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서은옥(간호사), 김정애(양어머니), 조재주(주치의), 그리고 아기는 하은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부와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아기
이 글은 친부모마저 친권을 포기한 기형을 안고 태어난 박하은 어린이를 양자로 입양시켜 사랑으로 키우는 어느 부부의 이야기를 단국대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차현숙 수간호사가 글로 표현한 내용이다.
박하은 어린이는 오는 5월17일 첫돌을 맞는다. 박하은 어린이를 둘러싼 사랑과 감동의 휴먼스토리는 오는 12일(금) ‘KBS 병원 24시’에서 보다 자세히 볼 수 있다.
<편집자주>
버림받은 핏덩어리.
여름 더위가 막 시작되던 2001년 5월 중순 어느 날. 단국대학교 병원(병원장 김명호) 신생아중환자실에 색다른 한 아기가 찾아왔다.
모두의 눈을 놀라게 한 것은 팔꿈치 부근에서 오그라진 채 손가락 한 개 씩만 달려있는 짧은 손이었고, 자세히 보니 양발과 얼굴 생김새도 뭔가 다른 아기들과는 달라 보였다.
보통 일반적으로 대할 수 있는 선천성 기형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아기의 모습에 병원 의료진들도 많이 당혹스러워했지만 무엇보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기의 부모였다.
비교적 건강한 엄마에게서 별다른 증후도 없이 임신 34주에 조산아로 태어난 아기는 동반된 기형을 밝혀내기 위해 여러 가지 검사를 하게 되었고, 병명조차 생소한 ‘Nager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게 됐다.
외적으로 나타나는 기형뿐만 아니라 십이지장에도 문제가 있어 입으로 영양섭취가 불가능한 상태로 응급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모든 치료를 포기하고 싶어 하는 부모들을 간신히 설득해 어렵게 수술을 받고 회복해 입으로 분유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전반적인 상태가 호전돼 퇴원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아기의 부모는 끝내 친권 포기의사를 밝히고 양육을 거부했다. 장애인 복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특히, 24시간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장애아기를 맡아줄 만한 시설을 찾을 수 없었기에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병원 사회사업과에 아기의 입양기관으로의 섭외를 의뢰해 놓고, 나름대로 여기저기 수소문하던 차에 홍성사회복지관을 통해서 반가운 연락이 왔다.
그것도 복지시설이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 아기를 입양할 의사를 비쳤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이 며칠 후 복지관의 소장님과 양어머니 되실 분이 아기를 보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아기의 심한 기형 때문에 많이 놀라고 상심하면 어쩌나 걱정하던 것은 우리의 기우였다. 아기를 처음 본 엄마에게서 들은 첫마디는 “네 눈은 참 천사처럼 예쁘구나”하는 말이었다.
아기는 정상인의 얼굴보다 한결 돌출된 형태의 안면구조와 약간 짧은 턱선으로 조금은 이상스러워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크게 쌍꺼풀진 눈과 길고 진한 속눈썹은 매력적으로 보일 만큼 예쁜 게 사실이었다.
지금도 엄마는 “하나님이 우리 하은이 눈을 너무 공들여 예쁘게 만드시느라고 시간이 모자라서 손을 미처 다 못 만들고 세상에 보내셨나봐요” 하신다.
한 손에 한 개씩만 달랑 달려 있는 아기의 손가락을 보고도 “이 다음에 커서 사랑하는 사람 만나면 예쁜 반지 끼워 달래려고 손가락을 챙겨 왔구나. 아마 그 손가락은 분명히 4번째 손가락 일거야” 하셨다.
저토록 따뜻하고 아름다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기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기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우리 모두 마음이 밝아졌고, 너무도 아름다운 그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작은 사랑의 씨앗은 거대한 사랑을 낳고 양어머니에게는 이미 장성한 3남매가 있었다. 독실한 크리스찬인 그녀는 자녀들이 웬만큼 커서 가정이 안정되면서부터 장애아를 한 명 입양해서 기르고 싶은 생각이 들어 하나님께 기도하며 준비중이었다고 했다.
남편과 시부모님,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인 세 자녀까지도 아기의 입양을 허락하면서 모든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돼 갔다. 친 부모와의 면담, 호적정리 등 입양수속을 진행하는 동안 우린 가슴 뭉클한 감동을 다시 한 번 받게 됐다.
