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영씨, 수상 소감 말씀해 주세요.” 여우주연상으로 호명된 장진영이 무대 위에서 한동안 입을 열지 못하자 진행자인 김혜수의 재촉이 이어졌다.
지난 12일 열린 제22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은 그야말로 막판 깜짝 수상의 이변을 낳으며 장진영이라는 새로운 스타 탄생의 서막을 알렸다.
이날 장진영에게 무대 위에서의 약 5분간의 시간은 생애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으로 기억될 듯하다. 공교롭게도 시상자로 영화배우 이성재와 함께 무대에 오른데다, 긴장된 탓에 수상후보자를 화면보다 앞서 부르는 실수를 저질러 안 그래도 파랗게 질려 있었던 것.
장진영은 “전날 여우주연상 시상자로 오른다는 말을 듣고 수상에 대해선 일찌감치 마음을 비운 상태였다”면서 “실감이 안 난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특히 시상식이 끝난 후 열린 환영 리셉션에서도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자 대선배인 안성기는 “여배우가 이렇게 오랫동안 우는 것은 처음 봤다”며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기도 했다.
사실 이날 여우주연상 후보에는 전도연 이미연 이영애 김희선 전지현 등 쟁쟁한 여배우들이 총출동한 상태라 누구도 장진영의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다. 특히 장진영이 출연한 영화 ‘소름’이 극장 흥행에서는 부진했던 터라 영화를 보지 못한 대다수의 관객들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던 것.
하지만 ‘소름’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장진영의 수상 소식에 ‘공정한 판단’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장진영은 이날 9명으로 이뤄진 심사위원단 가운데 5표를 얻으며 3표를 얻은 이영애와 1표의 이미연을 가볍게 물리쳤다. 특히 최근 한 월간지가 영화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펼친 설문조사에서 ‘가장 과소평가되고 있는 배우’에 선정됐을 정도로 무서운 잠재력을 지닌 배우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여름 개봉된 영화 ‘소름’은 예전 화재가 일어났던 허름한 아파트에 한 택시운전사가 이사오면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스릴러 공포물. 장진영은 여기서 헝클어진 머리와 멍든 얼굴로 연신 담배를 피워대는 매맞는 아내 ‘선영’ 역으로 분해 음산한 내면 연기를 펼쳤다. 특히 ‘예쁜 배우’의 틀을 벗어던지고 ‘배우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듯 철저하게 역할에 몰입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소름’ 이전에는 ‘자귀모’ ‘반칙왕’ ‘싸이렌’ 등에 출연했으며, 현재 강제규필름의 신작 ‘오버 더 레인보우’에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이정재와 함께 촬영 중이다. 데뷔 3년 만에 ‘여우주연상’의 쾌거를 이룬 후 “생애 가장 기쁜 날”이라며 감격해한 장진영이 ‘여배우 공황’에 빠진 영화계에서 어떤 위치로 올라설지 그녀의 화려한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청룡상, 톱스타 ‘드레스 페레이드’ 영화팬 열광
한해를 결산하는 영화계의 축제, 제22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12일 오후 7시40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열렸다.
올해 시상식은 어느 해보다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과 사랑이 컸던 탓인지 수많은 영화팬과 취재진이 몰려 대성황을 이루었다.
뭐니뭐니 해도 영화팬들을 가장 열광시킨 것은 화려한 드레스와 턱시도로 성장한 스타들의 입장 퍼레이드. 톱스타들의 패션감각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들을 가까이 볼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레드 카펫이 깔린 입장 통로는 일찌감치 사람들로 둘러싸여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가 도착할 때마다 함성과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는데, 역시 가장 많은 괴성이 터져 나온 스타는 장동건과 이병헌, 정우성 등 인기스타상을 수상한 영화계의 미남배우 ‘빅3’. 어렵사리 장동건과 악수하는데 성공한 한 40대 아줌마는 “앞으로 손을 씻지 않을 것”이라며 소녀처럼 좋아해 세대를 초월한 장동건의 인기를 새삼 실감하게 했다.
스크린 전성기를 구가 중인 이미연은 베이지색의 고풍스런 드레스에 커다란 진주목걸이를 하고 나와 시선을 끌었고, 이미연과 함께 인기스타상 수상자인 김희선은 오드리 헵번풍의 깜찍한 검정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환호를 자아내게 했다.
가장 파격적인 의상으로는 등 전체가 훤히 드러나는 연녹색 드레스를 입은 전도연과, 허리부분과 가슴의 굴곡이 살짝 드러난 검정색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장진영. 이밖에도 ‘TTL 소녀’ 임은경이 인도풍 드레스 차림으로 등장해 시선을 모았고, 하지원 김정은 이은주 이지현 등 차세대 여배우들의 화려한 의상 퍼레이드도 이어졌다.
관객들이 가장 호기심과 기대를 가진 스타는 역시 김혜수의 무대 의상. 매년 청룡상 시상식 사회를 맡아오며 파격적인 드레스를 선보여 수상자들보다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김혜수는 올해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가슴이 깊게 팬 검정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김혜수는 함께 진행을 맡은 영화배우 이병헌이 감탄하듯 뚫어지게 쳐다보자 “뭘 위아래 훑어보고 그러냐”며 여유 있는 농담까지 던지는 등 내내 특유의 건강미와 섹시함을 발산하며 시상식을 이끌어 갔다.
한편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남녀주연상에는 ‘파이란’의 최민식과 ‘소름’의 장진영이 차지했고, 최우수작품상은 싸이더스의 ‘봄날은 간다’(감독 허진호)에 돌아갔다. 이밖에 감독상은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이, ‘엽기적인 그녀’의 차태현과 ‘고양이를 부탁해’의 이요원은 각각 남녀신인상을, ‘번지점프를 하다’의 김대승 감독은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