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 구 수 : 51만7138명 - 유권자수 : 37만2195명- 투 표 수 : 16만2756명 - 투 표 율 : 43.7%성 무 용 (63·한나라당)■득표수 : 10만1021표(62.9%)■직 업 : 현 천안시장■재산신고액 : 35억4770만원 ■병 역 : 소위 전역■전 과 : 없음■학 력 : 연세대 졸업 ■경 력 : 국회의원, 천안시장성무용(한나라당) 후보가 ‘한나라’ 바람보다 더 높은 지지로 당선됐다. 이는 성 시장의 민선3기 행정이 무난했던 것으로, 또한 보완·개선을 통해 민선4기도 충실히 시정을 맡아달라는 민심으로 볼 수 있다. 외입인구가 많고, 특정 정치바람이 없는 지역정서상 37만2195명의 유권자중 16만2756명(43.7%)이 투표해 낮은 투표율을 보인 천안. 현 정권을 비판적으로 보는 국민정서가 전국을 강타, 상대정당인 한나라당으로 표몰이가 진행되며 ‘싹쓸이 바람’은 천안에도 불었다. 이 때문에 공무원 1급 출신인 열린우리당 구본영 후보와 임형재 충남부지사의 도전은 큰 결함이 없는 성 후보에게 전혀 위협을 주지 못한 채 무너졌다. 성 후보는 시 전역에서 60% 안팎의 고른 득표율을 보였다. 농촌경제를 망친 주범으로 비난했던 임형재 후보의 거센 입김에도 불구, 농촌지역에서조차 60%대에 육박하는 고른 득표율을 나타냈다. 성거소각장 문제로 한때 주민 민심을 잃었던 성거읍·입장면은 각각 56.8%, 62.7%를 얻으며 민심이 회복됐으며, 구도심인 중앙동의 경우 78.7%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구도심 공동화 활성화에 해당 주민들은 성 시장에게 거는 기대가 무척 높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권역별로 시행정을 평가하기는 무리할 듯. 상대적으로 동면은 낮은데 비해 병천은 높고, 광덕면은 낮은데 풍세면은 높게 나타났다. 시 전역으로 볼 때 가장 낮은 지역은 쌍용3동과 광덕면인데 이들 지역조차 57%를 넘어서 있다. ■주요공약사항 <휴양3대만족 자족도시>-평생교육도시 육성과 자립형사립고 유치-천안사랑 인재육성 장학재단 운영-교육경비보조 조례제정으로 질높은 교육환경 조성-마을도서관 지속적인 확대로 지식사회기반 확충-공연·전시공간 증설과 프로그램 지원으로 수준급 문화행사 상시개최-중부권 예술의 전당, 박물관, 미술관 건립-삼거리공원 전통민속주 박물관 건립 및 박람회 개최-흥타령축제 글로벌브랜드화-지역축제의 차별화 성공 모델-게임·레저문화특구 조성, 동부권 체류형 종합휴양관광지 조성<안전하고 쾌적한 도시>-WHO안전도시공인사업 추진 및 범죄예방형 도시설계-가로등 증설, 밝은 전등으로 교체 및 방범활동 지원 강화-행정타운 건설과 동부경찰서 설립 조기추진-천안만의 멋을 살린 도시이미지 디자인<친환경 첨단도시>-북부지역과 청수·신방통정지구에 U-시티 건설-최첨단 지능형 정보시스템 운영-경전철 등 도시철도 건설-천안천, 원성천의 생태공원 완성으로 휴식과 건강·문화공간 확대-월동테마공원, 오룡경기장 웰빙파크 건설 및 장항선 부지 웰빙 푸른 길 조성-식물원, 봉서산 자연생태학습장 조성 및 자투리땅 건강지압보도, 소공원 조성<함께 사는 복지도시>-점자블럭, 저상버스 도입 등 장애우 이동권 확보-산업단지보육센터 설립지원 및 동남부 복지타운 건설-독거노인 및 거동불편소외계층 위한 보호시스템 확대-북부 종합복지관과 어린이회관 설립 및 청소년 종합지원센터 신설 운영-여성복지재단 운영 및 여성장애인 출산비 지원-저소득층 생활안정 특별지원<일자리 넘치는 활력도시>-국제도시 기반 조성 위한 국제비즈니스파크 건설-각종 인센티브 및 행정지원으로 우수기업체 유치-중소기업 종합서비스망 운영, 해외시장 개척 등 기업활동 지원-5산업단지 및 바이오 전문산업단지 조성으로 고용촉진과 지역발전 도모-농업경쟁력을 위한 국제농업엑스포-게임산업 메카로 도약 위한 국제게임엑스포 개최<균형발전의 상생도시>-동서 관통대로 개설 및 문화동 청사 복합테마파크 리모델링 등 원도심 개발-산업·문화·교육 중심으로 신도심 개발-관광·휴양 중심으로 동부권 개발-고부가가치 첨단산업, 유비쿼터스 중심 북부권 개발-자동차 부품 R&D 집적화 센터, 친환경생태공원 중심으로 남부권 개발■성무용 당선자는 누구?성무용 천안시장 당선자는 일제말기인 1943년 12월 천안시 원성동 장태산 기슭의 외딴 초가집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1년 전인 49년 성무용은 제이국민학교(남산초)에 입학했다. 줄곧 전교 1∼2등을 차지했던 성무용은 서울 용산중·고교에 진학했다. 학창시절 성무용은 용산중·고 정구부를 전국 최고의 반열로 끌어 올렸고 고교졸업과 함께 연세대 상과(현 경영학)에 진학했다. 대학시절엔 교내 뜻 있는 학우들과 ‘경제연구활동클럽’이라는 동아리도 창설했다. 당시 저명한 교수진을 초빙해 열띤 토론을 벌이며 미래를 고민하기도 했다. 67년 ROTC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성무용은 ‘상신산업’이라는 무역회사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79년 천안으로 돌아온 그는 업성동에 ‘진왕산업’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적연와(빨간벽돌) 등 건축자재공장을 설립·운영했다. 그러다 90년대 중반, 운영하던 공장은 그의 국회입성과 함께 간판을 내렸다. 현재는 농수산물제조 및 보관업체인 ‘(주)대성냉동’을 경영하고 있다. 한편 성무용이 천안으로 돌아와 동천안청년회의소에서 사회활동을 시작해 당시 활발했던 새마을운동에 적극 나서게 된다. 그 결과 84년 전국 새마을운동 실적평가 2위, 이듬해 전국 1위를 차지하며 천안을 새마을운동 모범도시로 만들었다. 성무용은 1988년 민주정의당 천안시지구당 위원장직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정치인생을 걷게 된다. 당시 민정당의 공천을 받은 성 후보는 13대 국회진출을 노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92년, 14대 무소속으로 출마한 그를 지역 유권자들은 국회로 밀어줬다. 직접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그는 93년 천안상공회의소 제10대 회장직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연구와 입법활동에 들어갔다. 96년 중소기업청이 신설된 것은 성무용의 입법발의에 의한 것이며, 의정활동 중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5대와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는 93년부터 10대, 11대, 12대 9년간 천안상의 회장을 역임하는 동안 중국과 활발한 교류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2002년 6월13일에 이어 2006년 5월31일 천안시장에 당선된 성무용. 그는 산골소년에서 운동선수로, 샐러리맨으로, 전문 경영인으로, 사회사업가로, 상공인 지도자로, 국회의원으로, 기초자치단체장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킨 다양한 경험을 살려 천안시 경영의 최일선에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