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4색 ‘팔색조 변신’ 염정아·전도연·김혜수·김하늘
2004년 올 한 해 스크린을 평정하기 위한 여배우들의 무서운 반격이 시작됐다. 청순가련 틀에 박힌 여인상을 거부하고 때론 독하게, 때론 섹시하게, 다양한 변신으로 자기만의 개성을 표출하고 있는 것. 극장가 흥행을 독점하고 있는 선 굵은 남성 캐릭터 위주의 영화에 맞서 독특한 캐릭터로 관객들을 공략하고 나선 여배우들의 달라진 모습을 미리 살펴봤다.
섹시한 '팜므파탈'
사기꾼들의 속고 속이는 ‘리얼사기극’을 표방한 새 영화 ‘범죄의 재구성’(감독 최동훈)은 박신양, 염정아, 백윤식, 이문식, 천호진 등 내로라 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다섯 명의 전문사기꾼이 모여 한국은행 50억원 사기 범죄를 꾸민다는 줄거리.
염정아(32)는 이 가운데 ‘홍일점’이자 가장 독특한 캐릭터로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는다. 도발적인 팜므파탈 ‘서인경’으로 분한 그녀는 형사 앞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피며 큰소리칠 만큼 당차고 대담한 여자다.
그래서 극중 별명도 ‘구로동 샤론 스톤’. 그러나 강한 자 앞에선 강하지만 약한 자 앞에선 한없이 약해지는 데다, 사기수가 얕아 가끔 고수에게 들켜버리는 약점이 있다. 한국은행 사기극에 합류하지 못했지만, 도발적인 섹시함을 무기로 그 돈을 차지하기 위한 비밀스런 계획을 세우는데.
지난해 ‘장화, 홍련’에서 신경질적인 계모 역으로 주가를 높인 염정아는 이번 영화를 위해 의상에서부터 소품까지 섹시한 분위기로 연출, 기존의 차갑고 무서운 이미지에서 화려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미스코리아 출신답게 늘씬하게 뻗은 각선미는 도발적인 의상을 한층 부각시키고, 강한 웨이브 머리에 짙은 눈화장,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 사이로 담배 연기를 내뿜는 모습은 ‘매력적인 악녀’의 절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는 순간부터 ‘서인경’ 역을 탐냈다는 염정아는 연기 생활 처음으로 베드신에 도전하는 등 이번 영화에 남다른 애정을 쏟아붓고 있다.
순박한 '억척 해녀' 전도연
심은하 고소영과 함께 9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전성기를 이끌어간 전도연(31)은 다른 두 사람과 달리 지금도 여전히 스크린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최고 여배우로서의 자존심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로 또 한 번 흥행력을 과시한 데 이어 올해는 판타지 영화 ‘인어공주’(감독 박흥식)에 도전, 1인2역으로 색다른 연기를 펼친다. 스무 살 시절의 엄마가 사는 세계로 빠져들게 된 딸 나영이 엄마의 첫사랑에 끼어들게(?) 된다는 내용.
전도연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배우로서 한 획을 그었다’고 거창하게 소감을 밝힐 만큼 남다른 애정과 노력이 들어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의 딸과 젊은 시절 엄마가 맞부닥쳐 1인2역으로 동시 진행되는 터라 두 가지 캐릭터에 대한 감정 몰입이 쉽지 않았던 것. 게다가 엄마의 직업인 해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직접 제주도 우도 앞바다에 뛰어들어 물질을 하는 등 위험한 촬영이 끊이질 않았다.
그야말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가장 험난한 촬영을 감수했던 것.
이를 위해 무려 4억원에 달하는 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은 당시 위험 수위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완벽한 프로배우 전도연의 해녀 변신은 오는 6월 초에 공개된다.
아낌없이 벗었다 김혜수
지난해 문소리가 맡은 영화 ‘바람난 가족’의 여주인공을 포기하고 TV드라마 ‘장희빈’의 타이틀롤을 맡았다가 시청률 부진으로 맘고생을 했던 김혜수(34)는 올해 들어 정말 ‘독하게’ 마음먹은 듯하다.
2월 초 크랭크인한 새 영화 ‘얼굴 없는 미녀’(감독 김인식)에서 파격적인 노출신을 선보이며 깊이 있는 내면 연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
영화는 과거 사랑의 곪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한 여성과 그녀의 상처를 치유하는 정신과 의사 사이의 치명적이고 위험한 사랑을 그린 에로틱 심리물이다. 여기서 김혜수는 신인배우 한정수와 남자주인공 김태우를 상대로 전라의 파격적인 정사신을 펼친다.
각종 시상식에서 대담한 노출의상을 선보여 건강미인, 글래머 스타의 호칭을 한 몸에 받았지만 정작 스크린에서의 노출은 데뷔 이후 20년 만에 처음이다.
그동안 숱한 남성들의 애간장(?)을 태우면서도 속살을 꽁꽁 여몄던 김혜수로서는 대단한 각오가 아닐 수 없다.
김혜수는 노출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 일체의 인터뷰를 거부하고 촬영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영화가 개봉되는 올 여름 극장가에 몰아닥칠 ‘김혜수 열풍’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내가 아직도 우습게 보이니… 김하늘
올 초 로맨틱코미디물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 코믹연기의 절정을 보여준 김하늘(26).
“당분간 더 이상의 코믹연기는 없다”고 공언할 만큼 새 작품을 위해 이미지 관리에 들어간 그녀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공포물에 도전한다. 섬뜩한 눈빛 연기가 ‘2004년 새로운 호러퀸’의 탄생을 예고하는 듯하다.
오는 6월 개봉을 앞두고 촬영에 한창인 새 영화 ‘령’(감독 김태경)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대생 지원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과정에서 연이어 친구들의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 역시 죽음의 위협을 경험한다는 내용의 심령공포물.
주인공 지원 역을 맡은 김하늘은 “무서워서 공포영화도 못 보는 내가 남을 무섭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면서 잔뜩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편 ‘령’의 세트촬영이 진행될 예정이던 일산 수조세트 현장에 지난 3월15일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세트장 안에 있던 조명 기자재와 수조세트를 모두 태워버려 제작진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게다가 세트 촬영 중 여자 혼령을 보았다는 스태프가 속속 생기고, 극중 령의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 신인배우가 매일 밤 가위에 눌려 시달리는 현상이 벌어지는 등 영화를 둘러싼 이상한 징후들이 발생, 제작사측은 4월 초 전 스태프와 출연진이 참석하여 ‘위령제’를 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쯤 되면 공포에 가득한 김하늘의 눈빛 연기는 더 이상 연기가 아닐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