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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의 ‘우리말 선물’을 읽고

힘들고 지친 삶, 아주 특별한 우리말 선물

등록일 2020년09월19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조현용은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어학자 서정범 선생의 제자이자 우리말 어휘 연구가다. 그는 ‘우리말 깨달음 사전’, ‘우리말로 깨닫다’, ‘우리말, 가슴을 울리다’ 등등 많은 책을 지었으며, 보물같은 우리말이 품고 있는 좋은 뜻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우리말 선물’이란 책을 썼다.

“좋은 생각이 담긴 우리말 표현을 되새기며 이 세상이 행복한 곳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하루하루가 선물이라는 것을 느끼며, 제가 우리말을 통해 깨달았던 즐거움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의 원래 의미는 ‘생각하다’랍니다. 사랑하면 그 사람 생각이 계속 나기 마련입니다.

“보고싶어”
“네 생각하고 있었어”
“당신 생각에 잠 못 이루었소”

맛있는 것을 먹을 때도, 아름다운 곳에 갔을 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러니 나에게 생각나는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나를 생각하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아름답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 옛말 ‘아름’이라는 말은 ‘나’ 또는 ‘개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아름답다’라는 말은 ‘그 사람답다’ 또는 ‘나답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 생각에는 ‘나다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가장 가치있게 만드는 게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답다, 학생답다, 선생님답다, 정치인답다, 의사답다 하십시오.
 

<외롭다>는 말은 외(外)로 보는 입장이 있습니다. ‘외할머니’처럼 바깥이라는 뜻이죠. 바깥쪽에 떨어져 있는 사람은 당연히 외롭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혼자라고 하면 ‘고독하다, 외롭다, 불쌍하다’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외롭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알면 좋겠지요.

외로운 시간을 지나면서 우리는 자신과 대화하는 법,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법을 알게 됩니다. 외로움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외로움이 다가올 때 결코 우울해지면 안됩니다. 우울하다고 생각하면 우울하다,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기쁨이 되니까요. 어쩌면 군중속의 고독처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외로움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외로움은 사람을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일>은 아주 불행한 것일 수도 있고, 행복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가르는 기준은 자신의 마음입니다. 우리말 ‘놀다’를 보면 일이 즐거운 놀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놀이’는 단순히 쉰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이나 활동을 의미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놀다’라는 말이 ‘일을 하지 않고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노는 것 역시 일의 한 방법으로 본 것 같습니다. 관자놀이는 관자가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불놀이, 마당놀이처럼 연극에도 놀이가 들어갑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즐겁게 일하는 것이 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놀음’이라는 단어가 나쁜 쪽으로 흐르면 즐겁고 흥겹다는 뜻이 사라지지마는, ‘엄마노릇’처럼 즐겁고 생산적인 뜻도 있습니다. 엄마의 역할을 즐겁게 하는 것이 엄마노릇입니다.

옛날에는 노래를 부르면서 일을 하는 ‘노동요’가 있었습니다. 고통을 잊기 위해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고, 노동이 즐거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닐까요. 
 

<시간>이라는 말은 때와 때 사이를 뜻합니다.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즉 그 사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느냐에 따라서 지나가는 속도가 전혀 다른 겁니다. 싫은 사람과 같이 있으면 시간은 참으로 괴롭고 더디게 흘러가지만 좋은 사람과 함께 하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당신의 시간은 의미있는 시간인가요? 무의미한 시간인가요?
 

<재미>없는 것만큼 지루한 것도 없답니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최고의 협박이 ‘너 재미없을 줄 알아!’입니다. 한국사람이 생각하는 재미는 웃긴 게 아닙니다. 우리는 슬픈 영화를 보고도 재미있다고 하니까요.

인생에서 재미없는 게 진짜 큰 문제입니다. ‘요즘 사는 게 재미없다’, ‘신혼재미 어때?’, ‘요즘 사업 재미좀 봤어?’

사람마다 재미있는 것이 다릅니다. 따라서 서로의 즐거움을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의미있는 일이 재미가 되고 취미가 되고 직업이 될 겁니다. 재미는 의미있는 즐거움이랍니다.
 


<궁금증>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병이라 합니다. 오래되면 식상해 싫어지는 병이 ‘싫증’인데, 만약 궁금증이 없었다면 한류는 지금처럼 발전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빠 새가 어떻게 전깃줄에 앉아있을 수 있어요?”

당연한 말도 ‘왜 그럴까?’ 의문을 가지고 생각하다 보면 그 말의 어원을 알게 되고 더 ㅁ낳은 것을, 더 깊은 것을 알게 됩니다. 아름다운 병, 궁금증을 여러분께 적극 추천합니다.
 

