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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치의 재발견

이득주의 느낌있는 수필산책

등록일 2010년09월29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몇 해 전 어느날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75세 노인이 나를 불러 철관 파이프 매설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왜 하필이면 나를 부를까 하고 생각해 보니, 우리 집 땅을 경작하고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호수도 많지 않은 이 마을에서는 대낮에 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인 듯했다. 아마도 서울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낙향해 환갑이 넘은 나를 노력의 보탬이 된다고 예상하고 도움을 요청한 모양이었다.

또한 주민들은 내가 시내에 나갈 적에 차에 동승시켜달라고 자주 부탁한다. 오래 끌고 다니던 자가용으로 도심에 자주 나가니 교통편의를 보아달라는 것이다. 버스가 하루에 여섯 번 밖에 다니지 아니하니 그 중간 시간대에 시내를 나가는 것은 여간 불편한 노릇이 아닌 까닭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을 보면 차를 세워서 동승한다.

또 이웃에 사는 노인은 우편물만 오면 손에 들고 찾아와서 읽어달라고 하고, 자식이 몸이 성치 아니한 어떤 사람은 찾아와서 하소연하고 무엇인가 도움과 위로를 받으려고 한다. 어떤 나이든 인텔리 친구는 스트레스 해소책으로 또는 심심풀이 대상으로 나를 종종 찾아온다.
또한 이곳에 마련한 일터에는 노인단체, 장애인단체 등이 심심치 않게 공적 또는 사적으로 구원의 손길을 요구해 오는 등 34년 공직에 몸을 담은 탓인지 어설프게 체득한 지식이지만 이를 믿고서 다소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이럴 경우 나의 경험과 지식을 동원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면 효과가 나타나서 이로 인해 입에서 입으로 ‘해결사’라는 소문이 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발디딜 틈 없는 거리, 백장홍진 속의 도심, 초만원을 이룬 서울, 치열한 경쟁 속의 직장생활, 구조조정, 인력감축, 체제정비 등 새로운 질서를 형성해가는 복잡한 사회를 떠나서 시골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어찌보면 서울에서는 쓸모없다고 쫓겨나온 처지) 보니 마음과 몸이 편하고 깨끗하다.
서울에서는 불필요한 존재이겠지만, 시골에서는 아직도 소용이 되는 존재인 모양이니 아마도 존재가치가 있는가 보다. 이것이 나만의 착각일까?

아직도 시골마을에는 부족한 것과 필요한 것이 너무 많다. 젊은 노동력, 활력있는 기동력, 시대에 뒤지지 않는 상식,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 창조적 사고력, 또 불우이웃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인력과 금전) 등등이다.
생활의 지루함을 탓하면서 맥없이, 할 일 없이, 서울에서 배회하는 늙지도 젊지도 않은 능력있는 사람들이여! 갈 수 있고, 가야만 하고,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터전은 바로 농어촌 시골마을이다.

땅을 파세요. 흙을 만지세요. 싱싱한 채소 등 농산물이 나옵니다. 가계에 보탬이 됩니다. 기운이 납니다. 머리가 맑아집니다. 수명연장도 될 것입니다. 깨우쳐 줄 때 들으시오. 늙지도 젊지도 않은 도회지 한량님들이여!

<2000년 9월21일>

이득주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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