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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때문에 일 년 농사 망쳤어”

농산물 비싸다고 탓만 할 수만 없는 농촌의 절박한 현실

등록일 2010년10월04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30년째 포도농사를 지어 왔다는 박종국(52)씨는 "올 한해 비 때문에 농사를 다 망쳤다"고 푸념했다. 

“비 때문에 일 년 농사 망쳤어. 수확기에 어디 단 하루도 햇빛 쨍쨍한 날이 있었나. 태풍에 쓸리고, 물러 터지고, 착색도 떨어지고, 올해 농사는 안 짓는 것만도 못했어.”

아산시 탕정면 갈산리에서 올해로 30년째 포도농사를 지어 왔다는 박종국(52)씨의 한숨 섞인 푸념이다.

포도농사 잘 짓기로 소문난 그도 악천후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추석연휴를 앞두고 찾은 박 씨의 포도농장에는 상품성 잃은 포도송이가 바닥에 떨어져 자연 발효 되면서 당 짙은 포도향이 진동을 한다.

피부 속 깊이 파고드는 그 향기는 잘 익은 포도주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발효되는 포도의 향기가 짙으면 짙을수록 속 타는 농부의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커진다.

화접이 안돼 성장하지 못한 포도송이가 빗물에 곯아 나뭇가지에 매달린채 발효되고 있다. 

상품성이 없는 포도송이가 과수원 바닥에 버려져 자연발효되고 있다. 

수확할 포도보다 버려지는 포도가 더 많다. 이렇게 버려진 포도가 자연발효되며 포도밭은 당향과 포도주 냄새가 진동해 정신까지 아득해 진다. 

개화기, 수확기 궂은 날씨로...올해 수확량 2009년의 30%에 불과

박 씨의 올해 농사는 작년 수확량의 30%에 불과하다. 바닥에 버려지는 포도송이를 바라보면 한숨이 절로 난다. 계산상으로 생산비 인상분은 제외하더라도 작년보다 최소한 3배의 가격은 받아야 작년의 소득이 생기지만 출하가격은 5㎏들이 한 박스에 1만8000원 안팎으로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또 작년 같으면 인터넷을 이용한 택배판매와 서울·일산 등 전국에서 출하되는 포도와 당당히 경쟁해 입맛 까다로운 수도권 소비자들에게 가장 높은 가격으로 선택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 씨는 작년에 2만5000원으로 거래되던 택배판매와 수도권 출하를 올해는 모두 포기했다. 자칫 상품성 떨어지는 포도를 출하했다가 탕정포도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소비자들에게 한 번 신뢰를 쌓기는 어렵지만, 수 십 년간 어렵게 쌓아온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은 한 순간 이다. 내년을 위해 그리고 탕정포도의 이미지 훼손을 막기 위해 올해 출하를 포기한 것은 참 잘 한 결정인 것 같다.”

적당한 햇볕을 받으며, 제대로 익은 포도는 수확기로 접어들면서 검은 빛에 하얀 분말을 입힌 것 같은 탐스럽고 맛깔스런 빛깔을 갖는다. 그러나 올해는 일조량이 부족해 보랏빛으로 변색돼 미완의 작품이 되고 말았다.

농민들이 상품성 없는 포도는 잘라서 버리고, 잘 익은 포도를 수확하고 있다. 

포도농사 잘 짓기로 소문난 박종국씨 포도농장에서도 올해는 수확량이 작년의 30%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우수한 상품성은 물론 빛깔까지 제대로 갖춘 포도송이가 눈에 띈다. 

이처럼 탐스러운 한 송이 포도를 키워내기 위해 농부들이 지난 1년간 흘린 땀방울이 눈물겹다. 

과일값이 비싸다고 탓만 할 수 없는 농촌의 절박한 현실이 안타깝다. 천안-아산을 연결하는 가두판매장에서 농민들이 현실의 고통을 감추고 미소를 띄우며 소비자를 부르고 있다. 

결국 박 씨는 농장과 인접한 도로에서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소비자들과 직거래 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직접 상품을 보고 구매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상품성이 다소 떨어지면 조금 더 깎아주거나 한 송이 더 얹어주며, 적정가격을 합의 하는 방식이다.

몇 년 전부터 비료와 농약 값이 폭등해 농업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농부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최악의 일기가 수확을 시작할 무렵부터 수요가 절정에 달하는 추석때까지 계속됐다.

농산물이 비싸다고 탓만 할 수 없는 농촌의 절박한 현실을 박씨의 포도농장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이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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