<쉬다>는 말은 ‘노는 것’이 아닙니다. 쉰다는 것은 두가지 뜻을 갖고 있는데, 하나는 일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숨을 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숨을 쉰다고 합니다. 한숨을 쉬면 긴장이 누그러지고 걱정도 조금은 해소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명상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호흡입니다.

한자어 ‘쉴 휴(休)’는 사람이 나무그늘에서 쉬는 것을 나타냅니다. ‘숨쉴 식(息)’을 붙이면 나무 옆에 편히 앉아 숨을 쉰다는 말이지요.

우리 선조들은 급한 것을 늘 경계했습니다. 바쁘게 사는 것의 위험함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목마른 이에게 물바가지 속에 버들잎을 따서 넣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급하면 체하는 겁니다. 지나치게 바쁘면 건강도 마음도 사람도 잃기 쉽습니다.
 

<형제> 또는 형제자매라는 말은 참 애틋하고 정겹다. 위는 복잡하지만 아래는 단순한데, 위는 형, 누나, 언니, 오빠로 복잡하지만 아래는 ‘동생’으로 단순하다. ‘내 동생 곱슬머리~’로 시작하는 동요는 번역할 수가 없단다. 동생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가 없다는 이유다.

형제라는 말은 남자를 의미하지만 여자에게도 쓸 수 있는 말이다. 예전에는 남자를 대표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바뀌었다. 자식이라는 말도 원래는 아들만 의미하는 말이다. 아직 나이 많은 분들은 여자들끼리도 ‘형님’이라 한다.
 

<인사>는 인사(人事)다. 사람의 일이라는 뜻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 인사인 것이다. 그런데 상대에 따라 인사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내 반성의 시작은 여기서부터 해야 한다. 인사를 잘 하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나보다 힘도 없고 지위도 낮은 사람에게 내 머리는 참 무겁다는 걸 느낀다. 고개만 까딱하는 경우도 많다. 인사를 하는 나의 태도를 보면 부끄러울 때가 많다. 내가 인사하는 태도만큼은 차별을 두어서는 안된다.

평생을 살면서 인사만 잘해도 잘 살 수 있다. 이왕이면 만날 때 반갑고 기분좋은 인사를 했으면 한다. 인사를 잘 안한다고 말하지만 말고 먼저 인사를 건네보라.
 

<사이가 좋다>는 말은 사람과 사람 중간이 좋다는 말이다. 자신의 주장이 강하면 사이가 좋아질 수 없다. 두 사람이 서로 잘난 척을 하면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사이가 좋으려면 양보하고 배려해야 한다. 상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야 사이가 좋아질 수 있다. 영어의 이해(understand)는 아래에 선다는 의미이다. 상대를 이해하려면 잘난 척해서는 안된다.

중국에서는 인간을 칭할 때 인자만 쓴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인간이라고 하는데 ‘인생세간(人生世間)’이라 하여,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사라는 말이 바뀐 거라고 한다.
 

<가짜>는 한자어이다. 가짜의 고유표현은 ‘거짓’이다. 어원적으로 거짓은 ‘겉’과 관련돼 있다. 거죽이나 가죽, 껍질, 꺼풀, 껍데기 등이 같은 어원이다. 속과 다른 행동이나 모습을 거짓이라고 본 것이다.

진짜의 순우리말은 ‘참’이다. 어원은 여러 주장이 있다. ‘차다’와 관계가 있다고 보는데, 알맹이가 꽉 찬 모습을 ‘참’이라는 생각이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아니라 속이 차있는 모습이 진짜인 것이다. 그러니 겉모습에만 신경쓰지 말자.
 


<고맙습니다>의 ‘고마’는 어원이 ‘존경하다’입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할 때는 상대가 나에게 잘해줬기 때문에 존경의 마음을 담아서 표현해야 합니다. 고맙습니다가 순우리말이라면 ‘감사합니다’는 한자어입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동시에 갖습니다. 죽음을 앞둔 남편이 남겨진 부인에게 말합니다. “여보, 그동안 정말 고마웠소”, “나 때문에 정말 고생이 많았소” 이 말에는 고마움과 함께 절절한 미안함이 있는 겁니다.

고맙다는 말을 우리는 너무 쉽게 ‘고마워!’ 한마디 하고 끝나는 건 아닌가요.
 

<미안하다>는 말을 풀이하면 ‘편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분이나 마음이 좋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한국어에서는 주로 잘못했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할 때는 우선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 불편해야 진심이 전달됩니다. 우린 종종 이런 쉬운 진리를 잊습니다.

