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철씨는 현재 순천향대 천안병원에 입원해 정밀검사를 받고 있다. 병든 아들을 지켜보는 노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확한 날짜는 모른다. 계절도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은 유난히 쌀쌀한 바람이 불던 날이라는 기억이 전부다.
“할머니!” “할아버지!” 낯익은 어린 아이의 목소리만 또렷하다. 외출을 위해 나오던 노부부는 순간 환청이 아닌가 생각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손녀딸이 아파트 건물 밖에서 추위에 떨고 있었다.
반가움을 느낄 새도 없이 노부부는 기겁을 했다. 손녀딸 옆에는 어린 아기가 담요에 돌돌 싸여 있었다. 세 살배기 어린 손녀가 7개월 된 어린 아기 옆을 미동도 없이 지키고 있었다. 이 어린 것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밖에서 떨고 있었을까. 또 얼마나 무섭고, 어른들이 원망스러웠을까. 노부부는 지금도 그 날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촉망받는 호텔 셰프가 되다
호텔조리를 전공한 임동철(48·가명)씨는 대학을 졸업도 하기 전에 서울 강남의 유명 호텔 셰프로 스카웃 됐다. 동철씨가 조리한 음식은 맛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예술 그 자체였다. 동철씨의 음식을 경험한 손님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았다. 손님 중에는 유명 연예인, 스포츠스타, 예술가, 정치인들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철씨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고소득이 보장된 강남의 호텔 셰프를 그만뒀다.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작은 식당을 개업했다. 부모님을 곁에서 모시며 동생들을 돌보기 위한 선택이었다. 동철씨의 뛰어난 음식솜씨는 빠른 입소문을 타고 지역의 유명 맛집으로 등극했다.
그러자 동철씨의 재능을 높게 평가한 요식업 대표들이 앞 다퉈 동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또 전국 각지에 흩어진 그의 옛 동료들이 함께 일하자며 찾아오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동철씨는 부모님 곁에서 묵묵히 자신의 식당을 운영하며 작은 행복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한 여인을 만나다
동철씨는 이성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청춘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서른 후반의 나이를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동철씨의 옛 동료가 한 여인을 소개했다. 애교 섞인 경상도 사투리가 매력적인 그녀에게 동철씨는 푹 빠져 들었다.
그녀와 함께 동철씨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동철씨는 둘 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집을 사고, 가구도 들이고, 거실과 주방도 꾸몄다. 그녀를 만난 이후 모든 것이 새로웠다. 하루하루 행복했고, 하루하루 꿈 같은 나날을 보냈다.
사랑의 결실로 두 명의 딸도 얻었다.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단란한 가정이 완성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남편과 두 딸을 남기고 사라진 아내
어느 날 아내는 동철씨가 일 나간 사이에 어디론가 떠났다.
아내는 그동안 동철씨 몰래 집을 처분했다. 그리고 아이들 교육과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한푼 두푼 열심히 모으던 통장과 결혼예물, 아이 돌 반지 등 돈이 될 만한 모든 것들을 들고 사라졌다.
이때 큰 아이는 3살, 작은 아이는 겨우 7개월이 지났다. 아내는 평소 아이들을 끔찍이 사랑해 주시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거주하는 아파트 출입문 앞에 두 아이를 두고 어디론가 떠난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큰 아이는 아파트 출입문만을 바라보며 시퍼렇게 질린 채 서 있었다. 어린 것들이 얼마나 춥고, 외롭고, 무서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분노가 치민다. 최소한 아이들을 두고 간다고 전화라도 한 통 해주고 떠났으면 아내에 대한 분노가 덜 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와 유사한 일이 아내에게는 한 번 더 있었다. 동철씨에게 오기 전 아내는 또 다른 남자와 살면서 아기를 낳아 기르다 그 남자와 아기를 남겨두고 동철씨에게 왔던 것이다.
배신감에 분노…술에 의지해 살다
아내의 가출로 큰 충격을 받았지만 동철씨는 두 아이를 생각해 그래도 버티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동철씨 가슴에 응어리진 배신감과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맨 정신으로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었다. 충격과 고통을 잊기 위해 매일 술에 의존했다. 그러다 보니 몸과 마음이 갈수록 피폐해 졌다.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도 무뎌졌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입맛도 없고 만사가 귀찮아 졌다. 오로지 술만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손이 떨리고, 뼈 마디마디가 아파왔다.
동철씨의 몸은 병들고 망가졌다. 술을 끊어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본인의 의지와 달리 또 술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몸에 ‘절망’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들었다. 이대로 폐인이 되는게 아닌가 무서웠다. 이제 술에서 벗어나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잇몸이 붓고 극심하게 아프더니 치아가 하나 둘 빠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모든 치아를 제거했다. 길을 걷는데 몸이 한 쪽으로 쏠린다. 멀쩡하게 선채로 단 한 시간도 버티기 힘들다. 동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손쓸 수 없으니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대학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았지만 건강한 시절로 돌아가기 힘들다고 한다.
이제 예전처럼 일을 할 수도 없다. 병원 침대에 누워 억지로 하루하루 버틴다. 오랜 시간동안 일을 못했다. 생활비가 없어 여기저기 손을 벌렸다. 빚이 쌓이고 있다. 말 그대로 절망이다. 늙은 노모는 매일 동철씨가 누워있는 병원 침대에 기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잘 나가던 셰프, 동철씨의 쾌유를 응원한다
동철씨와 두 아이를 버리고 떠난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다. 법원은 친권과 양육권 모두 동철씨에게 있다고 했다. 반면 이혼한 아내에게는 매달 60만원씩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그녀는 법원에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아내가 두고 떠난 아이들이 이제는 8살 6살이 됐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건강하게 자라줬다. 큰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엄마의 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이 아이들은 엄마의 존재를 모르고 산다.
동철씨 부모님은 생활능력이 없다. 얼마 전 경비일을 하던 아버지가 일을 그만뒀다. 동철씨 부모님은 동철씨를 살리고 손녀들을 키우기 위해 빈곤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동철씨 부모님 역시 절망감에 억장이 무너진다.
동철씨는 말한다. “술로 보낸 날들은 정말 어리석었다. 건강한 몸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남은 인생 아이들과 부모님을 위해서 제대로 살아 보겠다”
한때 잘 나갔던 강남의 유명한 호텔 셰프 동철씨가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그는 반드시 재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