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에 발생한 끔찍한 교통사고는 김양미씨의 30~40대 젊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다. 또 어린시적 기억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양미씨의 남은 인생도 잔인하게 괴롭히고 있다.
“온 몸이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워요. 내 몸 중에 멀쩡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맑은 날은 맑아서 아프고, 흐린 날은 흐려서 아파요.”
1999년 어느 날 김양미(50·가명, 아산시 외암로) )씨는 충남 공주시에서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당시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양미씨는 이날 자신의 보험고객 오토바이 뒷자리를 얻어 타고 사무실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세상이 온통 암흑으로 변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깜깜한 세상 속에 갇혀 버렸다. 이게 죽음인가 싶었다.
며칠이 지났는지 몇 달이 흘렀는지 양미씨는 길고 긴 잠에 빠져 있었다. 양미씨가 긴 잠에서 깨어나자 잃었던 기억과 정신이 서서히 돌아왔다. 정신이 돌아오자 이번에는 온 몸에 육신의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온 몸의 뼈가 으스러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통증이 밀려왔다.
얼굴 왼쪽 2/3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함몰됐다. 광대뼈를 비롯한 얼굴 기본 골격이 부서져 재생시킬 수 없는 상태였다. 얼굴 형태를 복원시키기 위해서는 얼굴 부위 2/3 이상 철심을 박아 넣어야 했다. 또 얼굴 골격이 깨지면서 안구가 파열돼 한 쪽 눈을 영원히 잃어 버렸다. 의료진은 양미씨의 얼굴 형태를 복원시키기 위해 의안을 끼워 넣었다.
얼굴 외에도 갈비뼈 4개가 부러지고, 척추도 손상됐다. 척추손상으로 허리 부위도 몇 차례나 수술을 했다. 그 후유증으로 허리 디스크와 협착증이 발생해 평생 도수치료를 받아야 하는 처지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오른쪽 허벅지도 뼈가 재생 불능상태로 부서졌다. 이 곳에도 뼈대신 철심을 박아야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교통사고 원인은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고객이 중앙선을 넘었고, 그때 마주오던 1톤 화물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장파열과 과다출혈 등으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양미씨는 간신히 목숨만을 건졌다. 양미씨는 13번의 수술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20년 전에 발생한 이 끔찍한 사고는 김양미씨의 30~40대 젊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다. 또 어린시적 기억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양미씨의 남은 인생도 잔인하게 괴롭히고 있다.
18살에 만난 남편과 1남1녀를 두다
양미씨 고향은 경기도 성남시다. 양미씨가 여고생이던 1987년 열여덟 살에 1년 연상의 남편을 만났다. 둘은 열여덟-열아홉 어린 나이에 동거를 시작했다. 이른 나이에 시작한 사랑으로 양미씨는 19살에 임신했다.
미혼모가 될 처지에 놓인 양미씨는 만삭의 몸을 이끌고 무작정 시댁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시댁에서는 양미씨에게 방 한 칸을 내줬다. 그때만 해도 시댁은 정육점과 농사일을 함께하며 재력이 뒷받침 되는 집안이었다.
양미씨는 19살 되던 해에 딸을, 21살에 아들을 낳았다. 이때부터 문제는 남편의 생활능력 부족이었다. 남편은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1997년 어느 날 남편은 함께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과 끔찍한 범행에 가담했다.
친구들과 미리 범행을 공모했던 주택에 침입해 돈을 빼앗고, 피해자를 살해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남편은 특수강도 살인사건의 공범자가 됐다. 체포된 남편은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받아 목포교도소에 재소 중 무기징역으로 감형 받아 현재 원주교도소로 이송돼 수감 중이다.
당시 지역에서 나름대로 부족함 없이 살던 시댁도 남편이 여기저기서 빚진 돈을 갚고, 사건을 수습하느라 한 순간에 몰락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크고 작은 남편의 사건을 처리하던 시부모는 집과 땅을 모두 팔고 작은 빌라 한 칸 얻어 겨우겨우 생활하고 있다.
