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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할머니? 그렇게 불러줘도 좋아”

재래식 간장·고추장·된장·청국장에 두부까지… 대형음식점이 대고 사갈 정도로 입소문

등록일 2013년01월08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말도 마세요. 된장이면 된장, 고추장이면 고추장, 간장에 청국장을 재래식으로 담그는데 어찌나 맛이 좋은지요. 언제 두부도 드시러 가세요. 직접 만든 두부를 김치에 얹어 먹으면 기가 막힙니다.”

천안 시내에서도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음식점의 경영주가 풍세면 할머니에게 ‘기본맛’을 다 맡기고 있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한다. 알고보니 그녀는 이미 호서대학교에서도 된장이나 고추장을 상품화하는 사업에 2년여 깊이 관여해온 이력도 갖고 있었다. 허리도 꾸부정해지고 갈수록 주름도 느는 여느 할머니지만 음식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만은 ‘유명인’으로 통한다.

물어물어 찾아간 이군자(68) 할머니의 집은 풍세면 용정리에서도 도로상의 외딴 집. 쌀쌀한 날씨에 몇 번을 두드리고서 전화까지 하고서야 ‘빼꼼’ 현관문이 열렸다.

 

수십개의 항아리 “내겐 이것이 보물이여”

앞마당 옆 장독대엔 수십개의 항아리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맛을 보여주마 하고 뚜껑을 여는데 잘 맞추지를 못한다. “어, 이게 고추장 항아리였던 것 같은데…, 요건가” 하며 이리저리 뚜껑을 연다.

간장은 진한 먹물 같고, 된장 또한 진한 것이 밤색 같기도 하고 누런 종이같기도 하다. 고추장은 빛깔이 아예 죽어있다. 마트에서 파는 맛깔스런 것하고는 완전 딴판이다.

“보기엔 그래도 맛은 좋아요. 마트 같은 데서 파는 거랑은 다를 거에요.”

주걱 같은 걸로 퍼올린 것을 새끼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맛보니 정말 다 같은 고추장이 아니다. 뭘로 표현 못할 맛의 깊이가 느껴진다. 이런 고추장으로 비빔국수라도 해서 먹는다면 대여섯 그릇은 뚝딱 해치울 듯하다.

실제 3~4년씩 묵은 맛이니 맛의 깊이가 다를 것은 당연하다. 마치 디지털카메라로 보면 심도의 차이라고나 할까. 천안에서도 유명한 대형음식점이 왜 이곳에서 대놓고 사용하는지를 알 것 같다. 게다가 마트와 비교해도 가격이 비싸지 않은 것은 큰 장점. 그녀는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알기만 알면 많이들 사가실 것”이라며 “굳이 찾아오지 않아도 택배로도 부쳐주니까 이용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자신한다.

 

일복은 나의 것

 

할머니의 장독대. 항아리는 집마당 둘레로 긴 동선을 갖고 놓여있다.

“메주 좀 더 사야는데 못샀어…, 올해 농사가 잘 안됐거던.”

식사를 하다 말고 ‘손님’을 맞았다. 양옥집 형태지만 40년 됐다는 오래된 집은 구석구석 낡은 풍경을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있었다. 거실은 아예 창고같은 분위기. 한쪽에는 말린 고추가 커다란 푸대자루에 담겨 가득 쌓여 있었다.

“여기서 주무세요, 아님 저쪽방에서…”

나도 모르게 괜한 궁금증이 일었다. “남편이 손에 마비도 오고 걷지도 못하고 13년을 앓다가 죽은지 10개월쯤 됐을까… 그때까지는 여기서 잤지.” 20여평 되어보이는 집에서 그녀의 안락한 방이라곤 ‘골방’ 하나인 듯, 그 외에는 모두 잡동사니 농산물로 채워있다.

본격적으로 그녀의 음식솜씨에 관심을 보이자 얼굴이 더욱 밝아진다.

 

“그래도 내가 음식을 하면 간을 안 봐. ‘감’으로 본다니께. 요 건너 페인트 회사에서 3년을 밥해준 적이 있는데, 내가 100여명 되는 직원들 찌개다 반찬이다 다 해줬거든. 싹싹 없어졌어. 거길 찾아오는 사람들도 공장 다녀본 중에 제일 맛있다고 허고….”

설마 그 정도일까. 의심 한자락은 어디선가 한참을 주섬주섬 뒤적거려 꺼내든 한 장의 팜플릿을 보고서야 멈춘다. “이것 봐봐. 여기 호서대 교수님들이 소문 듣고 직접 와서 먹어보더니 두말 않고 함께 일하자고 해서 한 거여.”

그런데 일이 잘못 되면서 2년여 열심히 한 대가가 밖에 놓여있는 헌 콘테이너 정도란다. “하기사 사업이란게 어디 바로바로 성공만 할 수 있는 것인가. 몇 번을 시도해도 한번 될까말까 하는 것인데, 그만 하면 아쉬워도 마음 비워야제.” 사업 때문에 인정도 잃고 건강도 잃었지만 어떤 교수하고는 지금도 살갑게 지낸다고 한다.

 

“많이들 사가고 맛있게만 먹어줘”

그녀는 스스로 ‘억척이’라고 한다. 자식들도 있지만 다 지들 살기 바쁘다며 “내가 벌어 내가 먹고 사는 것이 편하제” 한다.

그간 양손 모두 수술했고 눈수술에 허리수술도 3번, 심지어 암수술도 받아 6년째를 넘고 있다. 며칠 전에는 빙판길에 넘어져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 입원하라는 걸 침만 맞고 돌아왔다. 그래도 ‘그냥 열심히 산다’는 신념은 잦은 병치레도 그녀의 부지런함을 묶어두진 못했다. “남자들 보다 더 일하다 보니 맨발로 일해도 건강하기만 혀”

 

거실 한 켠에 그득히 쌓인 고추들.

그런 그녀에게 지난 가을 참 가슴아픈 일도 있었다. 산골짜기 밭에 죽자사자 5000포기의 고추를 심어놨더니 어느날 도둑들이 ‘홀라당’ 털어갔다. 주렁주렁 매달린 고추를 보며 이제나 저제나 수확할까 하던 차에 어느 어둑한 밤 도둑들이 찾아와 병든 고추까지 모조리 다 훑어간 것이다.

“요기 거실에 가득 쌓인 고추푸대는 뭐에요.” 묻자 “그건 고추를 다 도둑맞고 할 수 없이 많이 사들였더니 이젠 안팔려. 가격도 떨어졌고….” 말 그대로 애물단지, 고추농사 두 번 망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도 단골들이 점점 늘어나기 때문에 그녀의 얼굴은 밝다. 재래식으로 정성껏 담근 된장과 고추장, 청국장, 간장, 두부가 맛있다는 소문과 함께 찾는 이가 늘면서 ‘사업’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팔아도 그렇게 남는 것도 없어. 지난해엔 콩값이 한가마니에 50만원이나 해서… 비싸게 받지도 못하잖여. 또 내가 손이 큰게 흠이여. 많이 퍼주다 보니 어떤 사람은 돈을 더 놓고 가기도 허구…, 따로 봉사는 못허니 이것으로라도 좀 혀는 거여.”

문의/ 010-3953-7437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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