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동에 사는 이모씨(37). 1살배기 둘째 아이가 저녁 때 열이 오르더니 보채기 시작했다. 해열제를 구비해 놓지 않은 이씨는 응급처치로 미지근한 물을 적신 수건으로 아이 몸을 닦아주니 열이 내려가는 듯 했다.
새벽 2시경, 아이의 체온이 39도까지 올라 해열제를 구입하기 위해 인근 24시간 운영하는 약국을 찾았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씨는 “24시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았는데, 실제 가보니 문이 닫혀 있었다”며 “해열제를 구하지 못해 응급실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무늬만 24시간 약국인거 같아 속은 느낌이라는 이씨는 “대부분 야간에 약국이 문을 닫아 이번 경우와 같이 약국을 이용하지 못해 불편을 겪은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충남에서 유일하게 쌍용동 참조은약국 24시간(익일 06:00까지 운영) 운영에 들어갔다. 그런데 올해부터 새벽 1시까지 운영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시민들의 불편을 줄이고 편의를 위해 24시간 운영하겠다던 약국이 방침을 변경한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시스템 부재 24시간 약국 폐지
충청남도는 충남도약사회(회장 전일수)와 지난해 7월28일 도청에서 ‘심야약국 운영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8월16일에는 ‘참조은약국’의 심야응급약국(레드마크) 제1호점 개국식을 개최했다.
이에 따라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운영하는 24시간 약국은 천안 쌍용동 ‘참조은약국’, 아산 ‘명신약국’ 2곳과 밤 12시까지 운영하는 약국 42곳 등 모두 44개 약국(천안 11개)이 ‘심야약국’으로 지정돼 운영에 들어갔다.
MOU 체결에 따라 충남도는 참여 약국에 대한 행정적 지원과 심야약국에 운영현황에 대해 도․시․군 홈페이지에 홍보용 배너를 등록해 도민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충청남도약사회는 심야약국 선정·지정과 함께 영업시간 준수 등의 내용을 담고 약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로 했다.
심야약국 시행 약 5개월 후 24시간 약국은 새벽1시까지 운영하도록 방침이 바뀌었으며 12시까지 운영하겠다던 심야약국은 약국 사정에 따라 10시부터 ~12씨까지 문을 닫는 시간이 각각 달랐다.
참조은 약국 관계자에 따르면 24시간 약국 운영은 수익성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운영상의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야간운영은 피로감이 더하고, 인력운용 비용 문제를 개인 약국이 감당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것.
이에 충남약사회는 24시간 약국에 보조금을 지급했으나 올해부터 보조금이 끊기면서 운영이 어렵게 됐다.
또한 새벽시간까지 약국을 운영하면서 각종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반면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이유도 있다.
야간약국의 한 관계자는 “운영비를 절약하기 위해 대부분 혼자 야간에 약국을 운영한다”며 “취객과의 실랑이를 벌이 때가 있는 등 범죄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고 밝혔다.
충남약사회 관계자는 “보통 12시 이후 약국을 찾는 이용객이 거의 없고, 응급을 요하는 경우는 대부분 응급실을 찾는다”며 “지난해 시범적으로 운영했던 24시간 약국은 운영상의 어려움 등 실효성이 없어 폐지하게 됐다”고 밝혔다.
천안아산 경실련 정병인 사무국장은 “24시간 운영 약국과 야간약국 운영의 배경은 수익성을 떠나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시민들이 약국을 찾아 이용하게끔 하는 것”이라며 “반면 시행 후 형식적인 운영에 그치며 실패한 제도로, 자율적인 약사회의 운영방침이라고 발을 뺀 행정당국의 무관심도 한 몫하고 있다”고 밝혔다.
21일부터 의약외품 48개 슈퍼판매
한편 보건복지부 의약품 구입 불편 해소를 위해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인정되는 액상소화제·정장제·외용제 중 일부 품목을 의약외품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의약외품 범위지정 고시 개정안을 21일자로 공포․시행했다.
이에 21일부터 일반 슈퍼마켓·편의점 등에서도 박카스D 등 의약외품으로 전환된 48개 제품이 판매가 가능해지자 각종 편의점·대형마트·슈퍼마켓 등에서는 자발적으로 현재 판매를 진행 혹은 계획하고 있는 상태다.
또한 복지부는 종합감기약과 해열진통제 등 가정상비약을 약국 이외의 장소에서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을 지난 달 29일 입법예고한 상태다.
약사회 측은 복지부의 고시 개정안이 공포된 지난 21일 복지부의 졸속한 고시 발표를 규탄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약사회는 ‘졸속으로 강행 처리하고 있는 복지부는 더 이상 국민의 건강을 논할 자격이 없다’며 정부를 비판하고 있어 약사법 개정을 둘러싼 진통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공훈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