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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받는 아들 지켜보며, 먼발치에서 눈물만

‘친정아버지’ 술주정 피해 도망친 곳…더 무서운 ‘시댁’

등록일 2019년01월08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엄마 뭐 하나 이야기해도 돼?”

전화기 너머로 우물쭈물 뭔가 망설이던 아들이 어렵게 한 마디 했다. 아들이 말도 꺼내기 전에 반영미(41, 가명, 아산시 외암로)씨는 아픔이 먼저 느껴졌다. 분명히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직감했다.

“냉장고에서 음식 썩는 냄새가 너무 지독해. 할머니 냉장고에서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구더기가 나왔어. 할머니는 더 이상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안 돼. 나도 이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서 공부도 하고, 내 인생을 살고 싶어.”

아들의 하소연에 영미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시의 처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아들에게 더 이상 참고 견뎌 보라는 말도 할 수 없다. 이제 방법은 한 가지 없다.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아들을 데려오는 것이다.

병든 아내와 자식을 학대하던 아버지

영미씨의 어린 시절은 아픈 기억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늘 아팠다. 언제나 지친 표정이었고, 우울해 했으며, 피부색도 점점 검게 변했다.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일도 자주 있었다.

그런 아픈 몸을 이끌고 어머니는 돈을 벌어야 했다. 식당일을 비롯해 닥치는 대로 허드렛일을 했다. 영미씨는 어릴 때부터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누가 집으로 들어오는지 구별해 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묵직하고 불규칙하게 비틀거리며 들어왔고, 어머니는 힘겹게 발을 질질 끌며 터벅터벅 들어왔다.

술 취한 아버지는 언제나 아픈 어머니를 그냥 두지 않았다. 욕하고 때리고 집 밖으로 내쫓으며 분풀이 대상으로 삼았다. 집에서 쫓겨난 어머니는 골목길에 숨어서 아버지가 지쳐 잠들기를 기다렸다 숨죽여 들어와 자식들 밥을 챙겼다. 이런 상황이 어린 영미씨에게는 늘 공포였다.

지금도 영미씨는 어린 시절 생긴 트라우마로 소리에 매우 민감하다. TV에서 다투는 장면이 나오거나 조금만 큰 소리가 들려도 불안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나 있는 오빠는 어릴 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친척집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오빠 처지나 영미씨 처지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빠는 중국집에서 배달 일을 하며 학교를 마쳤다.

여고시절 가출과 임신…시댁에서 노예처럼 살았다

여고시절 영미씨는 술 취한 아버지의 학대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어머니와 함께 집을 뛰쳐나왔다. 그 무렵 어머니의 병세는 더욱 악화됐다. 어머니의 병원비까지 마련해야 했던 영미씨는 여고생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일까지 해가며 돈을 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영원한 이별을 했다.

어머니 병간호에 지친 영미씨는 스무 살 되던 해 두 살 연하의 남자를 만나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그의 부모집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그의 부모는 당시 식당을 운영했다. 영미씨가 들어오자 시어머니는 모든 일을 영미씨에게 맡겼고, 영미씨는 단 한 순간도 쉴 틈 없는 고된 노동을 떠맡아야 했다. 그러나 고된 노동의 대가는 단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고스란히 시어머니의 주머니만 채워줬다.

당시 시어머니는 냉면사발로 소주를 들이킬 정도로 매일 폭음을 했고, 알콜중독으로 정신착란 증상을 자주 보였다. 시어머니는 단 한 번도 영미씨를 며느리로 대하거나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노예와 다를 바 없었다.

영미씨는 당시 몇 차례 임신을 했지만 시어머니의 반대로 낙태를 거듭했다. 그러다 24살에 찾아온 아이 기수(가명)는 시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낳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출산 날짜가 다가와 식당일을 못하게 되자 시어머니의 욕설과 구타 정신적 학대는 계속됐다. 기수를 낳은 후 식당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자 시어머니의 학대는 갈수록 심해졌다.

그 무렵 기수 아빠는 집을 나간 후 연락이 두절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다른 여성과 만나 새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영미씨는 기수가 7살살 되던 해 시댁에 맡기고 집을 나와 버렸다.

정서적 학대와 신체폭력에 시달리는 아들, 알면서도 외면

기수를 시댁에 두고 나올 무렵 시어머니에게 새 남자가 생겨 동거 중이었다. 그들은 기수가 어린 시절부터 온갖 정서적 학대와 신체폭력을 일삼았다. 어떤 날은 어린 기수에게 던진 아령이 기수의 손등에 떨어져 뼈가 부서지기도 했다. 또 입에 담지 못할 언어폭력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영미씨는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당장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어 외면하며 눈물만 삼켰다.

영미씨는 홀로서기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았다. 그러다 대형할인매장에서 일하다 쓰러진 이후 같은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뇌동정맥기형(선천성 발달이상으로 발작, 두통, 사지마비, 의식저하 등 신경학적 이상 발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영미씨는 1차 뇌혈관 수술을 받고, 2차 수술을 앞두고 있다. 이후 발작과 기절 등 불규칙적으로 찾아오는 증상 때문에 어떤 직업도 가질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또 뇌동맥에서 비정상적으로 튀어나온 혈관이 발견돼 수술을 했으나 각종 후유증과 합병증이 찾아와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졌다. 이밖에도 치주염을 비롯한 치과질환과 신우신염 등 여성과 질환을 복합적으로 안고 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7살에 시댁에 맡겼던 기수는 어느새 중학교 3학년이 됐다. 기수 스스로도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며, 본인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영미씨도 더 이상 시댁에 기수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기수를 시댁에서 데리고 나와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들은 어느새 중3 졸업반, 이제는 함께 살고 싶어요
 
영미씨는 현재 기초생활수급비 49만원으로 겨우 연명만 하며 지내고 있다. 현재 LH 공동임대주택임대료, 관리비, 전기요금을 지출하고 나면 병원비, 교통비 생활비는 늘 적자다. 이런 상황에서도 영미씨는 기초생활수급비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기수 용돈 10만원을 먼저 챙긴다. 그리고 남은 돈을 쪼개서 겨우겨우 살아가는 상황이다.

앞서 영미씨에게는 개인부채가 있었으나 파산을 신청했다. 통신요금은 200만원이 밀려있다. 이런 벼랑 끝 삶에서도 영미씨는 반드시 기수를 데리고 나와서 함께 살겠다는 각오다. 기수는 가장 민감한 청소년기인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미영씨는 기수의 고교 3년은 반드시 자신이 옆에서 밥을 지어 먹이고, 지켜주고 싶다고 말했다.

☞<충남시사><교차로>는 삶이 벼랑 끝에 내몰린 어려운 이웃을 발굴해 지원하고 응원하는 ‘희망나눔 1004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동행을 위한 1인1구좌(1004원) 기부운동에 시민여러분들의 따뜻한 관심과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후원문의:041-555-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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