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맨위로

농심 망가뜨린 쌀 관세화 정책

등록일 2014년09월30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결실의 계절 가을 속 깊은 곳에 와 있다. 하루가 다르게 들판을 달궈가던 황금빛 물결도 제자리로 돌아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논배미에 가까이 가서 보면 이 논이나 저 논이나 벼들의 키가 가지런하다. 이삭의 무게로 고개를 숙인 각도조차 한결같던 논들이 결실의 기쁨보단 허전함을 논바닥에 드러내고 있다. 내리비치는 햇살을 따라 하늘 위로 눈길을 돌린다. 눈이 부시다. 태양과 하늘의 공평함에 눈이 부신 가을 들녘엔 농민들의 희망은 멀게만 느껴진다.

예전에는 쌀농사가 풍년이면 정부나 농민이 기뻐했지만, 지금은 ‘농사가 잘 돼도 걱정 안 돼도 걱정’이다. 농민들은 의당 풍요로운 수확의 기쁨을 만끽해야 하지만, 실상 농민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고 한다. 올해 쌀 협상이 있는 해이고 정부에서는 관세화를 이미 선언해 버렸기 때문이다. 단순히 농민들의 소득이나 이익을 염두에 두고 걱정하는 일이 아니다. 5000년 동안 우리 민족을 먹여 살려온 쌀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쌀 관세율을 513%로 정하고 WTO(세계무역기구)에 보고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치권도 엇갈리고, 농민단체에서도 강하게 반대하는 ‘쌀 관세화’란 외국과 쌀을 자유롭게 거래하는 대신 관세를 높게 책정해 자국의 쌀을 보호하는 제도라고 정부는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관세화는 결국 강대국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이 농민들의 주장이다. WTO 회원국 중에 쌀 수출국가는 미국, 캐나다, 중국 등 10여 개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쌀 수입국이 된다. 쌀 수출국들은 처음에 높은 관세를 지불해가면서까지 쌀을 수출하다가 수출 대상국의 쌀 생산력이 줄어들게 되면 자연스레 쌀 수입관세를 낮출 것이다. 식량 강국들이 관세라는 장벽을 감안하고도 기를 쓰고 농산물을 수출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기보다 더 무서운 것이 식량이라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조차 없다.

세계 곡물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한 카길 등 5대 곡물메이저 자본은 종자부터 농자재까지 식량생산을 위한 농업분야 전체로 진출해 있다. 심하게 말하면 인류의 생사여탈권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에게 대한민국 농업 최후의 보루인 쌀시장마저 내주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농민들은 온 몸으로 저항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쌀시장 전면 개방은 이제 농업과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쌀을 소비하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매우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는 국내 쌀 농가 보호를 위해 내년부터 쌀 고정직불금 단가를 ㏊당 9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조기 인상하고, 쌀값 하락시 지급하는 변동직불금 제도 유지·보완 등이 담겼다. 또 농업인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및 농지연금 지급 등 쌀 산업 종합발전 대책을 함께 마련했다. 하지만 농민들의 반발은 점차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3일 아산농민회를 비롯한 농민단체와 소비자단체가 함께 연대해 “박근혜 정부는 식량주권인 쌀을 포기하는 매국행위를 중단하라”고 외치며 삭발투쟁, 농기계 시가행진, 농산물 반납, 추수파업 논 갈아 엎기 시위를 벌였다. 앞으로 농민대회가 개최되는 등 정부의 쌀 관세화 조치에 농민들이 집단반발은 더 거세질 것이다. 쌀 시장 개방으로 위기를 맞은 농민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쌀 관세화 발표이전에 농민들과 충분한 대화를 하지 않았던 정부의 대처가 아쉽기만 하다. 농민들과 대화를 통해 피부에 와 닿는 대책을 수립하고 농민 지원책을 마련했다면 이처럼 반발이 거세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이제라도 농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쌀 수급과 국제적 흐름, 농촌경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예측해 중장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단순한 농업만의 문제가 아닌 농촌복지 등 거시경제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아 타들어 가는 농심을 달래줄 정책을 마련하길 기대한다.

이승훈 편집국장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라이프 우리동네 향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