당장 밥벌이를 해야 했던 양미씨는 초등학교 4학년 2학년인 두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충남 공주시에서 월세방 한 칸 얻어 살며, 보험 업무를 시작했다. 양미씨는 어렵게 시작한 보험일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며 돈 버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제적인 여건이 조금씩 풀리나 싶었는데, 1999년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남편과 ‘이혼’…그 후 다시 ‘재결합’
젊은 시절부터 생활능력도 없이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던 남편이지만 그래도 어린 자녀와 시부모님을 생각해 견뎌내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살인사건으로 수감되자 양미씨는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혼을 결심했다. 살인자 부모를 둔 자녀로 기르고 싶지 않아서다.
결국 법적 이혼을 선택했다. 그러나 어린 자녀를 길러준 시부모와의 관계, 또 직계가족이 있어야 1박 면회가 가능한 재소자 남편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재결합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시부모의 빌라에서 함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시부모에게 더 이상 피해를 주지 말라는 시누이의 말을 듣고 양미씨 가슴에 못이 박혔다.
세월이 흘러 교통사고 당시 초등학생이던 두 자녀는 어느새 성인이 됐다. 딸이 아산시의 한 회사에 취업해 경제활동을 시작하자, 양미씨는 시부모댁을 나와 딸과 함께 아산으로 이주했다. 딸이 벌어온 돈으로 하루하루 생활하며 아산 생활에 정착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에게 남자가 생겼다. 그때부터 딸은 양미씨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양미씨 딸은 현재 32살이다. 경기도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올해 30살이 된 아들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양미씨 생활비를 분담해줬다. 그러나 월 200만원 안팎의 급여로 자신의 4인 가족을 부양하기에도 빠듯해 지금은 전혀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삶 자체가 고통, 평생 치료받으며 살아야
교통사고가 발생한지 20년이 지났다. 그 긴 시간동안 교통사고 후유증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하나 둘 더 늘어나고 있다.
2년 전부터는 오른쪽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1년 전부터는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어깨에 석회가 끼었지만 치료를 받지 못해 굳어 버렸다. 또 왼쪽 눈이 의안이기 때문에 눈물샘이 잘 막힌다. 2~3년에 한 번씩 눈물샘이 막히면 뚫어야 하는데, 바늘로 해결되지 않으면 전신마취 후 의안을 빼고 눈물샘을 세척해야 한다. 한 번 세척하는데 50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사고로 얼굴이 내려 앉아 왼쪽 눈두덩이도 지방이식을 한 상태다. 지방이식도 2~3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해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눈두덩이가 움푹 꺼지게 된다. 지방이식은 한 번에 200만원의 거금이 든다.
얼굴과 다리에 이식한 금속재질의 보형물은 뼈와 달리 계절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겨울이면 몸을 더욱 차갑게 하고, 여름이면 더욱 심한 이물감이 느껴진다. 김양미씨는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30~40대를 교통사고 후유증과 싸우며 보냈다. 앞으로 남은 인생도 신체적 고통과 싸우며 보내야 한다.
양미씨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고통스럽고 비참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몇 차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빚만 쌓여가는 대책 없는 삶
김양미씨는 현재 기초생활수급비 50만원과 장애수당 4만원 등 54만원이 수입의 전부다. 그러나 지출은 LH임대료 5만원, 관리비 9만원, 월 부채상환액 25만원, 보험료 5만6000원, 병원비 5만원, 기타 생활비 15만원 등 최소 64만6000원 이상의 생활비가 필요하다. 54만원 수입에 64만6000 이상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밖에도 정형외과, 내과, 내분비내과, 신장내과, 안과 등을 다니며 몸에 통증이 있을 때마다 병원진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제때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 근로의욕은 강하지만 실제 일 할 수 있는 체력적인 능력이 안 돼 자포자기 상태다. 누군가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그녀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웃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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