는데 왜 주민들이 거기에 끼어야 되는가. 주민이 이름짓는 게 아니다. 왜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드는가”라며 시민의 의견은 들을 필요가 없다고 못 박았다.

임종순(염치읍) 의원은 대표발의한 이복돌 의원에게 “온주동이라는 이름이 없어진다. 이복돌 의원의 지역구인 온주동 주민의 의견을 먼저 수렴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온주동만이라도 주민의 여론을 들어봤는가”물었다.

이에 이복돌 의원은 “온주동 인구가 1만6500명인데 다는 못 만나 봤지만 주민의 대표들이 단 한 명도 동명칭 바꾸는데 반대하는 목소리는 못 들었다. 타동은 모르겠지만 온주동은 단 한명도 반대하는 분을 못봤다”며 자신만만했다.

이응권(송악면) 의원은 “행정이나 지명에 혼선이 우려된다. 연구용역을 해서라도 동 명칭이 바뀌는 해당지역 시민여론을 수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기원 위원장은 “동지역 6개동 의원 중 신정동 정거묵 의원만 반대 입장이다. (의사결정에) 100%는 없다”고 말했다.

회의록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동지역 6명의 시의원 중 5명이 명칭변경에 합의했고, 이후 읍·면지역 시의원 9명을 더 가담시킨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행정적인 절차만을 우선시해 시민들의 여론수렴 과정은 전혀 없었다. 동명칭 변경에 대한 14명의 밀어붙이기식 결정에 3명의 반대의견이 저지할 힘은 없었다.

또 의원발의 조례는 시민공청회나 별도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아도 입법예고 없이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아산시민들의 눈과 귀를 가린채 아산시의회에서 쉽게 결정될 수 있었다.

 “이름이 바뀌는 줄도 몰랐고, 지금도 그냥 '온주동'이 더 편해”

구온양 주민들이 양지바른 곳에 모여 김장에 쓸 고추를 다듬고 있다. 이들은 동 이름이 바뀌는 줄도 몰랐으며, 아직도 ‘온주동’이라는 이름을 더 친근하게 사용한다고 말했다.

온주아문과 동헌이 위치한 온양6동 읍내1통을 찾았다.

이곳은 구온양이라고도 부르는 지역으로 한 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온양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작은 읍내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적한 농촌마을일 뿐이다.

햇볕을 피해 그늘을 찾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갑자기 불어 닥친 한파 때문인지 양지바른 곳을 찾아 마을 어머니들이 고추를 다듬고 있었다. 김장준비에 여념이 없는 어머니들은 대부분 이 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터줏대감이란다.

‘온주동’이 ‘온양6동’으로 바뀌게 된 이유를 물었다.

한 어머니는 “우리가 뭐시나 알간디? 그냥 바뀌었다니까 그런줄 알았지”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어머니는 “우리는 그냥 온주동이나 구온양 이라고 많이들 불러. 향교말이나 중리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게 입에 배고 편하지. 근디 뭐덜라고 자꾸 그런건 물어?”라며 정겹고 익숙한 말투로 되물었다. 

동 이름이 바뀌기 전에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한 적이 있냐는 말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미리 알았을 것인데,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심지어 마을 이름이 바뀐 줄도 모르다가 한참 후에 알았다는 주민도 있었다.

동 이름을 바꾸면서 주민들의 의견이나 정서는 철저하게 배제됐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교육·정치·문화의 중심지 ‘온주’의 몰락

한때 아산시의 교육·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였던 구온양 읍내1통 지역은 경제의 중심축이 신시가지로 이동하며 아산시의 가장 낙후 지역으로 전락됐다.

과거 온주고을은 교육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 교육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향교가 위치한 점으로 미뤄 알 수 있다.

또 아산에서 가장 오래된 온양초등학교도 위치해 있다. 올해로 102주년을 맞은 온양초는 한일합방(1910)에 앞서 세워진 개화기 신교육 도입의 장으로 활용됐다.

