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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부이야기

60여 년간 침묵의 세계에 갇혀 생활…“삶의 가치는 경제적 풍요와 물질이 아니다”

등록일 2008년04월08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충남시사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자가 지난 10년간 취재현장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부부와 그 자녀들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 한다.

북면 이대식-김원례 부부.(청각장애를 안고 단절된 세상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두 부부와 5남매, 이들이 엮어가는 삶의 모습과 가치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야기 주인공은 청각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천안시 북면에 사는 이대식(65)·김원례(66)부부와 5남매 이야기로 2006년 5월 보도돼 수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줬다.

당초 취재에 나섰을 때는 연분홍 복사꽃이 만개한 4월 어느 날 이었다. 산골마을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러 간 기자는 비탈진 화전에서 한 산골 아낙이 앞서가며 비료를 뿌리고, 뒤따르던 농부가 소를 이용해 쟁기질을 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기자를 이들 산골 부부는 환한 웃음으로 맞아줬고 이들 부부의 애틋하고 절절한 사연을 알게 됐다. 두 부부는 청각장애를 안고 있었다. 고요와 침묵 속에 갇혀 살았기 때문에 말하는 방법도 배우지 못했다.

연분홍 복사꽃이 만개한 화창한 4월의 어느 봄날 이야기 속의 주인공 이대식씨가 지게에 쟁기얹고 소를 몰며 밭으로 향하고 있다.

이대식씨는 세상과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세상사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정식 수화는 아니지만 의사소통을 위해 독자적인 손동작을 개발해 가족끼리는 큰 불편 없이 의사소통을 한다. 또 어릴 때 어깨너머로 배운 서툰 한글도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씨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은 농사짓는 일이다. 몸은 고되지만 땅을 일궈 곡식을 키우는 일이 그의 생업이다.

김원례씨는 일곱 살 되던 해에 고열을 몹시 앓았다고 한다. 의료사정이 좋지 않던 당시 상황에서 김씨는 청각을 잃었고, 이씨와 똑같이 침묵의 세계에 갇혀 버렸다. 김씨는 또렷하지는 않지만 일곱 살 때까지 배운 언어로 기초적인 의사표현을 하고 있다.

서로 불운한 처지의 두 사람은 고모님의 주선으로 운명적으로 만난다. 둘은 서로의 아픈 곳을 쓰다듬으며 사랑을 키워 나갔다. 그리고 첫째 은용(42), 둘째 기환(40), 셋째 주환(37), 넷째 은희(34), 막내 성환(31) 다섯 자녀를 두었다.

이들 부부는 말을 배우지 못해 자녀들에게 세련된 언어로 가르침을 주거나 물질적 도움을 주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훌륭하게 5남매를 키워냈다. 자녀들은 몸소 실천하는 부모로부터 세상사는 법을 배웠다.

이들을 취재한지 2년이 지났다. 요즘 어떻게 생활하나 궁금해 연락을 취해봤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은희씨가 반갑게 맞아줬다.

이대식씨는 요즘 본격적인 영농철이 시작되자 새벽 5시부터 농사일을 시작한다고 한다. 김원례씨도 든든한 일꾼인 누렁소를 배불리 먹여 살찌우고 있다고. 
그해(2006년5월) 결혼한 큰 아들 기환씨는 건강하고 예쁜 아기를 낳았다고 한다. 미국 유학중인 막내 성환씨는 대학정규과정을 마치고 대학원 재학 중인데 내년이면 석사학위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은용, 주환씨 역시 부모님댁을 오가며 재미있게 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줬다.

이대식씨 가족이 사는 이야기는 모든 가치가 경제적 풍요와 물질만은 아니라며, 오랫동안 긴 여운을 남겼다.
<이정구 기자>

2006년 5월의 이대식-김원례 부부 이야기 다시보기

                            아버지의  위대한  유산

            청각장애인 이대식-김원례부부...5남매 번듯하게 키워

  연분홍 복사꽃이 만개한 화창한 4월의 어느 봄날 이야기 속의 주인공 이대식씨가 지게에 쟁기얹고 소를 몰며 밭으로 향하고 있다.

연분홍 복사꽃이 만개한 지난 4월의 어느 날, 풍경화에서나 볼만한 장면이 포착됐다.

산골 아낙은 앞서가며 두엄과 비료를 뿌렸고, 뒤따르던 농부는 소가 끄는 쟁기로 흙을 뒤엎고 있다. 산골마을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러 간 기자는 풍경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빠져버렸다.

천안시 북면에 사는 이대식(63)·김원례(64) 부부는 언제나 둘만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다. 사랑의 결실로 다섯 남매가 태어났다. 다섯 남매는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자랐다. 두 부부가 만든 가족공동체에는 애틋한 사랑이 흘러 넘치고 있다.

이대식-김원례 부부는 기자를 위해 소를 앞세우고 멋진 포지를 취해 주었다.

남편 이대식씨는 청각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대부분 청각 장애인들은 언어습득이 쉽지 않다. 이씨는 아직까지도 말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지난 63년을 고요와 침묵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이씨는 세상과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그만의 세상사는 법을 배워야 했다. 언어 장애인들이 주고받는 정식 수화는 아니지만 가족끼리의 의사소통은 손동작만으로도 가능하며 어릴 때 어깨너머로 배운 서툰 한글도 요긴하게 사용한다.

이씨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은 농사짓는 일이다. 몸은 고되지만 땅을 일궈 곡식을 키우는 일이 이씨에게 가장 즐거운 낙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씨는 지금도 새벽부터 밤늦도록 땅에서 자라는 곡식들과 대화를 나눈다.