한국사람은 미안하다는 말을 잘 안해서 종종 외국인들이 기분나빠하기도 합니다. 길을 지나다 부딪혔을 때도 한국사람들은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당연히 미안하다고 사과하지만, 작은 일에는 미안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건 한국의 문화입니다. 한국사람은 미안함을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감정이 전달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불편한 마음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전달이 됩니다. 
 

<예쁘다>는 말은 예전에는 ‘어엿브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어엿브다’는 말은 ‘예쁘다’는 뜻과 함께 ‘가엽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쁜 것과 가여운 것이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요?

예쁜 것과 아름다운 것은 다릅니다. 꽃이 예쁘다면 함부로 꺾으면 안됩니다. 예쁜 것은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예쁜 것을 보면 왠지 안쓰럽습니다. 즉 예쁜 것을 볼 때 느끼는 감정 속에는 가여운 마음도 담겨있습니다.
 

<나쁘다>는 여러학자의 의견이 있지만 ‘낮다’에서 ‘브’가 붙어 생긴 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낮은 것이 나쁜 게 되었을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에 나쁜 것은 낮아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겁니다. 물건이 나쁜 것도, 사람이 나쁜 것도 모두 가치를 낮게 만듭니다. 나쁜 물건의 가격은 당연히 내려갑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을 귀하게 생각할 리 없습니다.

나쁜 일을 하면 내 삶의 가치가 낮아집니다. 스스로 낮추는 행위는 겸손한 것이지만, 어떤 잘못된 행동 때문에 내 가치가 떨어졌다면 결코 겸손한 게 아닙니다.
 

<최선>은 ‘가장 선한 것’을 말합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할 때에는 정말 내가 하는 일이 선한 일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선한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한 몸 또는 일가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최선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갖다 붙입니다. 최선의 ‘선’이 착하다는 말이므로, 최선을 다했는데 실패했다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매우 중요한 말이고,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말입니다. 오늘 하루, 나는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가? 최선을 다하는 나의 삶은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닙니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행복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모두 행복해지는 삶을 살도록 노력합시다.
 

우리는 <객관적>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다’로 보통 좋은 뜻으로 쓰이는데, 사실 객관적이라는 말의 뜻은 ‘손님의 눈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객(客)이 손님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주관적’이라는 말은 주인의 눈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간혹 주인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데, 손님의 눈으로 보아서 문제가 될 때가 있습니다. 특히 가족이나 친구, 남편이나 아내 등 가까운 사람과 관계되는 이야기를 할 때입니다. 그때는 주인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데 객관적인 시각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친구랑 싸운 아이가 집에 왔는데 엄마가 “넌 대체 누굴 닮아서 그래. 내일 친구한테 가서 잘못했다고 사과해”라고 말한다면 아이의 마음이 어떨까요. 엄마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아서 더 속상하고 서러웠을 겁니다. 직장상사에게 혼나고 친구에게 하소연 하는데 “내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네가 잘못한 것 같은데?” 라고 하면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가족 간에는 객관적이면 안되고 친구사이도 객관적이면 안됩니다. 연인사이면 더더욱 안됩니다. 때로는 주관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늘 맞다고 이야기하라는 게 아니라 나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그 순간에는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빌려주라는 겁니다. 감정의 친구가 되어주라는 말입니다.
 

<짜증>은 어떤 병일까? 짜증은 무언가를 짜는 병이다. 주로 인상을 쓰게 되고 자신의 마음을 쥐어짜게 된다. 그런 경우에 여유는 사라진다. 마음에 빈자리가 없어지는 병, 다른 사람이 마음속에 들어와 있을 수 없는 병이 짜증이다.

짜증은 대부분 얼굴모습에 남아있게 된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했다. 자신의 얼굴모습이 짜증과 미소로 판가름난다. 평소 미소를 많이 지으면 부드러운 이미지가 되고 짜증이 많으면 거친 이미지가 된다.
 

우리말의 ‘괴롭다’는 말은 <고통(苦痛)>의 ‘고’에서 왔습니다. 누구나 고통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이 고통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면 살 수 없습니다.

시시포스(하데스에서 언덕 정상에 이르면 바로 굴러 떨어지는 무거운 돌을 다시 정상까지 계속 밀어 올리는 벌을 받은 인간)는 과연 불행했을까요, 행복했을까요?

생각해보면, 시시포스는 처음에 돌을 굴리고 올라갔을 때는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 굴리다 보면 요령도 생기고 더욱 수월해졌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쳐서 힘들었겠지만 반복되면서 힘도 세졌겠지요. 이렇게 고통의 양은 점점 줄고 기쁨과 행복의 양이 늘어갔을 것입니다. 이게 우리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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