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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프다>를 읽고...

-김영미 세계 분쟁 전문PD의 휴먼다큐에세이

등록일 2020년08월18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영양실조로 팔다리가 앙상한 채 배만 볼록한 아이들... 부르카를 쓴 채 누군가의 사진을 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아낙네... 다 해진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하나 겨우 걸치고 소총을 옆구리에 낀 거리의 청년... 저렇게 어떻게 사나 싶을 정도로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가난과 전쟁으로 얼룩진 땅에 사는 사람들. 그들에게 삶은 무엇일까?

 


이 책은 8년 전(2012년)에 나왔다. 작가는 그 이전의 일을 썼을 것이다. 그러니 10년쯤 뒤로 가면 그들이 보인다. <서른살이 되던 해, 꽃다운 나이의 동티모르 여대생이 내전으로 희생당한 기사를 읽고 무작정 동티모르로 떠나 현지 사람들과 1년동안 함께 지냈다>는 자칭 ‘평범한 아줌마’. 그녀가 찍은 영상이 SBS특집다큐멘터리 ‘동티모르 푸른 천사’로 방영되면서 다큐멘터리 PD가 되었다.

소말리아 해적 소굴이나 탈레반 본거지 등 극히 위험지역에도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들어가 특종을 하기도 해서 저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작은 거인’으로 불린다는 그녀다.

작가는 왜 위험속 분쟁지역에 집착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에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과 눈물과 고통, 절망을 교감하고 사랑과 우정을 나눈다. 그녀의 주요 다큐멘터리로는 <동티모르 푸른 천사>를 비롯해 <부르카를 벗은 여인들>, <일촉즉발, 이라크를 가다>, <파병, 100일간의 기록, 자이툰 부대>, <이라크 파병, 그 머나먼 길>, <이슬람의 딸들>, <조국은 왜 우리를 내버려 두는가?>, <불타는 레바논>, <미군들의 이라크>, <히말라야 커피로드> 등이 있다.
 



-구걸소녀 ‘오마이라’는 열 살짜리 꼬맹이다. 동시에 전쟁 중 아버지를 잃고 병든 어머니와 남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소녀가장이기도 하다. 아프카니스탄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임시학교에서 공부도 하지만, 외국인이 탄 차량에 달려들어 구걸하는 그녀. “창피하냐구요? 창피한 건 말로 다 못해요. 문전박대하며 물까지 뿌리면 그냥 죽고 싶어요. 그래도 절박해서요. 내가 한 푼이라도 얻어야 병든 어머니와 남동생이 그날 굶지 않아요.”
 

-난민촌에서 취재를 시작한 지 2주가 지났을 때, 뒷집 텐트에 사는 새댁이 쌍둥이를 낳았는데 이틀도 안 되어 얼어죽고 만 일이 벌어졌다. 눈이 유난히 큰 새댁은 t이 나간 채 울지도 못하고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새댁의 손을 잡고 한참을 그렇게 그녀도 울고 나도 울었다. 그날 쉬르는 난민촌 담벼락에 붙어 올고 있는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건 난민촌의 일상이야. 난민촌의 운명이라고나 할까.”
 

-둥이가 죽고 이틀 후 난민촌 제일 끝에 살던 아주머니 아들이 지뢰를 밟아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추운 난민촌에서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들판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지피는 일이다. 전쟁통에 사망한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를 돌보던 열 살짜리 장남은 땔감을 주우러 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텐트 옆에는 죽은 장남이 어제까지 모아놓은 나뭇가지가 쌓여 있었다. 이곳 난민촌만 해도 벌써 10여명의 아이가 지뢰를 밟아 세상을 떠났다.



<나는 우울과 슬픔에 잠긴 채 새장 속에 갇혀 있다... 내 날개는 접혀 날 수가 없다... 나는 목 놓아 울어야만 하는 아프간 여인이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시인 나디아 안주만의 첫 시집 ‘어두운 꽃’의 한 구절이다. 스물다섯살의 젊은 나디아. 그녀는 2005년 11월 남편에게 구타당한 뒤 숨졌다. 그녀의 시는 세계 문학계나 유엔 등 많은 사람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정작 시를 지은 나디아는 죄인이었다. 남편은 사랑과 아름다움을 노래한 나디아를 명예살인 했다. 짧은 히잡을 쓰고 남자와 같이 방송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오빠에게 명예살인을 당하고, 청바지를 입었다고 아버지에게 총맞아 죽은 10대소녀 이야기 등등, 아프가니스탄에는 여성이 명예살인 당하는 사건이 넘칠만큼 흔한 이야기다.
 

-이라크 바그다드로 들어온 지 20여일이 지난 어느날 아침, 차창 밖으로 미사일이 날아와 폭격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폭격으로 민가 세 채가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20여명의 가족이 아침밥을 먹다가 현장에서 즉사했다. 폭격맞은 한 집의 어느 아버지만 살아남았는데, 그는 아이들 먹을 달걀을 사러 집에서 50미터 떨어진 동네 구멍가게를 갔던 것이다. 맨발로 길가에 맥없이 앉아있던 그는 울지도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의 손은 깨진 달걀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폭격현장 취재를 거의 마치고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가 물 한병을 주며 괜찮으냐고 묻자 그는 빙그레 웃으며 “미안해요. 맡긴 라디오는 아직 다 고치지 못했어요. 오늘 오후에 다시 들러요.” 하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상황에 그만 정신줄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날 폭격으로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 둘과 아들 한 명을 전부 잃었다.
 

-병사 여럿이 건물 안으로 총을 들고 뛰어들어가 이라크 사람 두 명을 잡아끌고 나왔다. 병원 앰뷸런스 기사들이었다. 잡혀온 병원직원은 미군들에게 심문을 당했다. 미군 이야기로는 그들이 알 카에다 조직원으로 추정되며, 무기를 이 병원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순진한 사람들로 보였고, 너무 어려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미군병사들의 눈빛은 경멸에 차 있었다. 마이크 일병은 “우리를 죽이려는 자들이에요. 아주 나쁜 사람들이죠.” 아직 조사중이고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하자 “여긴 이라크라구요. 한국도 미국도 아니에요. 사실 이들에게는 재판도 낭비입니다. 내 총으로 단 1초 안에 끝내고 싶다구요.” 한다. 마이크는 열여덟살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라크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할 거고, 즉결처분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차라리 거물이라면 관타나모 수용소라도 끌고 가 재판을 받고 목숨을 부지하겠지만 저렇듯 하급 조직원은 정보가치가 없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되곤 한다.
 

-이라크는 인간이 전쟁 때문에 얼마나 많이 피폐해지는지 너무도 잘 보여준 곳이다. 이라크 사람들도 전쟁으로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전쟁터에 내몰린 미군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전쟁에는 승자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희생되고 나서 얻는 승리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김영미 작가는 결국 ‘삶’을 이야기한다. ‘살아간다’는 말, ‘살아지다’라는 말. 우리는 왜 태어나서,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이 땅에 무엇을 남겨야 하며, 죽음 뒤의 세계를 열망하여야 하는 건지...

‘고통스럽다’는 말은 ‘행복하다’는 말과 정반대의 개념이지만, 고통스러울수록 더 큰 행복을 누리는, 이 모순된 진리는 무엇일까.

살아간다는 말은 ‘사람이’ 살아간다는 말이다. 짧은 인생. 누구는 태어나자마자 죽고, 병들어 죽든가 사고로 죽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늙어 죽는 것이다. 난 사람(들)에게 연민을 보낸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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