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1일 방송된 KBS ‘TV, 책을 말하다-베토벤 평전’의 유럽 현지취재 과정에서 담당PD가 공적인 돈으로 가족관광을 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TV, 책을 말하다’ 해외취재, “혈세 낭비” 언론 폭로 파문
KBS는 최근 소속 PD가 자신이 프로듀서를 맡은 프로그램의 유럽 현지촬영에 가족을 동반, 공적인 돈으로 관광을 즐겼다는 폭로가 터져 나와 파문이 일자 자체 징계를 통한 긴급 진화에 나섰다. 이 같은 사실은 당시 동행취재에 나섰던 한 대학교수가 ‘혈세 낭비 부끄러운 고백’이란 제목의 글을 지방 일간지에 게재하면서 비롯된 것. 현재 해당 프로그램 홈페이지에는 시청자와 네티즌들의 항의 글이 수백 건씩 올라와 문제의 PD에 대한 징계와 KBS 쇄정운동을 촉구하는 등 성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KBS 1TV의 교양다큐 ‘TV, 책을 말하다’는 지난 8월21일 ‘베토벤을 보는 또다른 시선 - 박홍규의 베토벤 평전’ 편을 방송했다.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제작진은 책의 저자인 영남대 법학부 박홍규 교수를 동행하여 지난 7월 1주일 동안 베토벤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과 독일 본 등을 기행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동행 취재에 나섰던 박홍규 교수가 지난 8월20일 부산일보 ‘부일시론’에 ‘혈세 낭비 부끄러운 고백’이란 글을 기고, “공적으로 일한답시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했다”면서 “솔직히 국민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고 당시의 잘못된 취재관행을 폭로하여 파문을 야기했다.
박 교수는 칼럼을 통해 “PD와 함께 보낸 1주일은 악몽 같았다”고 토로했다. 6월 말 아내와 함께 유럽여행을 준비 중이던 박 교수는 담당 PD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았다. 박 교수가 여행을 이유로 거절하자 현지에서 촬영하자고 제의, 여행이 끝나는 날 유럽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그러나 PD가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아 이틀 동안 현지 공항에서 기다리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뒤늦게 아내와 두 살바기 아이를 동반한 채 나타난 PD는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잦은 출장으로 공짜 비행기표가 생겨 가족을 데려오려는데 시간이 맞지 않았다”면서 이유를 들었다.
네티즌 비난 빗발쳐
박 교수의 폭로는 여기서부터 이어졌다. 유럽에 도착한 후 이틀 동안은 아기가 고열에 시달려 촬영기사가 끄는 자동차를 타고 병원과 약국을 찾아 헤매다녔으며, 첫 촬영을 시도한 3일째는 미리 연락을 하지 않아 촬영이 불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도 PD는 촬영과 무관한 관광을 즐겼고, 가족의 모든 비용을 방송국 출장비로 정산하기 위해 영수증을 철저히 챙겼다고 폭로했다. 박 교수는 “방송국 돈으로 가족 여행을 시켜주는 것을 PD가 노골적으로 자랑했으나, 정작 프로그램은 거의 찍지도 못하고 혈세 낭비에 동참한다는 죄의식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박 교수는 “PD가 시골사람을 폄하하면서 고급식당에 가서 혼자 식사를 했고, 겨우 촬영을 하려다가도 별안간 부인이 쇼핑을 해야 한다며 몇 시간이 걸리는 호텔에 가서 부인과 아픈 아기를 데려왔다”고 꼬집었다. 또 “냉장고가 없다며 비싼 호텔로 숙소를 옮기면서도 촬영지에서 사전 허가가 없었으니 약간의 돈을 내야 한다는 말에 그냥 촬영을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1주일을 노예처럼 보내며 느낀 괴로움보다, 아무리 노예라도 공적으로 할 일은 해야 하는데 아무 것도 못하고 혈세를 낭비했다는 점에서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밝혔다.
한편 박 교수의 폭로가 나온 직후 ‘TV, 책을 말하다’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문제의 PD로 알려진 신아무개 PD에 대한 성토와 항의 글이 수백 건 쏟아지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썩어빠진 정신상태의 PD를 즉시 교체하라” “일벌백계 주의로 엄중하게 처리해 달라”는 요구와 함께 “차라리 시청료 반환소송이라도 하는 편이 낫겠다” “프로그램의 목적을 상실한 이상 프로그램 자체를 폐지하라”는 주장까지 대두됐다.
파문이 커지자 길환영 책임PD는 8월26일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는 사과문을 게재하며 “해당 PD에 대해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한 일체의 업무를 중지하도록 지시했다”면서 “회사차원에서 정확한 사실 확인 후 사규에 근거하여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4월 정연주 사장 취임 이후 언론인으로서의 직업 윤리강령을 강조해 온 KBS측도 내부 감사를 끝내고 인사위원회를 소집해 이번 사태에 대해 조속한 징계절차를 밟는 등 발빠른 대응을 보이고 있다. 또한 9월3일 ‘방송의 날’을 기해 자사 내 윤리강령을 선포하고, 시청자들을 상대로 한 ‘사이버 감사실’을 개설하여 KBS 관계자들에 대한 비리 및 피해사례를 제보받는 등 자정운동에 고삐를 당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