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하수체 종양을 앓고 있는 박시화씨.
박시 화/여·35·아산시 읍내동어머니는 ‘뇌하수체 종양’ 딸은 ‘흡수장애’ 기구한 사연결혼 후 박시화씨의 삶은 땅 속으로 곤두박질쳐졌다.행복한 삶이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행복의 근처만 가도 병이 깨끗이 나을 것만 같다는 그녀. 12년 전 한 남자와 결혼해 오순도순 살 줄 알았던 박시화씨 남편은 거듭되는 사업실패로 집을 떠났고, 둘째딸은 모든 영양분이 소변으로 배설된다는 흡수장애를 갖고 있다.둘째딸인 김현아(가명)는 얼마 전 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연화가 등교하는 모습을 보면 동네사람들이나 지인들은 “아이구, 아직 살아있네” 한단다. 태어나서부터 약했던 현아. 5살 때는 말이 없고 자폐증상을 보여 서울의 유명한 소아과를 찾아갔다. 의사는 현아를 보고 ‘자폐증상이 약간 있어 매달 치료를 해야 하는데 20~60만원 정도 소요된다. 영세민인데 그 정도 돈 낼 자신 있느냐. 집에 가서 동화책 읽어 주고 잘해라’였다. 돈 없으면 치료도 받을 수 없는 세상이다. 박시화씨는 그날을 생각하며 한없이 또 눈물을 흘린다. 그날의 설움을 무엇으로 말할 수 있으랴. 박시화씨는 현아를 사랑 반, 눈물 반으로 키웠다. 덕분에 지금은 자폐증상이 언제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가 됐다. 어머니의 정성이 딸을 살린 것. 하지만 오랜 정신적 스트레스는 현아가 아닌 그녀 자신에 병으로 돌아왔다. 뇌하수체 종양, 종양을 제거하면 실명하게 되고 제거한다고 해도 재발 1백%이기 때문에 수술하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단다. 약으로 종양이 자연적으로 말라죽길 기도하는 박시화씨.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그녀를 슬프게 하는 건 “11살, 8살의 딸들이다”며 “난 영세민인 게 싫다. 내가 번 돈으로 당당히 아이들 학교 보내고, 치료시키고 싶다”는 것이다. 영세민이라 정부의 혜택과 보조를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들이 돈 없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혹은 학교에서 차별대우 받는 것이 병보다 싫단다. 그러기에 박시화씨는 저녁이면 아르바이트도 하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천식과 옭죄어 오는 종양의 아픔 탓에, 오랜시간 움직일 수도 없다. 병은 현아에게 물려줬을지 몰라도 고단한 삶은 물려주고 싶지 않은, 죽기에 아직은 젊은 엄마 박시화씨. 현아는 10살까지 흡수장애가 호전되지 않을 경우, 수술을 받아야 한다. 지금으로써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그날이 너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박시화씨는 “하루하루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걱정하지 말라’하고 말하시는 것 같아요. 걱정하지 않습니다. 현아가 하나씩 하나씩 병을 이겨갔으니 자랄수록 더 많은 시련을 견뎌 낼 것을 믿어요”라며 애써 환한 얼굴로 얘기한다.딸들이 상처 입을 것을 감안해, 얼굴은 내보내지 말고 이름도 가명으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취재기자로서 쉽지 않은 부탁이지만 현아를 살려낸 박시화씨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비참함에 “물을 마시면 병이 낫는다는 곳이 있는데 꼭 떠다 드릴께요”하며 박시화씨 집을 나섰다.박씨의 집을 나오며 기도 한번 제대로 하지 않은 취재기자는 한참동안 그녀를 위해 기도했다. 꼭 그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있고 박씨의 바람대로 그녀가 번 돈으로 영세민을 벗어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