조선시대 관청인 동헌이 위치해 있는 것으로 보면 정치·행정의 중심지였다는 것도 입증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교육과 정치, 행정의 중심지인 온주를 뿌리로 온양·아산이 성장하고 발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신시가지 조성을 비롯해 경제권이 이동하고, 인구가 이동하고, 교육·문화·행정 중심축이 이동하며, 온주고을은 구온양이 되고 말았다. 현재는 아산시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지역주민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는 반대로 소외감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게다가 ‘온주동’이라는 지역 이름까지 빼앗긴 것은 물론이고 ‘온양’ 이라는 지명뒤에 붙여진 순위는 가장 후미인 6번이 돼버렸다. 어찌 보면 지역주민의 소외감과 상실감으로 인한 반발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온주동’ 이름 돌려 놔라

한일강제병합(1910년)에 앞서 아산지역에 신교육을 처음 도입한 구온양 소재 온양초등학교가 올해로 개교 102주년을 맞았다.

결국 지역 대표들은 ‘온주동’ 되찾기 운동을 벌이며, 시에 탄원하기에 이르렀다.

70대가 넘어선 마을 어르신들이 중심이 돼서 연판장을 돌리고, 서명과 도장을 받는 등 자연마을 단위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 중심에서 권태혁(77·좌부동) 온주향토지편찬위원장이 앞장섰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는 이곳 주민들은 가을걷이가 끝난 요즘 잃어버린 마을 이름 찾기에 발 벗고 나섰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온주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온주향토지편찬사업을 하면서 부터다. ‘온주’ 라는 지명의 유래와 역사적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권 위원장은 “2003년 당시 우리 주민들은 동이름이 바뀌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온주동이라는 명칭이 사라져 버린채 온양6동이 됐다. 아무리 의회의 고유 권한이라 하지만 이건 횡포다. 정말 허망한 일이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권 위원장은 또 “온주동의 역사는 신라 문무왕 3년에 붙여진 ‘온주’라는 옛 지명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려 13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이름의 가치를 시의원 몇 명의 결정으로 던져버린단 말인가. ‘온주’는 우리세대를 끝으로 영원히 역사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죽기 전에 지역 이름을 되찾으려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동 이름 바꾸니 혼란만 가중되더라

아산시의회 여운영 의원이 지난 18일 열린 시정질문에서 "동이름을 변경한 이후 오히려 혼란만 부추겼다"고 지적하자, 복기왕 시장이 "사실 그렇다"고 시인했다.

택시를 타더라도 온양6동 보다는 온주동이나 구온양, 읍내, 향교말 등을 더 잘 알더라.

동 이름 바뀐지 7년이나 지났지만 옛 지명으로는 위치가 연상되지만, 온양1~6동 만으로 찾아다니기에는 혼란스럽다.

여운영 의원은 지난 10월18일 열린 시정질문에서 동이름을 변경한 이후 오히려 혼란만 부추겼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여 의원은 “동 이름이 바뀐지 7년이 지났지만 현재 사용하는 주민들조차 자신이 몇 동에 사는지 모르는 주민들도 많았다. 원주민뿐만 아니라 외지에서 이주해 온 분들은 더더욱 모른다. 아직까지 행정동이 그 주민들에게 인식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여 의원은 이어 “동사무소, 법원, 등기소 등의 법정서류에서도 혼선이 있다.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는 우편번호 검색이 안되거나 쇼핑몰에서 주소지 에러발생 등 불편이 크다”며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정비와 관리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자신이 제출한 입사원서에서 자신의 거주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심사위원의 질문에 당혹스러워 한 어느 수험생의 사례까지 예를 들며 주소지 혼선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복기왕 시장도 “공식적으로 조사된 수치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많은 분들이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이 객관적 사실인 것 같다. 정도는 다르지만 온양4동과 5동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건의가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여운영 의원은 “시민들이 행정동 명칭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지, 또 이것을 변경해야 될지, 변경한다면 어떤 이름으로 할지, 대대적인 의견수렴이 필요하다”며 특히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온양6동 문제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산시민모임 김지훈 사무국장은 “당초 시민들의 여론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명칭을 변경한 의회에 분명 문제가 있었다. 지금이라도 시민이 겪는 불편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한 후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제성과 행정의 효율성만 따지다 보면 더 크고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며 “다소 예산이나 행정력이 들더라도 다수의 시민들에게 행복지수를 올려주는 시정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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