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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이 만개했지만 연일 계속되는 비로 화접시기를 넘긴 농가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
“아이구 어쩐댜, 이러다 배꽃 다 지겄네. 올해는 날씨까지 도움을 안주는구만.”
“이러다 배가 하나라도 영글겄어? 아주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만. 하늘이 잠시도 빠꼼할 새가 없어.”
4월28일(수) 기자가 방문한 아산시 최고의 배 주산지인 음봉면·둔포면 일대에는 농민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작년보다 1주일~열흘 늦은 지난 주말부터 배꽃이 만개하기 시작했지만 단 하루도 제대로 화접(인공수분작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관련기사 4월17일, 4월22일 보도)
게다가 새벽에는 영하로 기온마저 뚝 떨어져 꽃잎이 냉해를 입고, 한낮에도 10℃를 넘기지 못하는 이상저온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또 비를 동반한 강풍이 연일 계속불어 인공수분을 하지도 못한 채 꽃잎이 떨어져 버릴까 노심초사다.
또 화접을 마친 이후에도 5~6일 정도는 꽃송이가 달려 있어야 하는데, 5월 초까지 이상저온에 일조량부족이 계속될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에 농민들 시름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현지 농민들에 따르면 배꽃은 70%이상 만개했지만 반대로 화접을 제대로 마친 농가는 30%도 채 안될 것이라며 울상을 짓고 있다.
또 예년에는 화접시기가 되면 강한 봄볕과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운 날씨로 힘들었지만 지금은 4월 말인데도 두꺼운 겨울옷에 우비까지 입고 비가 그치면 밭으로 나가기 위해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배 과수농민인 박정우(42·아산시 음봉면)씨는 “농사의 7할 이상은 날씨가 좌우하는데 올해는 날씨로 인한 피해가 더욱 심각하다. 특히 일년 농사 중 가장 중요한 시기인 화접기간에 농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상황인 악천후가 연일 계속되고 있어 미칠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아산시농업기술센터 권순택 과수팀장은 “요즘 날씨가 배꽃 화접에는 최악의 일기상황이다. 지난 주말부터 이미 배꽃이 만개했지만 단 하루도 화창한 날씨를 보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배꽃은 인공수분을 제때에 하더라고 16℃이상이 돼야 열매를 맺는데, 배꽃이 만개한 요즘 한낮 기온이 7~8℃에 머물고 있어 정상적인 생육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산시 최고의 배 주산단지인 음봉면과 둔포면 일원에서는 750여 농가 823㏊에서 배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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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작년보다 개화가 열흘정도 늦었지만 이상저온 현상으로 4월말 현재 기온이 한낮에도 7~8℃에 머무르는 등 냉해피해가 심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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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조량 부족과 궂은 날씨로 화접시기를 놓쳐버린 과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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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 음봉면과 둔포면 일원에는 작년에 비해 열흘 늦게 배꽃이 만개했다. |
농업피해 여기서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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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비가 그치자 농민들이 화접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이들은 추운 날씨 탓에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있다. |
올봄 일조량은 최근 40년 중 가장 적은 것으로 기록됐고, 이런 날씨는 5월 초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3월1일∼4월20일까지 강수량은 138.2㎜로 평년과 비슷했지만 비온날은 19.6일로 평년(12.9일)보다 6.7일 많았다. 일조시간은 247.1시간으로 평년(338.1시간)에 비해 73%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올해 일조량은 1971년 이후 최근 40년 사이 가장 적은 수치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지난겨울 한파를 몰고 왔던 찬 대륙 고기압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날씨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돼 일조량이 특히 중요한 농작물 피해는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아산시농업기술센터 권순택 과수팀장은 “현지 농민들에게서는 매일 냉해피해가 접수되고 있지만 일주일 정도 더 지나봐야 구체적인 피해규모나 상황을 알 수 있다. 다행히 화접을 마친 농가라 하더라도 열매가 맺혀봐야 정상적인 수정이 얼마나 이뤄졌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산농민회 이연재 간사는 “올해는 본격적인 영농철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날씨로 인한 심각한 피해사례가 관찰되고 있다. 지난주 배방면에서는 시설농가 뿐만 아니라 노지오이를 생산하는 150여 농민들 중 80% 이상이 냉해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750여 과수농가가 심각한 냉해피해를 입는 등 천재지변에 가까운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벼농사를 위한 못자리나 각종 밭작물도 언제 심어야 할지 막막하다. 또 앞으로 예상되는 피해가 얼마나 더 확산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갈수록 급변하는 이상기온과 농촌고령화에 대비한 영농지원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특히 지역 실정과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지자체차원의 대비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