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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는 인주RPC에 보관중인 공공비축미 잔여곡물을 농협창고로 옮기려 했으나, 이를 공공비축미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농민들과 충돌해 결국 무산됐다. |
“시간이 지날수록 참담하기만 하다. 1년 동안 뼈 빠지게 농사지어 수확한 곡식을 모두 인주RPC에 넘겼는데 돈 한 푼 못 받았다. 자식들 학비는커녕, 생활비마저 조달할 방법이 막연해졌다.”
지난해 인주RPC(미곡종합처리장)에 미곡을 판매한 후 대금을 받지 못한 한 농민의 하소연이다.(본보 3월23일, 4월2일 보도)
또 다른 농민은 형제, 친인척들이 십시일반 생활비를 조금씩 모아서 도움을 주고 있지만,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 또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한다.
정부재산인 공공비축미를 개인 채무변제를 위해 불법 유통시켜 4월1일에 구속됐던 인주RPC 대표 K씨가 5월6일 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K씨는 2008년산 공공비축미 470톤을 보관하던 중, 339톤을 빼돌려 5억원 상당(1톤당 147만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산시는 K씨가 석방된 다음날인 5월7일 인주RPC에 보관 중인 공공비축미 잔량을 회수해 농협창고로 옮기려다 이를 저지하는 농민들에 의해 무산됐다.
농민 A씨는 “인주RPC에 보관중인 미곡은 공공비축미도 있었지만 농민들이 개별적으로 납품한 미곡이 더 많을 것이다. 현재 아산시에서 농협창고로 옮기려는 미곡이 공공비축미라는 보장은 없다”고 주장했다.
농민 B씨는 “아산시는 농민은 죽건 말건 인주RPC에 보관하던 공공비축미만을 챙긴 후, 발뺌하려는 속셈이 분명하다. 정부의 각종 정책자금을 지원받아 사업하던 인주RPC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아산시의 책임도 크다”며 아산시를 비난했다.
이에 대해 아산시 관계자는 “공공비축미는 보증보험에 가입됐기 때문에 금융기관에 이행을 청구하면 정부는 손실 없이 이번 사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인주RPC 정상화가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쉽게 그 어떤 결정도 쉽게 내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주RPC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한 주민은 “인주RPC가 전국 각지에 납품한 곡물대금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이 대금이 회수된다면 어느 정도 농민들의 곡물대금을 정산해 줄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감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인주농협이 인주RPC를 인수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인주RPC의 의사도 확인할 수 없고, 인주RPC가 매각의사를 밝힌다 하더라도 정확한 채무관계파악과 책임설정, 사업성검토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편 인주RPC에 곡물을 팔고 대금을 못 받은 개별농민은 30~40명 정도로 추정된다. 농민들이 받아야 할 대금은 3억원~1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실태파악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관련된 농민들은 이후 전개될 상황에 대해 불안감만 증폭되고 있다.
<이정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