아기의 친부모는 젊은 신혼부부로 아기가 첫 출산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형아의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했다. 내면에 분노가 가득 차서 아무에게나 찌를 듯이 가시 돋친 말을 내뱉기 일쑤였고,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양어머니는 그런 친부모의 상처받은 마음까지 사랑으로 싸매고 위로해서 치유시켰다.
“젊은 부부가 첫아기를 장애아로 낳고 얼마나 상심이 크고 고통스러웠겠어요. 바위덩이처럼 무겁게 마음을 짓누르던 그 짐은 이제 저한테 내려놓으시고, 하나님이 다시 한번 좋은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하고 다시 건강한 아이도 낳고 행복한 가정 이루고 사세요. 일말의 죄책감도 부담감도 다 털어버리고 이 다음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거든 잊지 말고 어려운 사람 도우며 사시기 바래요. 하은이는 제가 건강하게 잘 키우겠습니다.”
예고 없이 닥친 불행으로 인해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젊은 부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아기는 저를 낳아준 부모로부터 떠나 오래 전부터 자신을 위해 준비되어진 듯한 사랑의 울타리 속으로 가게 되었다.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며 무더위가 한창이던 7월 중순. 그동안 돌봐주던 의료진의 축하를 받으며 아기는 퇴원했지만, 장염과 폐렴 등으로 여러 차례 병원을 들락거리며 예쁘게 커 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요번엔 또 무슨 일로 입원했느냐며 걱정을 하지만 다시 볼 때마다 달라진 아기의 모습이 한편으론 우리를 기쁘게도 한다.
살짝 벌린 입 속으로 하얗게 드러나는 이빨 두어 개 하며, 오그라진 짧은 팔을 끌어다가 손가락을 입에 넣고 빠는 모습, 몸을 뒤척여 뒤집기 한판에 성공하는 대견한 모습까지….
얼마 전에는 팔꿈치에 오그라든 손을 수술하기 위해 정형외과에 입원했고, 드디어 4월2일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어서 성형외과의 수술이 한 번 더 남아 있기는 하지만 모든 수술 과정을 잘 마치고, 별다른 합병증 없이 회복해서 두 팔을 쭉 펴고 예쁘게 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제2의 ‘레나마리아’를 꿈꾸며 요즘 하은이 엄마에게는 또 하나의 소망과 목표가 생겼다. 1968년 스웨덴에서 두 팔이 없이 한 쪽 다리마저 짧은 중증장애인으로 태어난 레나 마리아!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라는 책의 저자인 그녀는 유일하게 정상인 오른 쪽 다리로 정상인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낸다.
수영과 운전, 요리와 십자수, 피아노와 지휘 등 못하는 것이 없는 듯하다. 최근에는 가스펠 싱어로서 전 세계를 다니며 콘서트를 하고 있는데, 그녀는 ‘장애는 오히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본질적인 요소’라고 서슴없이 말할 만큼 신이 허락한 자신의 삶을 충만하고 값지게 살아가고 있다.
엄마는 하은이도 장애를 극복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가꾸어 갈 수 있기를, 그래서 레나 마리아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라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직은 열악한 장애인 복지문제 때문일까? 아니면 사회전반에 만연돼 있는 장애인 경시 풍조 때문일까? 아이에게 심각한 장애가 있는 경우, 특히 뇌손상에 따른 장애가 예상되는 경우에는 절반 이상의 부모가 아기를 포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뜻을 다 받아들여 해결해 줄 방법도 없지만 장애아의 부모가 겪어야 할 충격과 불안, 암담하고 가슴 저린 육아의 고통을 들여다 볼 수 있기에 무턱대고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질책할 수도 없게 된다.
부모와 수차례 면담을 통해 격한 감정을 가까스로 달래고 때로는 체념하듯 운명이라 여기기도 한다.
때로는 별다른 방도가 없어 마지못해 현실을 수용하는 부모들에게 아기를 넘겨주면서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할 장애인에 대한 책임을 일방적으로 부모에게만 떠넘기는 것 같은 석연찮음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친부모도 수용할 수 없었던 장애아를 뜨거운 사랑으로 기꺼이 보듬어 안은 하은이 엄마처럼, 소외된 이웃들에게 우리의 가슴을 조금씩만이라도 열어 줄 수 있다면 한국에서도 제2, 제3의 레나 마리아가 나올 수 있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