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윤성기, 최창호, 최권용, 장준, 김상진, 김진숙, 권영희, 맹영호, 엄천섭, 최금수, 한계상
●낮.밤 없는 체전 준비
천안시 체전상황실 팀원 11명, 이들은 오늘 출근하면 내일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보통 오전 8시면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일정대로 체전 준비상황 챙기랴, 각종 보고서에 현장출장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이들이 처음 출발한 것은 지난 98년 10월, 문화체육담당관실(담당관 권오복) 산하 체전준비계라는 이름으로 김상진 담당을 비롯, 5명의 인원으로 구성됐다. 그러다 업무량이 폭주하자 체전 3백일 남긴 시점에서 6명의 인력을 보강해 현재 11명의 멤버를 갖추게 됐다.
이들에게 언제부턴가 주말이나 공휴일이란 개념도 잊혀졌다. 심지어 여름철 휴가는 물론 추석명절마저도 고스란히 반납하고 체전준비에 매달렸다.
처음엔 전국체전과 관련된 각종 서적과 자료를 찾아가며 가장 기초적인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국체육대회 개최도시를 직접 방문하며, 그들의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고 주최측이 아닌 선수단과 시민의 입장에서 철저히 체전을 분석해 나갔다.
김상진 담당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현실이 막막하기만 했다. 속된 표현으로 맨땅에 헤딩한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라며 당시의 상황을 회고했다.
그러나 이들은 막연한 상황에서부터 구체적으로 하나씩 세부계획을 세우고, 타 시?도의 각종 자료와 사례를 참고하며 기적을 이루기 시작했다. 타 시도를 철저히 분석해 천안지역 실정에 맞게 재구성하고, 창조해 나갔다.
그러면서 기반시설이 만들어지고, 도시 곳곳이 변하기 시작하니 일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차 자신감도 생기고 일의 재미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준비한 체전이 성공리에 막을 내리자 이들의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조차 없었다.
체전 마지막날 이른 아침 텅빈 운동장에서 그들을 만났다. 누적된 피로로 헬쓱해진 얼굴들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싱그러워 보였다.
권오복 담당관을 비롯한 김상진 체전준비 담당, 엄천섭 홍보팀장, 윤성기, 최권용, 최금수, 최창호, 한계상, 권영희, 장준, 맹영호씨 등 이들 11명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오늘 성공체전의 원동력이 됐음은 의심의 여지 없다.
●성공체전 위해 피워낸 꽃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봄부터 소쩍새는 / 그렇게 울었나 보다 //”라고 지금은 작고한 시인 서정주는 ‘국화옆에서’ 노래했다.
얼마의 돈만 건넨 채 꽃집에서 간편하게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가꾸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단 한 송이의 꽃이라도 개화를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관심과 정성이 필요한지…
원예사 자격을 갖고 14년째 천안에서 공직생활을 하고 있는 이대성(56?천안시 청룡동)씨. 씨앗을 뿌려 어린 모종을 어엿한 하나의 꽃으로 키워내는 일에 이씨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베테랑이다.
안서동 단국대병원 인근에 위치한 천안시 직영 양묘장. 사계절 꽃향기가 가시지 않는 이곳이 그의 일터다.
전국체전이 열린 올해 이씨는 ‘꽃길’과 ‘꽃동산’ 조성을 위해 어느 해보다 많은 꽃을 양묘장에서 키워냈다.
1천7백평 면적, 4개동의 하우스 시설에서 체전용으로 키워낸 꽃이 봄부터 가을까지 42만본. 예년 물량보다 배나 많았다. 봄에는 페추니아, 여름?가을에는 사루비아, 메리골드 등이 양묘장에서 거리 곳곳으로 반출됐다.
이들 꽃으로 망향로 등 시내외 주요 가로와 지점이 꽃들로 장식, 전국체전의 분위기를 한층 돋궜다.
사람이야 주말이나 휴일에는 잠시 활동을 멈추고 휴식에 들어간다고 하지만 꽃들이야 어디 그런가. 토?일요일 구분없이 꽃들은 계속 자라고 거기에 맞춰 이씨의 휴일도 고스란히 반납됐다.
“휴일을 가족들과 함께 보낸 적이 없습니다. 토?일요일에도 나와 물을 주고, 약제를 하는 등 일일이 꽃들을 돌봐야죠. 특히 올해는 전국체전도 있고 좀 더 각별한 신경을 기울이게 되더군요.”
많은 정성을 쏟은 만큼 거리의 꽃들을 구분하는 이씨의 눈썰미도 녹록치 않다. 꽃들을 보면 자신이 양묘장에서 키워낸 꽃들인지 아닌지를 한눈에 가름할 수 있다.
대위로 예편한 뒤 천안에서 공직생활을 시작, 꽃들과 14년의 세월을 보낸 이씨도 내년이면 정년을 맞아 공직을 떠나야 한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일구다시피한 양묘장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지만 그의 공직생활에서 올해는 가장 의미있는 한 해로 각인될 것 같다.
“체전도 성공적으로 끝났고 시민들이나 외지인들이 거리의 꽃들로 천안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됐다고 하더군요. 힘든 때도 있었지만 체전의 성공개최에 저도 한몫 했다는 자부심에 가슴 뿌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