김원례씨의 고향은 경기도 안성이다. 어렸을 적 마을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로 불리던 김씨는 일곱 살 되던 해에 고열을 몹시 앓았다고 한다. 의료사정이 좋지 않던 당시 상황에서 김씨는 청각을 잃었고 이씨와 똑같이 침묵의 세계에 갖혀 버렸다. 그러나 김씨는 또렷하지는 않지만 일곱 살 때까지 배운 언어로 기초적인 의사표현을 하고 있다.

서로 불운한 처지의 두 사람은 안성으로 시집간 고모의 주선으로 만남을 갖는다. 그리고 둘은 서로의 아픈 곳을 쓰다듬으며 사랑을 키워 나갔다. 그리고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부부는 모두 교육의 혜택을 받지는 못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땀흘려 일하고 정직하게 살고 있다.

이들 두 부부는 이제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읽는다.(일하던 도중 부부는 그들만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둘 만의 언어가 있었기에 이들의 사랑이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싶다.)

아내 김원례씨가 앞서가며 비료를 뿌리면 뒤따르던 이대식씨가 소가끄는 쟁기로 흙을 갈아 엎는다.

아버지 이대식씨는 그 흔한 경운기도 이용할 줄 모르고 웬만한 큰일은 모두 소에게 맡긴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기계를 매우 두려워 한다.

백만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때묻지 않은 부부의 밝은 미소.(청각장애를 극복하며 살아온 지난 세월의 가치를 그 무엇으로 평가 할 수 있을까.)

한때 이웃의 멸시와 조롱도 있었지만 이들의 앞날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넷째인 은희씨 기억에는 집에 소가 없어 아버지가 이웃집 일을 해 준 대가로 소를 빌려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또한 자식들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키워보겠다는 아버지의 피나는 노력이 가슴 아프게 기억되고 있다.

"부모님은 잠자는 몇 시간을 빼면 모든 시간을 논과 밭에서 일하면서 보냈어요. 남들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5남매를 키우려니 그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아버지는 요즘도 5시면 일어나 집 안팎을 정리하고 들에 나간다고 한다. 아버지는 듣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기계를 두려워한다. 그 흔한 경운기조차 다루지 못해 아직까지 소와 지게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6000평에 이르는 논과 밭일을 젊은 사람 못지 않게 지금까지 거뜬히 해내고 있다. 요즘도 들일을 나갈 때 아버지 어깨엔 지게가, 어머니 머리엔 큰 광주리가 따라 다닌다.

이들 부부의 밝은 모습에서 신선한 땀과 노동의 가치와 때묻지 않은 삶의 향기가 그대로 묻어난다.

첫째 은용(40), 둘째 기환(38), 셋째 주환(35), 넷째 은희(32), 막내 성환(29) 이들 5남매의 성장기는 순탄치 못했다.

청각과 언어장애를 가진 부모 밑에서 어린 아이들이 어떤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할머니! 우리 엄마 아빠는 왜 맨날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나요?"

첫째 은용씨가 네 살 무렵 날이 저물었는데도 불구하고 집에 들어가지 않고 마을 어귀에 쪼그리고 앉아 울먹이며 했던 말이라고 한다. 당시 그 어린아이의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그랬을까. 둘째 기환씨도 역시 어릴적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반항이 심했다고 한다.

다행히 셋째 주환씨와 넷째 은희씨는 스스로 환경을 이해하며 극복하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통해 본능적으로 터득한 삶의 지혜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떤 환경이라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 불행은 본인에게 돌아가는 것이죠. 두 분은 그러한 이치를 행동으로 보여주셨어요."

특히 주환씨는 다른 형제들과 많이 달랐던 것 같다. 누구보다 부모님을 이해하려 했고, 어린 나이에도 집안 일을 거들며 부모님을 챙겼다고 한다. 지금도 주말이면 가장먼저 부모님께 달려가 농사일을 돕는다.

부부가 가장 자랑하는 막내 성환씨는 현재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 유학중이다. 건축을 전공한 성환씨는 전역 후 건축업계에서 일하다 뜻한바 있어 유학을 택했다. 지금 부모님이 살고있는 2층집도 부모님 이용하기 편하도록 성환씨가 직접 설계해 지었다고 한다.

막내 성환씨가 청각장애를 안고사는 부모님을 위해 직접 설계해서 지은 집.(집에는 잔디밭과 인공연못이 있고, 조경수로 심은 배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다. 넓은 마당에는 김원례씨가 곡식을 널고, 창고에는 아버지의 농기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고된 일을 마친 두 부부가 기자에게 5남매와 손주들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고 있다.

마당 한 편에는 연못과 잔디밭, 조경수까지 심어 멋을 더했다. 이 집에 아직 미혼인 은희씨가 부모님과 살고 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않았어요. 분에 넘치는 사랑만을 주셨죠. 그것도 모르고 오히려 가끔 가엾은 부모님께 심통을 부리곤 했죠. 지금 우리 5남매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진정으로 존경하고 있어요. 훌륭한 언어로 가르침을 주시거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신 것은 없지만 몸소 실천으로 가르쳐 주신 것들이 너무 많아요. 배울 것도 많고요."

오는 14일(일)에는 장남 기환씨가 결혼식을 올린다. 모처럼 흩어진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기도 하다.

첫째 은용씨와 셋째 주환씨에 비해 많이 늦은 결혼이다. 부모님은 이제 넷째 은희씨와 막내 성환씨가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게 산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한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물질이 아닌 사랑과 이해로 가족애를 키워 가는 이들의 모습이 가정의 달을 더욱 푸근하게 만들었다.

<이정구 기자>

이리저리 익숙한 손놀림으로 소에게 일을 시키는 이대식씨 모습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정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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