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산시 영인면 백석포리에서 만난 정건의씨(79)는 일제시대부터 70여 년간 벼농사를 지어 왔지만 올해같은 풍년농사는 처음 이라며 벼 이삭을 한 아름 안고 카메라 앞에 섰다. |
“내가 농사지은 지 한 갑자가 넘었지만 올 같은 풍년은 처음이여. 이 벼이삭 좀 봐. 빛깔도 좋고, 한 아름 안으면 묵직한 것이 잘 된 농사가 이런 거구나 싶어.”
본격적인 수확철로 접어들면서 가을걷이가 한창인 아산시 영인면 백석포 들녘에서 만난 정건의씨(79)의 말이다. 일제 강점기 였던 1929년 인주면의 한 농가에서 태어난 정씨는 걸음마를 하면서부터 농사일을 거들기 시작해 초등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본격적인 농부의 길을 걸어 왔다고 한다.
“당시에는 왜 그렇게 쌀이 귀했는지, 쌀농사를 지으면서도 쌀 구경 한 번 제대로 못했어. 지금은 남아도는 것이 쌀이 됐지만, 그렇다고 먹을 것을 귀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되지.”
정씨는 평생 땅의 정직함만을 믿고 농사지어 5남매를 모두 교육시켜 출가시켰다. 이제 일손을 놓을 때도 됐으련만 농사일을 놓을 수는 없단다. 농촌에서 농업과 함께 다져온 삶은 정씨의 모든 것이며, 마지막 한 숨까지 농업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고.
정씨는 씨 뿌리고, 가꾸고, 수확하기를 60여 년간 해 왔다. 일제 강점기부터 6·25 한국전쟁, 군사정권, IMF 다 들녘에서 겪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농사짓기 힘든 적도 없다고 한다.
“농사 일이 어떠냐고? 말도 마. 불과 2~3년 전만 해도 5000원하던 비료 한 포대 값이 2만원까지 올랐어. 품앗이 할 사람이 없어서 용역회사에서 사람 한 명 부르면 하루 인건비가 8만원이야. 거기다 기름 값, 각종 농자재 값도 감당하기 힘들어. 그렇지만 쌀값은 항상 제자리야.”
정씨의 푸념은 계속됐다.
“이렇게 농사짓기 힘들어서 농민들이 모두 파산하고 나면 그땐 정말 어쩌려고? 외국에서 들어오는 농산물 값싸다고 좋아들 하지? 우리 농업기반 무너지면 그놈들이 언제까지 그렇게 값싸게 줄 거 같아?”
올해는 초가을부터 비나 태풍 한 번 없이 벼의 최적생육기간이 계속 유지됐다. 또 풍부한 일조량은 품질 좋고, 맛좋은 최고의 쌀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아산시농업기술센터는 예년에 비해 10% 증산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이처럼 사상 유래 없는 풍년 농사를 짓고도 한 해 농사의 손익분기를 생각하며 한숨짓는 농부의 표정에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이 교차하고 있다. 그러나 수확하는 이날만큼은 풍년농사의 기쁨만을 만끽할 것이라며 정씨는 기자의 카메라 앞에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콤바인이 들어갈 수 있도록 논 주변의 벼를 베는 정건의씨.(정씨에 따르면 볏 나락의 빛깔과 무게가 풍년농사를 실감나게 한다고 말했다.) |
<이정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