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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학산’이 아니라 ‘대학산’이 올바른 표기

잘못된 가이드(Guide)문화 - 천안 태학산을 중심으로

등록일 2001년08월04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지구의 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무더위가 여름 폭염을 가일층 부채질하고 있는 가운데 천안아산의 경계에 솟은 대학산을 여름 피서의 테마 여행지로 지역신문 등에서는 소개하고 있다.

테마 여행지로 손꼽는 이유는 휴가 피서철의 반갑지 않은 손님인 교통체증 때문에 지역에서 가깝고, 자연휴양림, 마애불, 계곡 등 좋은 여행지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천안시지」와 「천안향토사」 등에는 이 산을 대학산이라 하지 않고 태학산(太鶴山 또는 泰鶴山)이라 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학산과 태학산 중 어느 것이 옳고 그른가? 이 문제는 지극히 간단한 문제로서 최초의 역사적 기록으로 대학산을 등장시킨 어원의 출전(出典)을 찾고, 또 태학산을 출전시킨 어원의 기록을 찾아 그 상호관계에 연관된 기록을 찾아 모순점을 지적하면 되는 것이다.

즉, 풍세면 삼태리와 광덕면 매당리 및 아산시 배방면 일원의 경계에 우뚝 솟아 있는 대학산은 원래부터 대학산이었지 태학산은 아니었다.

그 근거를 든다면 우리나라 산의 대다수가 산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寺刹)의 명칭에 따라 산의 명칭, 계곡의 명칭 등이 거의 칭명되고 있다. 실례로써 성거산 구암사(龜巖寺)가 자리잡고 있던 곳은 구암골(또는 구랑골) 안서동 문암은 문수암(文洙巖)의 영향으로 본 대학산은 대학사(大鶴寺)라는 절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전거(典據)로서 <세종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 및 <영성지> 그리고 <봉수지> 등에도 모두 대학산이라 기록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구나 <여지승람>의 천안군 불우조(佛宇條)에도 대학사(大鶴寺)라는 사찰이 존재하고 있으며, 대학산에는 대학산 봉수터가 있음을 기록하고 있으니, 본래의 산명이 대학산임에는 재언을 요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태학산과 태학사는 어떠한 근거에서 부르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김정호의 <청구도(靑丘圖)>와 <대동여지도>의 오류에서 비롯되어 잘못 와전된 것이다.

이와 같음에도 자연휴양림의 명칭을 ‘태학산 자연휴양림’이라 하고 또한 시에서 발행한 등산안내책자 등에서 조차도 ‘태학산’이라 하고 있음은 잘못된 것으로써 반드시 수정돼 본래의 산명인 대학산으로 환원돼야 하는 것이다.

물론 한글학회에서 간행한 1974년 ‘한글지명총람’이나, 1988년 민음사에서 간행한 ‘한글토속사전’ 그리고 1997년 간행한 ‘천안시지’ 및 1998년 천안시 에서 간행한 ‘천안의 산과 나무’ 등이 모두 오류이고 두찬(杜撰)되었음은 재언을 요하지 않는다.

그 방증자료로써 역사란 무릇 어떠한 어원의 기록을 최초로 탄생시킨 또는 기록 보존되고 있는 사료의 범위내에서 사료에 대한 검토와 비판이 가해지지 않으면, 반드시 오류와 두찬으로 흐를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삼국사기>의 일부분에서 또 김정호의 <대동지지> 및 <대동여지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단 대학산에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역시 전술한 <세종실록>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학산이라는 최초의 어원 출전은 조선6대 단종3년인 1454년 간행의 <세종실록>과 조선11대 중종25년인 1530년에 간행된 <여지승람>임에도 역시 재언을 요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태학산이라는 최초의 어원출전은 아무리 빨라도 18~19세기 중말기인데, 여기에는 김정호의 <청구도(1834년 순조34년)>와 <대동지지> 등의 오류와 두찬으로 인한 영향으로 그 후대인 지금까지도 태학산이라고 부르고 표기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 영향과 ‘천안향토사’, ‘천안시지’등이 사료적 검토와 비판을 가하지 못하고 그대로 수용해 책자화한 결과 주변 주민 및 시민 그리고 멀리 한글학회와 정신문화연구원의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까지 인용되고 수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순없는 역사적 사료의 우선순위와 사학연구의 방법론에 의해서도 반드시 수정되어 본래의 산명인 대학산으로 환원돼야 한다.

그 방증 전거와 근거를 든다면, 먼저 대학산에는 최초의 어원 출전기록인 <세종실록>에 대학산과 대학사라는 산명과 사찰명칭이 동일기록으로 전하고 있으며, 아울러 대학산봉수(大鶴山捧璲)가 동일시대, 동일장소, 동일명칭의 동일한 기록으로 전하고 있다.

물론 조선후기에 들어오면서 ‘대(大)’자나 ‘태(太 또는 泰)’자의 쓰임이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는 사례들을 접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래부터 모순없는 기록의 ‘대’자를 ‘태’자로 바꿔 써가며 지명 즉 산명을 바꾸어 쓰거나 부를 수는 없는 것이며, 이렇게 된다면 모순없는 모든 역사적 사료(史料)들마저 쓸모없는 사료(死料)로 전락되고 말 것이다.

한편 이러한 사료에 대한 검토와 비판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 지역신문에 의하면 “광덕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소개가 되지 않았고, 태화산이 대학산”이라고 하며 또 광덕산의 원이름은 ‘화산(火山)’이라고 하는 등의 소위 ‘향토애의 횡담(橫談)으로 더욱더 천안향토사의 난립을 가중시키고 있지만, 이 모두가 모순된 기록을 검토와 비판하지 못한 오류에서 비롯된 사실무근으로써 광덕산은 상서(上書)의 ‘온양군’편 ‘산천조’에 소개돼 있으며 화산은 ‘천안군’조에 소개돼 있다.

이것은 제지방(諸地方)에서 보는 방향에 따라 달리 부르는 산명을 간과하지 못한 것이다. 태화산은 차령고개에서 공주 마곡사 후록의 무성산(武城山)과 아산의 설화산, 백운산 및 본고의 대학산까지의 주변산을 아우르는 산의 상징적 명칭인 것이며, 대학산은 풍세 삼태리의 후록의 큰 산만을 지칭하는 별개의 개별명칭인 것이지 태화산이 대학산이 아님은 너무도 명백하다.

이것은 광덕사와 마곡사의 일주문 현판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상의 소략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선대(先代)의 모순없는 최초의 출전기록인 <세종실록>과 <여지승람> 등의 사료적 검토에서 드러난 후대의 모순된 기록들은 모두 수정되어 본래의 산명칭인 대학산(大鶴山)으로 부르고 표기하고, 교육해 대다수가 난립된 천안향토사를 바로잡아 자라나는 청소년과 시민 및 주변에 천안시와 관내의 문화관련기관 그리고 향토사에서 교육 및 홍보해 풍세면 삼태리 후록의 큰 산은 태학산이 아닌 대학산으로 재정립돼야 할 것이다.

편집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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