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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에서 독립군으로 이어진 항일무장투쟁의 별

2월의 독립운동가 한상렬(韓相烈, 1876.4.2~1926.9.19)선생

등록일 2013년02월05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2월의 독립운동가 한상렬 선생 추모비. 독립기념관(관장 김능진)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한상렬(韓相烈, 1876.4.2~1926.9.19)선생을 2013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2월 한 달 간 야외특별기획전시장에서 개최한다.

1876년에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난 한상렬의병장은 의병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이후 중국지역에서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일제에 의해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해산이 된 후 시위보병 제1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朴昇煥) 참령의 자결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의병운동이 일어났다.

이 때 횡성에서 봉기한 한상렬의병장은 민긍호의병장과 함께 일제의 주요 인사 및 시설물 파괴작전을 감행하고 또한 일본군이 주둔하던 충주성을 공격해 큰 타격을 입혔다.

국내 의병운동의 한계를 인식한 한상렬의병장은 1908년 연해주지역으로 활동무대를 옮겨 성명회(聲明會)에서 활동하고, 1915년 창의소(彰義所)를 조직해 중대장을 역임하면서 경흥지역 일본군 습격 등을 계획했다. 창의소가 와해된 후에는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에 참여해 선전활동, 독립군모병활동 등을 전개했다. 또한 대한군정부(大韓軍政府)에서는 방화대(放火隊) 제2부장을 역임하며 보급품과 무기의 확보라는 중요한 일을 수행했다.
만주지역 독립군 단체들이 다시 조직되는 과정에서 선생은 김좌진 장군이 설립한 성동무관학교(成東武官學校)에서 선전계, 군자금모급계장으로 있으면서 독립운동을 꾸준히 전개했다.

한상렬 의병장은 만주지역에서 보금품 확보, 선전활동, 군자금 모집 등의 중책을 맡아 활동하던 중 1926년 9월 19일 민족진영의 분열을 책동하던 공산당원의 흉탄에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정리/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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