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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 대박! 아쌀하게 거시기 해부렀네∼”

등록일 2003년12월06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황산벌. 영화계 화재- ‘친구’에서 ‘황산벌’까지, 한국영화 사투리 열풍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2001년 전국관객 820만명이라는 전무후무한 흥행기록을 달성한 영화 ‘친구’의 이 대사는 영화만큼이나 큰 인기를 얻으며 그해 전국적인 유행어로 떠올랐다. ‘친구’로부터 본격화된 사투리 열풍은 지난해 최고 흥행작인 ‘가문의 영광’으로 이어지더니 올해 들어 절정을 맞았다. 지난 10월17일 개봉되어 극장가를 평정한 영화 ‘황산벌’을 비롯해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똥개’ ‘선생 김봉두’ 등이 사투리를 전면에 내세워 개봉 이후 극장가 흥행 1위에 올라섰다. 서민적 친근감을 앞세워 대중문화의 새로운 흥행 코드로 떠오른 사투리, 한국영화 속에 등장한 사투리와 이에 따른 열풍의 현장을 살펴봤다. “하모 저것들은 악으 축 정도가 아니라, 악으 덩어리라카이”(신라 김춘추), “뭐이 어드레… 너 이 새끼 언제든 쳐들어오라우야”(고구려 연개소문), “음마, 시방 선전포고하는 거여 뭐여?”(백제 의자왕) ‘거시기 신드롬’을 탄생시킨 ‘황산벌’은 660년 삼국통일기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당시 인물들이 지방 사투리를 쓰면 어땠을까”라는 기발한 상상으로 풀어간 퓨전역사 코미디물이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이 ‘군막회담’ 장면은 이 영화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목. 백제의 계백과 신라의 김유신이 황산벌에서 대전투를 벌이기 직전, 당황제를 가운데 두고 고구려 백제 신라가 미묘한 외교관계를 벌인다는 역사적 설정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이 한 장면을 통해 전라도 경상도 평안도 사투리를 한꺼번에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후 이 영화는 영호남 사투리를 절묘하게 대치시키며 결론이 뻔한 역사적 사건을 흥미진진한 소재로 탈바꿈시켜 전국 3백만 명에 달하는 관객을 불러모았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코믹멜로 영화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역시 ‘친구’와 ‘가문의 영광’의 계보를 잇는 정통 사투리 영화에 속한다. 경상도 사투리의 진수는 ‘친구’를 통해 사투리 효과를 톡톡히 거둔 곽경택 감독의 최근작 ‘똥개’에서 드러난다. 주인공 정우성을 비롯해 모든 출연진이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데, “니는 생각을 무슨 몇 년씩이나 하노?” “와? 병 씹어 묵드나?” 등은 네티즌들 사이에 유행어로 떠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년 초 극장가에 선보일 또 다른 사투리 영화 ‘목포는 항구다’는 대규모 마약거래를 수사하기 위해 서울토박이 형사 ‘이수철’(조재현 분)이 조폭으로 위장잠입, ‘백성기’(차인표 분)가 이끄는 목포 조직을 일망타진한다는 내용. 목포라는 특유의 지방색과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가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웃음의 키워드가 된다. 사투리 영화는 최근 들어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에 제한되지 않고 강원도나 심지어 북한 사투리까지 범위를 넓혔다. 남쪽 대학생과 북쪽 여대생의 이색적인 연애담을 그린 영화 ‘남남북녀’에서 여배우 김사랑과 허영란은 유창한 북한 사투리를 구사해 관심을 모았고, 차승원 주연의 영화 ‘선생 김봉두’는 정겨운 강원도 사투리로 관객들의 웃음과 감동을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사투리가 대중매체의 흥행 코드로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며 대중적 지지를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사투리는 하나의 ‘국어’이면서도 각 지역의 문화와 색깔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개성 있는 언어로 이뤄졌다는 데서 색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사투리에 대한 관심이 그 지역에 대한 문화적 이해도를 높여준다는 장점도 있다. ‘친구’와 ‘똥개’를 히트시키며 사투리가 대중문화의 흥행코드로 자리잡는 데 일조한 곽경택 감독은 사투리를 영화적 장치로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사투리는 그 지역사람들에게는 친근감과 익숙함을, 타지역 사람들에게는 독특하고 이국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면서 “경상도 사투리의 경우 강조하고자 하는 단어에 강한 악센트가 들어가기 때문에 의미와 감정의 강조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상황전달이 자유롭고 막힘이 없는 사투리의 시원스런 해석력은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신세대 취향에도 딱 들어맞는다. 네티즌들은 ‘똥개’의 대사 중에 여배우의 다소 과격한 대사 “와? 병 씹어 묵드나?”를 “그 사람이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니?”로 풀이하고 있다. 사투리 특유의 투박하지만 유머러스한 점이 사투리를 한층 친밀하고 정겹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사투리 열풍은 사이버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최근 ‘황산벌’이 빅히트를 치면서 사투리를 보급하고 장려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생겨났고, 사투리 동호회를 표방한 카페도 수백 개 개설됐다. 인터넷 유머게시판에는 ‘훈민정음’ 전라도 편이 대유행이다. “시방 나라말쌈지가 떼놈들 말허고 솔찬히 거시기혀서, 글씨로는 이녁들끼리 통헐 수가 없응께로, 요로코롬 혀갖고는 느그 거시기들이 씨부리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뜻을 거시기헐 수 없은께 허벌나게 깝깝허지 않것어….” 경상도 사투리가 질펀한 영화 ‘똥개’의 DVD는 경상도어, 전라도어, 표준어 등으로 사투리 자막과 표준말 자막을 곁들여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사투리도 하나의 트렌드’라는 제작사측의 상업논리가 실제 들어맞은 경우다. 하지만 이러한 사투리 열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사투리가 특정 계층과 지역 이미지를 고착시킨다는 문제점과, 특히 사투리에 깃들은 그 지역주민들의 생활상을 간파하지 못하고 희화화된 말투와 억양으로 단순한 웃음만 유발해 본래의 의미를 격하시키고 왜곡시킨다는 지적이다. 특정지역 비하 논란이 벌어진 영화 ‘황산벌’ 욕설 파문도 이와 같은 맥락. 극중 백제군이 보성 벌교 출신의 ‘욕쟁이 병사’들을 등장시켜 신라군을 향해 질펀한 사투리로 욕설을 내뱉는 장면이 있다. 이때 신라군들은 “저놈들은 태어날 때부터 욕을 잘한다”면서 두 손 들고 퇴각한다. 결국 이 지역 출신의 주민 3명은 “‘벌교’란 지역을 지칭해 주민들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매도했다”면서 이 영화의 감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가 공식사과를 받은 후에야 고소를 취하했다. 또한 무분별한 남용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올바른 언어체계를 파괴하고 표준어와 혼동하는 등 언어 사용에 미칠 폐해가 클 것이라는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사투리를 표준어에 대립하는 말로 삼아 무조건 배격해서는 안 되지만, 기존 주류문화를 침범하여 주객이 전도되는 과잉 열풍을 주도해서도 안 된다는 지적이다.
주간현대/정부경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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