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나는 숨기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섬세함은 단호함과 집념을 통해 실현된다. 나는 나 자신을 드러낸다. 나를 보라. 본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다는 것은 보는 것이다. 나는 사방에 있다. 삶은 내게서 시작되고 모든 것은 내게로 돌아온다.나름 믿어라!
-<내 이름은 빨강> 중에서
요즘 사람들은 왜 세계문학을 읽지 않을까?
며칠 전 지인들과 이야기를 했다.
먹고살기 바빠서, 어렵고 귀찮아서, 골 아프고 재미없어서?
이런저런 핑계를 꼽아보니 입시교재 말고 문학이 설 자리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수업시간, 교과서 밑에 헤르만 헤세를 펼쳐놓는 학생이 있을 지도 모른다. 교사의 눈을 피해 펄벅을 읽은 소년, 턱을 괸 채 앙드레 지드의 문장을 떠올리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소녀도 있으리라 믿고 싶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은 <내이름은 빨강>에서 16세기 오스만제국을 살았던 궁중화가들의 고민을 추적한다.
신이 하늘에서 내려다본 세상을 상상하는 세밀화는 거리와 크기를 구분하지 않아 평등하고 평평하다. 그런데 원근법이라는 새로운 화풍이 그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인간 중심의 그림은 신에 대한 반역이라는 공포가 살인사건으로 폭발한다.
사람은 남들과 다르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자기 눈으로 보고 자신이 생각한 것을 표현하기를 원한다. 그 특별함을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이 소설에서 개성 표출을 두려워하는 화가들과 달리 스스로 보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나무와 말(馬), 죽음과 금화들이 등장한다. 전쟁과 학살, 피와 시체를 연상시키는 빨강조차 존재를 뽐내며 색깔을 갖고 표현한다. 인간을 설득한다.
코로나 탓에 한여름에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입을 막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 왔다. 중동 여인들처럼 진한 눈 화장이 유행이라지만 마스크도 가려지지 않는 ‘나만의 이름과 색깔’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