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내려온 괴짜의사 나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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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류마티스내과 나성수 교수 연구실에서 |
최근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에 괴짜의사가 나타났다는 소문에 찾아가 봤다. 이름은 나성수(41).
방금 잠에서 깨어난 듯 부스스한 머리와 파르라니 돋아난 수염이 마치 2~3일간 바깥 잠을 잔 것처럼 보였다. 본인 스스로 사실이 그렇다고 답한다.
한 번 연구에 몰두하면 집에 가는 시간이나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그는 아예 본인의 연구실을 숙소로 삼았다. 그 흔한 야전침대도 없다. 자신의 몸조차 다 받아주지 못하는 비좁고 짤막한 소파에 대충 기댄 채 눈 한번 붙이면 그걸로 수면 끝.
컴퓨터 모니터 위에 걸린 백보드에는 매직펜으로 빼곡하게 적어놓은 무언가가 가득하다. 본인의 일정관리부터 방금 생각해 낸 자신만의 독특한 영감까지 다양하다. 그의 정체가 점점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천안으로 내려오기 직전까지 국내 수많은 의학도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그의 아내 역시 서울에서 개원의사로 환자를 돌보고 있다.
그 잘나간다는 병원에서 지방으로 내려온 이유가 뭐냐고 묻자 “지방, 특히 농촌에는 진료를 받아야할 환자들이 많다. 반대로 서울에는 좋은 의료 환경과 의사들이 많다. 그런데 서울까지 가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농촌지역 환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때문에 환자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지방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도시와 농촌은 환자의 성향부터 다르다. 도시에서는 나름대로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을 찾지만 농촌지역은 참고 넘어가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진통제 몇 알로 버티다 병이 커졌을 때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너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얼마 전 그는 천안에 오자마자 폐출혈로 찾아온 루프스 환자를 진료했다. 이 환자는 사망 직전 단계로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불가능 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나 나교수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본인의 경험과 의학지식을 총 동원해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켰다.
그리고 이를 전 세계 학계에 보고하기 위해 국제 학술지에 발표할 논문을 준비 중이다.
한의사와 양의사 넘나들며 진료영역 넓혀
나 교수는 처음부터 양의학을 전공한 것이 아니다.
그는 원광대학교에서 8년간 한의학을 공부하고 환자를 진료했었다. 그러다 뜻한바 있어 경희대 의대로 편입해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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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교수 연구실의 한쪽 벽면에 빼곡하게 적힌 백보드가 매우 인상적이다. |
“환자를 진료하는데 있어 한의학을 전공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한의학을 공부할 때 맥을 집거나 침을 놓던 손끝의 민감한 감각이 척추나 혈관시술에 큰 도움을 준다. 특히 연로한 환자분들이 양의학에서는 실체조차 없는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방으로 해석하면 이해되는 부분이 많다.”
한의학의 경험을 살리면 양방에서 큰 병이 될 수 있는 부분까지 찾아내는 일도 있다고 한다. 때문에 간혹 의료계에서 양의사와 한의사가 환자에 대한 진료권을 가지고 영역다툼이나 분쟁을 일으킬 때면 너무나도 안타깝다고.
“간, 심장, 폐, 위…이러한 해부학적 명칭은 이미 한의학에서 오래 전부터 정의된 용어들이다. 어떻게 보면 양의학에서 한의학용어를 빌어다 쓰는 형태다. 반면 한의학에서 정리되지 않은 용어나 의술이 양의학에서 정리된 경우도 많다. 상호 보완관계에서 의료 활동을 펼친다면 결국 고통받는 환자에게는 가장 이상적이지 않겠는가.”
그의 진료과목은 류마티스 내과다. 류마티스는 고대 그리스어 류마(흐르는 물)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말 그대로 몸속에 떠도는 나쁜 체액이 전신의 관절과 장기에 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는 류마티스 관절염이 단순히 관절의 병만이 아니라 전신의 면역계 이상으로 인한 병이며 관절을 주 타깃으로 공격하는 병을 말한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전 국민의 1% 정도에서 나타나는데 과거 류마티스 관절염은 다른 질병에 비해 잘 인식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정확한 진단이 부족했거나 관절의 병은 모두 류마티스라고 하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고 한다.
가장 흔한 증상은 여러 관절의 통증과 부종이다. 인체 중에서 나쁜 체액이 침범하지 않는 관절이 없다. 또 손목, 팔꿈치, 무릎관절이 붓고 물이 차기도 한다.
국내 류마티스내과에서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나교수. 그는 농촌지역에 환자가 많지만 정확한 병명조차 모른 채 고통 받는 현실이 안타까워 일부러 도농복합도시인 천안을 찾았다고 한다.
“환자가 의사에게 건네는 모든 말 속에 병의 원인과 해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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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표정과 제스처는 세련되지 못하다. 몇 차례 교정을 해가며 촬영을 했지만 역시 폼이 안난다. 정가에 진출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인 것 같다. 그의 매력은 외양이 아닌 가슴속에 내재된 뜨거운 마음인 것 같다.(기자생각) |
나교수는 본인이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환자가 의사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한마디 놓치지 말고 메모해 둘 것”을 주문한다. “환자의 말 속에 그 환자를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해법이 있기 때문”이란다.
또 “때로는 환자들이 의학적으로 실체조차 없는 증상을 호소하지만, 이 역시 의사가 귀담아 듣고 마음으로 느끼며 진심을 담아 어루만져 준다면,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며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오늘도 밤늦도록 귀가를 미룬 채 연구실 소파에 기대 연구에 몰두하는 나성수 교수의 남다른 열정이 농촌지역 어디선가 고통 받는 환자에게 ‘희망’의 빛으로 다가가고 있다.
<이정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