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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 둔포면 염작2리 이건훈 이장이 태풍 곤파스에 떨어져 상처난 배를 들여다 보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
“추석 명절에 맞춰 출하하려고 수확 날짜까지 잡았다. 과수원에서 일할 사람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아 어렵게 수확시기와 필요한 인원수를 맞췄다. 그런데 그 며칠을 앞두고 태풍이 상륙해 지난 한 해 어렵게 잘 키운 배를 난도질했다.”
아산시 최대의 과수단지인 둔포면 염작리에서 태풍 곤파스가 지나간 마을 곳곳을 돌며 피해상황을 파악하느라 분주한 이건훈(54) 이장을 만났다.
염작리는 전체 면적의 90% 이상이 배 밭이다. 이건훈 이장도 올해로 30년째 배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농민들은 예년에 비해 추석이 빨라 수확 시기를 일찍 잡았다. 그런데 수확을 앞둔 성과들이 태풍 앞에 힘없이 후두둑 떨어진 것이다.
농민들은 매년 같은 농사를 지어도 해마다 똑같은 마음고생을 되풀이 한다. 이번처럼 태풍이라도 만나면 고스란히 수확량 감소로 이어져 농업 소득에 막대한 타격을 준다. 반대로 풍년이 들어도 가격 폭락을 걱정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2008년에는 수확한 배를 땅 속에 갈아엎기도 했다. 홍수출하로 인한 가격폭락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농업환경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특히 과수농민들에게 올해는 유난히 힘에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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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에 떨어진 배가 물이 흥건하게 고인 과수원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올 가을에 대형 태풍이 1~2차례 더 한반도에 상륙할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가 농가들을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
최근 몇 년 사이에 비료를 비롯한 각종 영농자재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관리기와 트렉터 등 각종 농기계와 운반수단인 화물차를 움직일 때도 기름 값 폭등으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올해는 과수농업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개화기에 기온이 뚝 떨어져 냉해피해가 심각했다. 또 계속된 비와 궂은 날씨 때문에 인공수분도 불안했다. 과수농가는 하루하루를 살얼음판을 걷는 듯 했다.
“농사일은 사람의 노력이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하늘이 짓는다. 농민들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자연재해는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렵게 지은 농산물들이 제값을 받고, 농민들이 이 땅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며, 소외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 모진 과정을 다 거쳐 수확하려는 순간 태풍이라는 마지막 복병을 만난 것이다. 떨어진 배를 주워든 이건훈 이장의 투박한 손이 지난 30년간의 세월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정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