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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과 말 수호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10월의 독립운동가 최현배 선생(1894.10.19 ~ 1970.3.23)

등록일 2010년10월07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10월의 독립운동가 최현배 선생.

독립기념관(관장 김주현)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최현배(崔鉉培, 1894.10.19 ~ 1970.3.23) 선생을 2010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10월 한달 간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에서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에는 선생이 집필한 ‘우리말본’ 등 관련자료 17점이 전시된다. 

1894년 10월 경상남도 울산군 하상면 동리(현 울산광역시 중구 동동)에서 최병수의 맏아들로 태어난 선생은 1910년 관립한성고등학교(경술국치 후 경성고등보통학교로 변경)에 입학했고, 재학 중에 보성학교 국어강습소에서 주시경의 강의를 들으면서 애국사상을 정립했다. 

1915년 관립 한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히로시마(廣島)고등사범학교 연구과를 거쳐 교토(京都)제국대학 철학과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일본 유학 중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민족계몽의 필요성을 절감한 선생은 귀국 후 1920년 사립 동래고등보통학교 교원으로 부임해 우리말을 가르치고 연구했고, 우리글의 문법체계를 바로 잡을 목적으로 ‘우리말본’의 초고를 집필했다. 

1926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한 후 동아일보에 ‘조선민족 갱생의 도’를 66회나 연재해 우리민족이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실천적 이상주의를 고취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또한 조선어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에 참여해 기관지 ‘한글’ 창간 및 한글날 제정에 적극 참여했다. 1929년에는 조선어사전 편찬위원회의 준비위원 및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933년까지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동안 집필해 온 ‘우리말본’을 1937년 출판하는 등 일제의 식민통치 하에서 우리글과 우리말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전념했다.

1938년 선생은 일제가 조작한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일경에 검거돼 옥고를 치르면서 연희전문학교 교수에서 강제로 해직됐다. 선생은 해직 이후에도 한글을 역사적으로 또 이론적으로 연구한 ‘한글갈’을 집필하기 시작해 1942년 출판하는 등 연구와 저술활동을 계속했다.
일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뒤 한국인에 대한 민족말살정책을 더욱 강화하면서 같은 해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을 조작했다. 선생은 또 다시 검거돼 심한 고초를 겪으며 옥고를 치러야했다.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게 된 선생은 광복 후 미군정청 편수국장, 문교부 편수국장 등을 역임했고 연세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다 1970년 작고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정리/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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